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주민참여 예산제, 의견만 참고
9월 전면 시행, 시민참여예산위원은 여전히 ‘들러리’
“연구기능 확대 및 최소 2년 임기 보장돼야”여론도
지난 9일부터 주민참여예산제는 본격 시행됐지만 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각 지자체가 예산편성과정에서 주민참여를 보장하고 지자체 예산의 투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방재정법(주민참여예산)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치단체 대부분이 행안부가 제시한 모델을 모방하는 것에 급급해 실제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직 관련 조례 제정을 하지 않는 곳도 있고 또한 제정한 시·군 역시 주민의견수렴 방법을 인터넷 설문조사나 공청회 등의 형식적인 방법에 그치고 있다. 청주시는 2006년 청주시민참여예산조례가 만들어져 시행됐다.
청주시 2006년부터 시행
청주시의 주민참여예산제도 또한 ‘의견 수렴 기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주시청 홈페이지에 ‘시민참여예산방’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이디어 공모 수준에 머무른다. 또 1년에 4~5번의 회의가 열리지만 시민참여예산위원들은 관련 보고를 받는 수준이다. 사실상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청주시는 최근 동 주민센터에 주민참여예산을 동장과 주민자치 위원회, 각 직능단체 위원들이 같이 짜서 올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결국 예산을 짜서 올린 사람은 공무원이었다. 신동오 기획예산과장은 “정책 사업은 최하 2~3년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동에 국한돼 사업제안을 받다보면 자칫 동네의 숙원문제만을 들고 나올 수 있다. 시민참여예산위원들이 실질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방행정의 예산편성-집행-결산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이해하려면 최소 2~3년의 경험이 중요하지만 현재 시민참여예산위원들의 임기가 1년인 것도 문제다. 1년 연임이 가능하지만 올해 7월, 3기 시민참여예산위원들을 전면 교체해 말이 많았다. 1기와 2기의 경우 연임했지만 3기만 1년 단임으로 끝낸 것이다.
이에 대해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는 성명서를 내고 “조례제정 당시부터 비전문가이자 평범한 시민으로 구성된 주민참여예산의원이 1조에 달하는 청주시의 정책을 이해하고 예산편성에 주체적으로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무리수가 있다. 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기위해서는 최소 2년 이상은 되어야 하며 위원을 일시에 전면교체 하지 말고 50%씩 순환하여 위원회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시민참여예산위원장을 맡았던 김한기 씨는 “위원들의 임기가 2년 단임 및 연임인 경우가 99%이상이다. 청주시처럼 1년 연임할 수 있는 곳은 단 3군데다. 그 가운데도 1년 단임으로 끝난 데는 청주시뿐이다. 참여예산위원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활동하려고 했지만 청주시의 일방적인 결정에 서운한 마음도 컸다”고 성토했다. 이어 “전체 예산가운데 사회복지환경 일부분에라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위원들이 각계각층에서 모이다보니 자연스럽게 홍보도 되고, 궁금한 점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지금처럼 1년에 4번 모여 집행부가 얘기하는 걸 위원들이 듣고만 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난 3기 참여예산위원회의 경우 1회 예산 교육, 2회 전체회의, 2회 5개 분과별 회의, 1회 청주시 지역 내 시설 실사 등으로 이뤄졌다. 지난 3기는 위원수당으로 3만원을 받았는데 예산 부족으로 4번만 받았다고.
65만 인구에 50명 너무 적어
청주시의 시민참여예산위원은 50명이다. 각 동에서 1명씩을 선발하고, 인터넷 공모를 통해 12명을, 나머지 4명은 각 시민단체에서 추천하는 사람들이다. 65만 인구에 시민참여예산위원 50명은 수가 너무 적을 뿐만 아니라 대표성을 갖기도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시청홈페이지에 공고를 띄웠지만 이를 본 사람이 40명도 채 안 된다. 시민참여예산위원을 모집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하다못해 시정소식 및 시민신문 등에도 공지를 띄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시민참여예산위원이 최소 인원이 100명은 돼야 한다는 여론도 많다. 청주시의회 육미선 의원은 “시민참여예산위원들의 최소 임기 2년이 보장돼야 한다. 인원 또한 늘려서 예산 편성에 있어 주민들의 목소리를 많이 담아내야 한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집행부와 시의회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크다. 집행부는 예산편성, 시의회는 예산 심의·의결 권한이 있는데 주민참여예산제는 이들의 고유권한이라고 여겨졌던 것을 견제하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예산을 편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의견을 반영하고, 집행된 후 평가과정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실질적인 참여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이로 인해 투명하고 효율적인 예산배분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주민참여예산제 작동체계(표 1)를 보면 청주시는 반쪽짜리 제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회의, 민관협의회, 연구회 등의 구조가 생략돼 있다. 시민의원회인 시민참여예산위원회만 구성돼 있어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다.
송재봉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형식적인 제도 운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역회의를 통해 의견이 모아져 시민위원회로 오고 민관협의회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주민자치위원회가 지역회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제안했다. 이어 “환류시스템이 이뤄줘야 하는 데 현재 제도는 그렇지 못하다. 지역민이 지역사회에 대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시정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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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126개 워킹그룹 운영해 정책 반영 ‘눈길’
참여예산제는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처음 시작됐고, 90년대 말 국내에 소개됐다. 그 이후 2003년 광주 북구, 2004년 울산 동구, 2005년 울산 북구에서 참여예산제를 선도적으로 시행했다. 이러한 곳들은 참여예산위원만 100여명이며, 지역회의도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참여예산뿐만 아니라 행정 전반에 걸쳐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시민참여행정’이 화제가 되고 있다. 남양주시의 경우 민선 5기 시작과 함께 ‘시민참여행정’을 채택해 그동안 시민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126개의 워킹그룹을 구성해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꼼꼼히 밟고 있다. 워킹그룹에서 발제된 아이디어가 이미 여러 정책에 반영됐다. 이러한 워킹그룹은 전문가, 기업인, 대학생 등이 정기모임과 카페, 트위터 등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풍부한 의견을 내놓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