마 선생의 촌지
아침에 출근하려는 마 선생에게 마누라가 엄포를 놨다.
어제 저녁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 마 선생은 ‘정말 더 이상 못해먹겠다’며 또 하소연을 했었다. 마 선생은 올해 들어 부쩍 힘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괴로운 심정을 마누라에게 토로하곤 했다. 처음에는 푸념처럼 들어주며 대수롭지 않게 귓등으로 흘리던 마누라가 마 선생의 잦은 하소연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얼마 전부터는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반응하는 강도도 점점 강해졌다. 급기야는 이혼까지 거론하며 마 선생을 협박했다.
세상이 변해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당장 마누라가 돌변한 것만 봐도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난다. 처녀시절 다소곳하고 가녀렸던 그녀가 싸움닭처럼 변한 것을 보면 천지개벽한 세태가 피부에 와 닿는다. 조금의 망설임이나 거침도 없다.
마 선생은 자신의 마누라만 그런지 다른 집 마누라들도 그런지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느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 따위 정신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펄쩍 뛸 일이지만, 마 선생 생각에는 마누라 기가 살아도 너무 산 것 같다.
어디서 함부로 이혼을 입에 올리는가. 참으로 가관에 목불인견이다. 어느 코미디언의 ‘소는 누가 멕이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때 우리나라 저명인사 중 한 사람인 여성변호사는 말끝마다 ‘어떻게 그렇게 사세요! 당장 이혼하세요!’ 하며 말끝마다 이혼을 종용하다 이혼 전문변호사로 정평이 났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문제를 간단명료하게 해결 짓는다면 번뇌와 갈등이라는 낱말이 왜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남아 있겠는가. 마 선생은 남편이 무엇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유를 알아보기도 전에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며 협박하는 투의 마누라 처사가 못마땅했다.
마 선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몸을 담은 지도 벌써 이십여 년이 흘렀다. 마 선생은 어려서부터 교사가 꿈이었다. 교사가 되겠다고 처음 마음을 먹었을 때의 동기가 우습기는 했지만, 그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꿈은 꾸어본 적이 없었다.
마 선생의 고향은 아주 산골마을이었다. 마 선생은 그곳에 있는 아담한 분교를 다녔다. 전교생은 사십 명쯤 되었고 선생님도 다섯 분이 계셨었다. 사십 년도 훨씬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소풍날이다. 소풍날이 결정되면 며칠 전부터 조바심이 일었다. 소풍을 가기 전까지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었다. 소풍 전날이 되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비가 내려 소풍이 연기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서였다. 자다가도 몇 번씩 일어나 방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며 노심초사했다. 자는 둥 마는 둥 비몽사몽간에 아침이 되면 부엌에서 들려오는 달그락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리고는 방문부터 열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는 어느새 일어나 아들의 소풍준비를 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소풍을 가는 날이면 언제나 김밥도 한 개를 더 싸주셨다. 어머니는 그것을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다. 자기 자식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대한 최소한의 성의 표시였다.
학교에서 시오리쯤 떨어진 큰 산 아래 계곡으로 가는 소풍이었지만 아이들은 경치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오직 기다려지는 것은 아침부터 참고 참았던 과자와 김밥을 먹는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그늘나무 아래 모여 각기 싸온 과자와 김밥을 먹었다.
선생님들은 마을 어른들과 함께 물가에 널따란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부모님들이 보내온 음식을 잡수셨다. 그런데 거기에는 동네잔치에서도 보기 힘든 온갖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선생님들이 어려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뿐이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켠으로는 자신도 언젠가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 선생이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처음으로 결심하게 된 동기는 우습게도 어린 시절 소풍날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선생님이 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세상은 참으로 많이도 변했다. 요즘 아이들은 아예 소풍에 대한 설렘도 없다. 오히려 소풍가는 것을 귀찮아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기야 평상시에도 자주 가족들과 여행을 즐기고, 언제든 먹고 싶은 것을 사먹을 수 있는 아이들에게 땀을 뻘뻘 흘리며 단체로 가는 소풍이 기다려질 리 없었다.
설령 소풍을 간다고 해도 가까운 곳으로 갔다가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끝난다. 아이들은 소풍보다 게임방이나 노래방을 더 좋아한다. 요즘 아이들은 그곳에서 노는 것이 소풍이다. 그러니 당연히 김밥을 싸오는 녀석은 없다. 종종 현장학습을 가기위해 점심준비를 해오라고 하면 한 반 아이들의 김밥 맛이 모두 비슷비슷하다. 어머니가 싸주는 것이 아니라 동네 김밥 집에서 모두들 사서 가지고 오기 때문이었다. 소풍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마 선생은 더욱 허허롭기만 했다.
그런 날이면 예전 설레고 풍성했던 소풍을 추억하며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소풍을 일찍 끝내거나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혹여 무슨 사고라도 나면 쏟아지는 비난과 책임을 모두 교사가 져야하니 그것이 두려워 빨리 끝내기를 원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요즘 젊은 교사들의 사고방식은 마 선생 젊었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마 선생이 처음 교직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때는 자부심을 가지며 자랑스럽게 학교를 향해 출근을 할 때가 있었다.
집을 나서 학교로 향할 때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골목에서 만나는 이웃들과도 자신 있게 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초임시절 모범교사로 선발되어 포상으로 갔던 취푸(曲阜) 공자사당의 대성전에 걸려있던 ‘만세사표(萬世師表)’를 보는 순간 마 선생은 가슴 가득하게 차오르는 뿌듯함을 느꼈었다. 마 선생은 자신도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쳐 공자처럼 추앙받는 선생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다. 가르치는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서슴지 않고 했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교사를 천직처럼 생각해오던 마 선생의 생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사에 대한 달라진 사회적 시각과 변화된 교직사회의 풍토였다. 사회적 시각은 차치해두고서라도 교사부터 문제였다. 신·구임 교사를 구별할 것도 없이 한결같이 새로운 일을 만들려하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무슨 일이든 벌이려 하지 않았다. 혹여 문제라도 생겨 구설수에 오르면 일신상에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자신이 해를 입더라도 관철시키려던 교사 모습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아예 일을 하지 않고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교사들도 많았다. 교육이 공사판도 아닌데 안전제일주의가 우선이었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거듭해도 주의를 주거나 체벌하지 않았다. 만약 체벌한 것이 문제가 되면 자초지종을 따져보기도 전에 벌떼처럼 달려들어 교사를 난도질했다.
그러니 좋은 것이 좋다고 아이가 잘못을 해도 그저 방관할 뿐이었다. 사회에서 문제를 삼곤 하는 요즘의 체벌 강도 또한 마 선생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체벌이라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체벌이 문제되면 약자는 언제나 교사였다. 그래서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로 떠들어 대고 일어나 돌아다녀도 아예 모르는 척 방관했다.
그러니 수업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학부모들도 교사를 존경하기보다는 내 아이를 가르쳐주고 돈을 받는 이해관계로 인식할 뿐이었다. 사제지간이라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되고 말았다. 마 선생은 그런 호시절은 다 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당장 학교를 그만 두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 선생이 부쩍 교사라는 천직에 회의를 느끼게 된 것은 신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마 선생은 새로 시작하는 아이들의 교실 분위기를 바꿔주기 위해 봄맞이 환경미화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혹시 집에서 쓰지 않는 책꽂이가 있으면 가져올 것을 당부했다. 교실에 온통 어지럽게 널려있는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튿날, 쓰지도 않은 신품 책꽂이가 용달차로 배달되었다. 마 선생 반 아이의 어머니가 보낸 것이었다. 마 선생이 새 책꽂이를 즉시 돌려보냈다. 그랬더니 그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약소해서 그러세요?”
“그게 아니고, 저는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조그마한 책꽂이들이 있으면 가져오라고 한 것인데 아이가 제 이야기를 잘못 알아들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까짓 것 얼마 한다고 되돌려 보내셨습니까? 그냥 쓰시지.”
그런데 며칠 후 그 어머니는 아이를 통해 화려하게 포장된 책 한 권을 보내왔다. 그런데 책갈피 안에는 촌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한 수표가 들어 있었다. 마 선생이 돌려주기 위해 통장번호를 물었지만 끝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편지와 함께 봉투를 아이를 통해 돌려보냈다.
“다른 선생님들은 다 받으시던데, 선생님만 유난하십니다!”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또 전화가 왔고,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마 선생은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은 그 다음이었다. 학기 초부터 그 어머니가 반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의도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대해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마 선생은 그저 공명정대한 선거운동을 아이들에게 말해줄 뿐 그 아이의 어머니를 제재할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아이는 근소한 차이로 부반장에 선출되었다. 그 다음부터 부반장 어머니는 수시로 학교를 드나들었다. 학부모회의에서도 다른 학부모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혼자 독무대를 이뤘다. 그것은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 아이는 산만하고 안하무인에 도대체 무서운 사람이 없었다. 학급에 엄연히 반장이 있는데도 월권을 하여 자기가 반장처럼 행세했다. 마 선생이 부반장을 불러 몇 번 주의를 주었지만 아이는 여전했다. 마 선생도 화가 나서 언젠가 한번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반장이 반장을 때리는 일이 벌어졌다. 실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교생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을 하기위해 임시학급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반장은 형편껏 하자는 의견을 냈고, 부반장은 선물이니 돈을 걷어 비싼 것을 하자고 맞섰다.
둘의 의견은 팽팽해졌고, 이 과정에서 참지 못한 부반장이 반장을 때린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마 선생이 화를 참지 못하고 부반장의 뺨을 때린 것은 녀석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교무실로 불려온 두 녀석에게 다툰 이유를 묻자 부반장은 선생 앞인데도 ‘질구지 새끼 주제에’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마 선생이 근무하는 학교는 고층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단독주택이나 농가에 사는 아이들이 섞여있었다. 질구지는 미나리꽝이 몰려있는 비닐하우스 단지였다. 반장은 그곳에 살고 있었다. 마 선생이 부반장의 뺨을 때리고 난 다음날, 아침부터 학교는 난리가 났다. 부반장의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온 것이었다.
“당신이 선생이면 선생이지 왜 학생을 때려? 당신은 돈 받고 가르치기만 하면 돼! 저 애가 어떤 앤데 당신이 때려! 우리 아이 공부 못해도 좋아! 쟤 앞으로 건물도 있어! 애 기 좀 살려달라고 책꽂이에 돈까지 보냈는데, 왜 애 기를 죽이고 지랄이여!”
부반장 어머니가 게거품을 물었다.
마 선생은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다. 이런 치욕을 당하고 선생질을 하느니 굶더라도 당장 사표를 던지고 싶었다. 선생을 하는 것이 창피했다.
이것이 어제 아침에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퇴근을 해서 마누라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직장이 다 그렇지’ 하며 위로는커녕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학교는 이미 밥벌이를 하는 일터에 불과할 뿐이었다. 선생 마누라란 사람까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남 탓은 해서 무엇 하겠는가. 마 선생은 회의가 들었다.
“제발, 아이들 대학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만 버텨! 그 이후엔 당신이 뭘 하든 난 상관 안 해!”
현관문을 나서는 마 선생의 등 뒤로 마누라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들려왔다. 마누라가 하는 저딴 식의 말을 들을 때마다 마 선생은 자신이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 돈 벌어오는 기계쯤으로 취급하는 마누라의 태도도 서운했다. 가슴속이 저려왔다.
바람도 피할 곳 없는 벌판 한가운데서 홀로 서있는 느낌, 아니면 여행 중 낯선 고장에 내렸을 때의 막막함이 이런 기분일까? 집안에서 마 선생 존재는 미약하다. 미약한 것이 아니라 아예 비존재처럼 느껴졌다. 집안의 가장이라는 흔적은 주민등록등본이나 집으로 배달되는 각종 통지서에만 명목상 존재한다. 마 선생은 점점 허깨비가 되어가는 자신이 불쌍했다. 그것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찬가지였다.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갈 곳이 있다면 학교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선생님 이거…….”
마 선생이 교무실 앞에 다다랐을 때,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장 녀석이 라면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얼굴이 빨개져서 허둥지둥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그런 녀석을 보며 마 선생은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가 소풍날 선생님께 갖다드리라며 싸주셨던 김밥과 달걀을 전하고 줄달음을 치던…….
마 선생이 상자를 들고 교무실을 들어서도 누구 한 사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만약 화려하게 포장된 상자였다면 모두들 궁금해 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을 것이었다.
라면 상자 안에는 곱게 다듬어진 봄 미나리가 가득했다. 바쁜 농사철에 비닐하우스에서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와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에게 주려고 밤늦도록 미나리를 다듬었을 반장 어머니의 마음이 상자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그 상자를 들고 힘들게 걸어왔을 녀석의 모습도 떠올랐다. 마 선생이 미나리 한 줄기를 꺼내 베어 물었다. 입안에 미나리향이 가득하게 풍겼다. 가슴속이 싸해졌다. 마 선생이 서둘러 교실로 올라갔다. 불현듯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