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 걷는 것이 곳 참선
둘째 날, 번터티에서 데울라리까지
神들의 땅 히말라야에 가다 ④
이곳에서부터 많이 보이는 꽃은 마치 한국의 동백꽃과 진달래를 혼합한 듯한 모습의 빨간 꽃이다. 한국의 동백꽃보다 나무의 덩치가 훨씬 크고 잎도 좀 큰 것 같고 꽃의 모양은 진달래를 축소한 것을 수십 송이 묶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또한 꽃송이 위로 내려앉은 눈송이는 이곳만의 진풍경이다.
이슬비의 고요 속에 우리는 길을 걷는다. 누구는 앉아서 참선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걸으면서 참선을 하는 모양이다. 이슬비가 내리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산길을 걸으면서 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기를 소망해 본다. 맑디맑은 이곳의 공기를 온몸에 불어넣으면서 산길을 걸으며 선을 해 본다.
비가 오니 가끔 짐을 나르는 이곳의 짐꾼들과 당나귀 소리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자연의 소리이고 고요처럼 느껴진다. 아니 짐꾼들과 당나귀 소리조차도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누가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진다. 그래서 꼭 비가 온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동행자 2800m에서 고산병 시달리기도
점심때가 조금 넘은 시간에 우리는 점심 목적지인 고레파니라는 지역에 이르렀다. 그런데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였다. 같이 간 일행 중 스님이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카가 속이 메스껍다며 토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2800m 밖에 오르지 않았는데 고산병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급한 대로 고산병약을 먹여 산장에서 쉬게 하고 두 명이서만 푼힐전망대로 다녀오기로 하였다.
푼힐전망대는 원래의 코스와는 약간 다른 길을 약 두 시간에 걸쳐 왕복을 하는 곳으로 우리가 갔을 때는 워낙 구름이 많아서 안나푸르나의 아름다운 산군을 볼 수가 없었다. 간간이 구름사이로 보이는 설산을 감상하며 온산을 붉게 물들인 랄리그라스의 모습을 감상해 본다. 이렇게 비가 내리고 사람이 없는 추운 날씨에 차와 비스킷을 팔고 있는 노파와 그의 딸인가 손녀인가 모를 그분들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냥 내려오기가 차마 섭섭하여 차를 한잔 하고는 내려 왔다.
다녀오니 스님은 조금 괜찮아졌다고 하는데 조카는 그냥 이곳에서 쉬었으면 하는 눈치다. 하지만 우리가 정해 놓은 일정상 이곳에서 지체하면 마냥 일정이 늦어지기 때문에 다음 롯지까지 길을 재촉했다.
무모함 마냥 존경할 수만은 없어
가는 길에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니 다름 아닌 대한민국 아줌마였다. 대나무 지팡이 하나와 일반 조깅화를 신고는 포터도 없이 베이스캠프를 다녀온다는 분이었는데 그분의 말이 걸작이었다. 자기는 올라본 산이 청계산밖에 없는데 그곳보다는 올라가기가 쉽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위대한 대한민국의 아줌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등산할 때 만나면 이야기하는 “정상이 조금밖에 안 남았습니다” 정도로 이해해야 할까? 여하튼 대단한 분이셨던 것 같다.
그런데 마냥 존경할 수만은 없는 것이 무모함 때문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한다. 몇 년 전 안나푸르나 지역 묵티나트 4000m가 넘는 고지에서 찬물로 샤워를 하던 젊디젊은 20대 처자가 그대로 숨을 거두는 모습을 아는 분이 목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