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4명
“우리는 희망 있어 행복한 해고자”

“이번 가을에는 부산 영도로 소풍 오세요”

2011-10-06     염귀홍 기자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과 85호 크레인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한 ‘희망버스’는 새로운 시위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희망버스에 탑승하는 사람들은 조직된 노조 조합원보다는 일반시민과 학생들 참가율이 더 높을 뿐만 아니라 김 지도위원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팔로워들과 소통하며 이 사회의 노동문제를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힘으로 재벌총수인 조남호 회장을 지난 8월 18일 국회 청문회에 세우기도 했다. 이날 조회장은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맹공을 당하며 고개을 숙였다.

▲ 박형안씨가 막내인 이규섭씨의 수염을 장난스럽게 만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한 노동자”라고 입을 모았다./ 사진=육성준 기자

2003년 10월 22일 지금은 고인이 된 MBC의 故 정은임 아나운서는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 오프닝에서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라며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라고 전했다.

이 아나운서는 이어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라며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라고 방송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 85호 크레인에는 한 사람이 올라가 있다. 파란 작업복에 이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부당해고 당했음을 알리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파란작업복을 입은 이들을 일컬어 스머프라 한다. 이들도 ‘귀엽다’다며 좋아한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싸움이 다른 것이 있다면 이들 ‘스머프’와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 변승민 ▲ 이규섭 ▲ 윤국성 ▲ 박형안

10월 8일 제5차 ‘희망버스’ 출발을 앞둔 가운데 지난 9월 26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4명이 충북을 찾았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 24명은 4명씩 6개조로 나누어 충남 일대 경북 구미, 호남지역 등 일대를 돌아보고 있다. 이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전국 곳곳을 방문하는 이유는 희망버스에 대한 관심과 응원에 감사드리고 ‘가을소풍’이라는 주제로 열릴 5차 희망버스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또한 이들은 한진중공업 국정조사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충북을 찾은 이들은 윤국성씨(52·27년 근무), 박형안씨(40·14년 근무), 변승민씨(14년 근무), 이규섭(35·10년 근무)씨로 이 중 박씨는 충북 제천이 고향이다. 나머지 이들은 이번이 첫 충북 방문이다. 이들은 청주지역 노동조합을 방문하고 청주시노인전문병원에서 부당해고 당한 요양관리사를 만나는 등 빠듯한 4일간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들을 지난 28일 민주노총 충북지역 본부에서 만났다.

윤씨는 “어느 조합을 가든 다들 반갑게 맞아주고 격려와 함께 투쟁기금을 전달해주는 사업장도 있어 많은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어 윤씨는 “부산말투는 조금 억센 반면 충북에 와 이곳 사람들의 말투를 들으니 다정다감했다”고 충북에 대한 인상을 전했다. 다만 부산 사투리 속에서 박씨는 제천과 부산 사이의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박씨는 “말투 때문에 부산에서도 놀림 받고 고향에 가서도 놀림을 받는다”고 웃어보였다.

대개 해고노동자들을 만나면 안타깝게도 앞날에 대한 걱정과 좌절로 어둡고 위축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4명의 해고노동자들에게는 그러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이들은 ‘해고노동자’가 아닌 ‘복직대기자’라고 자신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 모든 것이 희망버스에 보내준 성원 때문이라고 전했다.

변씨는 “우린 해고자지만 행복한 해고자다. 시민들의 많은 응원과 도움을 받으며 공감을 얻고 있지 않느냐. 청문회를 계기로 조남호 회장이 정말 악덕한 기업주라는 것이 알려지고 우리의 싸움이 점점 더 큰 지지를 얻어가고 있어 행복하다”라고 밝혔다.

변씨는 지난 “조남회 회장의 청문회 당시 국회 앞에 있었다”며 “DMB로 청문회를 지켜봤다. 조회장의 답변하는 것을 보니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더라. 정말 ‘우리보다 더 질긴 사람이다’라고 느꼈다”며 웃었다. 피곤하지만 이들의 눈에서는 남아 있는 조합원들의 의지와 희망버스를 응원해주는 지지자들이 있어 꼭 복직할 것이라는 믿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씨는 “희망버스에 대해 보내준 성원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 사실 5차까지 이어지지 않고 그전에 한진중공업문제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5차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에 오시는 분들은 투쟁보다는 가을 소풍이라는 마음으로 영도를 찾아주셨으면 좋겠다”며 “이번 희망버스를 계기로 정리해고가 당사자들에게 어떤 아픔을 주는지 다 같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작은 바람을 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