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리뷰 페이스북 토론11>
낡은 정치 헤게모니에서 ‘한 표’가 갖는 의미를 묻다

교육․경험의 부재가 투표 기권 초래…정치참여 본질 구체적인 교육 절실

2012-03-22     박소영 기자

[충청리뷰 페이스북 토론 11]

젊은 유권자들은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걸까요?

논제=4.11 총선이 한 달 안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당은 당명을 바꾸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고 야당은 야권연대로 정권을 바꿔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치인들의 변화를 향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의 마음은 정치 혐오 혹은 정치 불신으로 냉랭하기만 합니다.
정치라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큰 가치이고 필요충분 요건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국민들 중에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쏟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특히 근래 들어 젊은 유권자들의 활동이 왕성합니다. 반면 기성세대들에 비해 투표율이 적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청년비례대표, 반값등록금 등 젊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①정말 일부의 지적처럼 젊은 유권자들은 정치나 투표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들을 정치에 관심 갖게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요?
②정치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언론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충청리뷰의 페이스북 11번째 토론은 시의적절한 주제라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없는 이유를 기성세대의 잘못이라고 해석했는데요. 특히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꼬집었습니다. 투표와 관련한 교육의 부재, 경험의 부재, 정치 헤게모니는 젊은 유권자들이 정치에 멀리하게 된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신명식=투표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서 투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잘 모르기에 소중한 권리를 포기하는 거라 생각하네요. 대학생되면 투표권이 생기지만 대한민국 사정상 정신적인 성숙도는 나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투표와 정치참여의 본질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교육이 이어진다면 국민 무서운 줄 알게 될 테고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바랍니다.

Taewon Kim=시의적절한 주제네요. 젋은 층에서의 정치 무관심이라는 문제 이면에 왜 무관심한가라는 고민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 소셜미디어는 기존의 매스미디어보다 젊은 층들이 정치적 관심을 갖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기득권의 의견만이 여론인 냥 전달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죠. 소셜미디어는 그 특성상 자정작용이 가능하나 잘못된 포퓰리즘이나 잘못된 정보의 쏠림 양극화 현상은 아무래도 언론이나 정치인들의 탓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각 언론사들이 정치적 성향이 있다 보니 중립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설득을 위한 자기주장보다는 경청을 통한 상대방을 이해하는 자세가 중요한데 이점은 아무래도 우리 토론문화가 성숙되지 못했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경험을 통해 차츰 자연스레 개선되리라 생각됩니다.

신웅호=최근 정치권은 신중하려는 공천작업과 야권연대등 새로운 시도가 조금은 변화된 모습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아직도 계파 챙기는 공천과 허울뿐인 연대 등은 잘 판단하여야겠습니다. 결국 투표만이 답이군요. 일단은 말입니다.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20대는 ‘개념세대’로 부각됐죠. 그동안 젊은 세대에 가해졌던 비판과 가르침은 뒤로하고 이들을 향한 언론의 찬사가 이어졌는데요. 2010년 지방선거 투표율은 54.5%. 지방선거 투표율로는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습니다. 결국 20대가 캐스팅 보드가 됐습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이들에게 의견을 결집시키는 도구가 됐고, 자기 문제에 예민한 청년세대들은 반값등록금 문제를 이슈화시키면서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Taewon Kim=소셜미디어는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웹 2.0의 기치를 잘 반영합니다. 소셜미디어가 독이냐 약이냐, 규제를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의 문제는 의미가 없다고 보이고요. 오히려 어떤 사용자들이 도구를 사용하여 그 도구가 독이 되는 지 약이 되는 지를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가끔 언론의 검증되지 않은 보도는 사용자들의 집단행동을 불러일으켜 우려가 됩니다. 이미 젊은 층은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그 관심이 애정이 될 지 분노가 될 지는 정치인들의 노력에 달려있다 보입니다. 향기로운 꽃은 뽐내지 않아도 꿀벌이 모여드는 법이니까요 ^^

양우영=시대는 워낙 빠르게 발전하는데 정치나 시민의식 등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에 대한 발전은 어느 시대든지 물질문명의 발전에 비해 늦었던 건 사실이죠. 누구도 부인 못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겠죠. 그래도 제가 처음 투표할 때 보단 젊은 층의 참여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구요. 늦긴 하지만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으니 언젠가 우리들이 원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겠죠. 의식의 발전은 말하는 것처럼 쉽게 발전 하는 것이 아니죠. 그렇게 쉽게 발전하면 철학자들이 필요 없어지겠죠. 누구나 다 철학자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각설하고 시민이 성장하는 만큼 민주주의도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변화해야 민주주의도 변화합니다. 여러분! 파이팅이요! 여러분들이 여기 올리시는 댓글과 의견이 하나하나 모여 민주주의의 성장을 가져올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세요.

Taewon Kim =양우영 님의 기술과 사회의식의 공진화 부분을 공감합니다. 정치(꼭 정치가 아니더라도)는 참여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결국 지역 언론의 사명은 이와 같은 의제를 던져주고 주민들이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형성된 주민들의 여론을 기사화하여 알리고요. 과거에는 주민들의 여론이 집결될 수 있는 장소도 없었기에 주민들의 의견은 시위와 같은 물리적 행동이 아니고는 반영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논리적인 이런 토론으로도 충분히 어필 가능하죠. 페북이 허세의 공간이어도 좋고, 트위터가 극좌파와 극우파의 대립장이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꼭 SNS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어느 매체, 어느 방법이 되었든 참여를 통해서 내 의견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자기 검열과 반성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땡전뉴스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보다야 훨씬 바람직하죠.

▲ 충북도는 무상급식 전면실시로 적어도 학기 중에는 밥을 굶지 않게 됐지만 방학기간과 주말, 공휴일에 2만 3000여명의 결식아동들은 배가 여전히 고프다. 한 끼 단가가 3000원이어서 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하기 일쑤다.

기성세대들은 말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장으로 나와 적극적인 권리를 행사하라고요.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열기는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도 유효할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 유권자들은 이제 정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불=일단 젊은 유권자의 개념 정의가 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20대로 본다면,아직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시기라 그네들의 관심사에게 먼 측면이 있다 할 것입니다. 또한 기존의 정치에 식상한 나머지 애써 무관심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우려할 대목은 권리위에 잠자고 있으면 아무도 구제해주지 않습니다. 적극적인 투표로 본인의 의사를 표출하여,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김승환=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는 문외한인 청년층은 최소한의 몇몇 당명 개명한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더군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김용직=청년들에게 정치로 뭘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지 못한 우리 교육, 언론의 자화상이죠.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줘야겠죠. 그게 정당들의 몫일테죠? 새누리당 분명히 보여주자나요? 나를 찍어라, 당신들의 부를 확실히 책임져 주겠다. 다른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진정한 정치세력이 다른 세상을 보여주면 될 겁니다.

남권영호=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는 언론의 행태는 기성세대에게도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모습 그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실에서 청소년들은 정치에서 어떤 희망을 찾겠습니까. 언론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는 정치놀이를 시작해야 합니다. 다만 언론이 권력에서 독립할 때 가능하겠죠.

Wook Lee=젊은 층은 배우는 세대입니다. 정치판에서 배울게 없으니 당연히 관심이 없겠지요. 언론을 통해 보고배우는 것은 싸움판. 그러니 사고력이 부족한 어린학생들은 폭력성만 배우나 봅니다. 우리지역의 정치주소는 제 밥그릇도 못 챙기는 멍청도 핫바지, 들러리, 토사구팽, 지조도 뿌리도 없는 갈대, 홀대론, 소외론이 충북정치의 성적표입니다. 충북의 정치개혁은 최고의 정치력을 가진 경력정치인, 패기 넘치는 30~40대 정치인의 발굴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민병동=태어나서 18년을 금지당하고 이제서 해야 한다니 선뜻 필요성이나 당장의 급한 일보다 후 순위이고 남 일처럼 보일 수밖에 없지요! 더욱 정치판이 그릇된 판이니 선뜻 참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럴수록 왜 참여를 해야 하는지 알려 줄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 농 삼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나 18년을 금지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죽기 전 10년 정도는 물러남이 형평에 맞는 일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웃자하는 소리입니다. 혹여 우리평균수명 이상을 산다면 그때부터는 투표권 행사를 스스로 금하렵니다. 혹여 노탐에 그릇된 판단을 할까 봐요? 젊은이들은 적극 참여해야합니다. 그래야 당신들의 결정이 그 사회의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책임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참여해도 안 해도 책임은 져야합니다. 따라서 참여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옳지요!

권대기=언론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정치인들의 부도덕성을 계속 보도해대는 모습에 젊은 층이 정치혐오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연일 같은 사안을 놓고 어느 한쪽은 죽일 놈이 되는 보도를 해대니 혼란에 빠진 젊은이들이 혐오에 빠질 수밖에. 예를 들어 천안함이 폭침되었을 때 진실만을 보도했다면 젊은이들이 헛갈리지 않았을 텐데 야당의 떼쓰는 것까지 대서특필을 해대니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언론은 진실만 보도해야합니다. 팩트만 보도해야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은 보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자들은 국가관이 있어야합니다. 미국은 9,11테러 때 미국의 처참한 모습을 일체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적에게 쾌감을 주지 않고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게 말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무너진 빌딩 잔해를 다 파헤칠 때 까지 생중계 했을 겁니다. 다친사람들 일일이 인터뷰하고. 언론이 국민들을 양분시키는 한 이런 정치 불신은 점점 더 생길 겁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선 이유는 당위론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분위기와 MB정부에 대한 심판론도 기저에 깔려있었죠. 시간이 흘렀지만 이번 총선에서 젊은 유권자들을 위한 정책과 이슈는 여전히 빈약합니다.

Min Kim=청년운동을 하는 저로선 청년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탓할 것이 아니라 청년에 대한 정치권의 무지를 탓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선거권연령을 20세에서 19세로 낮춘 지 이제 3년이 지나갑니다. 유럽 대부분은 18세이고 일부 국가의 경우 예비선거권연령을 16세로 하고 있지요. 당연히 정치권에서 이들 연령의 정치적 의사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지요. 선거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정치권은 이들 세대에 별 관심을 갖지 않지요. 더 큰 문제는 피선거권입니다. 독일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연령을 동일하게 18세로 두고 있습니다. 우린 피선거권연령을 더 높게 잡지요(대통령은 아마 40세일걸요?). 2006년 독일연방의원인 안나뤼어만이 한국에 올 때 당시 김원기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추진했는데 김원기의원이 나이를 묻더니 무척 놀라더군요. 2009년엔 호주시드니 시의원에 20살이던 재외교포 2세가 당선했는데, 그 친구에게 전 이렇게 얘기했답니다. “만약 당신이 한국에 있다면 투표권만 행사할 수 있었을거요” 이게 우리 현실이랍니다. 젊은 유권자들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소통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중요하지요.

이현석=젊은 층의 정치관심 부재는 사실, 현 교육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대학교육을 제외하더라도 12년 동안 통제당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일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상태로 투표권을 받게 됩니다. 더군다나 민주주의에 관한 교육은 도덕교과서 한 귀퉁이에 몇 줄 적혀 있는 게 다가 아닌가요? 또한 역사 교육도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사에 대한 교육은 전혀 없죠. 따라서 역사의식,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등이 부족한 데서 오는 당연할 결과일 겁니다. 학교 교육 내에서부터 자치민주주의에 대한 교육, 사실 이건 교육이 아니라 생활화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체화될 수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볼 때 기본은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민주주의가 무엇이다’라고 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체득할 수 있는 시스템교육체계가 확립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