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 사태, 보수 對 진보의 한 판 승부?
언론이 앞장서고 정치권 개입해 파워게임 연출
“시비 단서제공 사실이지만 왜곡된 파괴력" 중론
2011-06-08 홍강희 기자
현재 강태재 대표의 사퇴로 불꽃튀는 정쟁은 수그러들었으나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사태를 통해 지역사회를 조용히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강 대표 사퇴 이후 민주당충북도당에서는 불법 도축된 소를 이용해 폭리를 취한 김성규 한나라당 청주시의원은 사퇴하라며 사태를 역전시켰다.
그러자 지역사회 분열과 갈등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부 언론과 지역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으나, 차제에 따질 건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김 의원의 가족 친지들이 합심해 병든 소를 불법 도축해서 영업했다는 것은 강 대표의 학력문제 못지않게 큰 죄를 지은 것이라는 게 시민들의 여론이다. 김 의원은 지난 7일 한나라당을 탈당했으나 도민들이 원하는 것은 사퇴다. 정쟁을 야기시킨 한나라당도당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주장해 비웃음을 샀다.
상대에게만 가혹한 잣대
어쨌든 강 대표의 학력문제가 도덕성 시비를 불러올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비판받을 소지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단한 파괴력을 지닌 문제였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30년전에 고교중퇴 사실을 숨기고 청주상공회의소에 취업했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하지만 강 대표의 고교 중퇴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고, 문화재단 대표 선임 이후 강 대표가 충북도에 낸 이력서에도 중퇴라고 밝혔다. 도에서도 학력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강도 높은 사퇴운동이 벌어진 것은 강 대표가 충북참여연대 대표로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도민들에게 깊히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시와 시론’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고, ‘백제의 미소’ 등 소설을 펴냈으며 민선4기 때부터 충북문화재단설립 자문위원장으로 문화재단 설립 산파역을 했음에도 이시종 지사가 ‘데모꾼’을 선임한 것으로 풀이한 것이다. 그러자 평소 시민단체를 달갑지 않게 보는 보수진영에서 총공격을 한 것.
문화예술계 모 인사는 “몇년전부터 충북민예총이 문화재단, 문화예술포럼, 문화선진도, 메세나정책 등을 꾸준히 충북도에 요구해 왔다. 민선4기부터 현재까지 담론화 돼있는 여러 문화정책들을 주도했다. 그렇다보니 민예총 쪽에서 문화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판에 강 대표를 선임하니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학력문제가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지만, 이 게 아니었어도 보수진영에서 끊임없이 흔들었을 것”이라며 “문화예술은 누가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화재단 또한 여러 개의 조직 중 하나일 뿐이다. 며칠 동안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야단법석이 난 것은 민선5기 민주당의 집권 이후 조용히 있던 보수세력과 일부 언론이 똘똘뭉쳐 목소리를 낸 것이나 사안에 비해 너무 과했다”고 분석했다.
또 모 도의원은 정당의 도정개입이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도당은 민선5기 들어 민주당 김동환 도의원(충주)이 오송메디컬그린시티가 잘못됐다고 문제제기하자 자질없는 도의원은 사퇴하라며 난데없이 끼어들었다. 더욱이 강 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자리에는 민선4기 때 인사논란을 촉발시킨 한나라당 김양희 도의원과 병든 소 불법도축 사건의 당사자인 김성규 청주시의원이 참석해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김양희 의원 사태'와 본질 달라
항간에서는 김양희 의원과 강태재 대표 건을 동일한 선상에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이는 다르다. 김 의원은 정우택 지사 시절인 지난 2007년 1월 충북도 전 복지여성국장으로 선임됐다 5개월여 만에 낙마했다. 김 의원에 대해 부적격인사라고 문제제기를 했던 주축은 여성계였다. 정치권이 아니었다.
도내 여성단체들은 김 의원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과 뉴라이트충북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정치적 인물인데다 복지여성분야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퇴진을 요구했고, 나중에 논문표절의혹이 불거졌다. 공모제의 취지는 해당분야 전문성을 가진 인사를 영입해 정책의 효율성을 꾀하자는 것이나 이것이 실현되기 어렵게 되자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다. 단순히 논문표절 의혹으로 사퇴를 요구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강 대표 사태 때는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는 간데없고 정치권이 판을 쳤다. 학력문제도 30년이 지난 일이고, 전문성과 능력부족을 문제삼은 것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학력조건도 없었다. 강 대표가 정우택 지사 시절 문화재단설립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할 때는 괜찮았고, 이시종 지사 때는 안된다는 논리도 우습다는 게 일부 사람들의 얘기다.
한편 문화재단 사태를 통해 여러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린 또 한 사람은 이시종 지사다. 이 지사는 강 대표 학력문제가 터진 뒤 바로 ‘문제없다.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으나 다음 날 강 대표에게 정무부지사를 보내 사퇴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강 대표와 직접 만난 자리에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사퇴하라고는 하지 않았으나 비슷한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아침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자 “강 대표는 이 지사가 택한 첫 번째 진보진영 사람이라고 볼 때 앞으로 지역사회가 사사건건 간섭할 경우 어떤 인사를 할 것인지 궁금하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충북도가 대표 내정단계에서 정확한 이력사항을 내놓지 않고 인터넷 등에 떠도는 것을 종합해 기자들에게 돌린 것이나 인사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도마위에 올랐다.
일련의 일들로 인해 문화재단 출범시기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정렬 문화여성환경국장은 “대표이사 선임, 직원채용, 재단설립을 위한 등기, 사무실 준비 등 앞으로 할 일이 상당히 많다. 그동안 선거대리전 치르듯 난리를 한바탕 겪었으니 냉정을 찾고 조직구성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문화예술인들과 소통의 시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민들은 차제에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충북의 문화예술을 향상시켜 줄 문화재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언론의 압승으로 끝나다
‘마녀사냥’ ‘지나친 신상털기’ 비판도 거세
충북문화재단이 만신창이가 되는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언론들이다. 이 때문에 ‘마녀사냥’ ‘지나친 신상털기’라는 용어도 나왔다. 포문을 연 것은 H방송이다. ‘충북문화재단 이사진 정치성향 따라 선별’ 이라는 제목으로 충북도에서 이사진들의 성향을 분석했다고 고발했다. 물론 문건내용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자극적인 문구도 있는 게 사실이다. 문건관리 소홀의 문제 또한 뒤따랐다. 도에서는 이 문제를 사과하고 예정대로 문화재단을 출범시키겠다고 했으나 일부 언론들은 이사진을 다시 구성하라고 맹공격했다.
그러던 차 나온 게 강태재 대표 학력문제다. C일보가 지난 5월 31일 이를 터뜨리자 대부분의 언론들은 사퇴를 주장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일부 언론들은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시민단체 대표가 문화재단 대표를 맡으면 순수성이 훼손되고 정치적 이념이 개입될 것이라며 반대여론을 전파했다. ‘강태재 대표직함 40여개’ ‘충북문화재단 대표 강태재씨 내정...문화예술계 반발’ 등의 보도가 나왔다. 때마침 터진 학력문제는 ‘불난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이렇게 한 목소리를 낸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은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그 중 D일보의 ‘강태재 씨는 지역사회를 우습게 보나’ ‘충북문화재단 사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각계인사 187명 전화설문’ ‘강태재 씨 말·말·말’ 등의 기사와 C신문의 ‘충북시민단체 제 허물엔 침묵’ 그리고 C일보의 ‘하룻새 말 뒤집는 강태재씨’ 등의 기사는 한 사람에 대한 과도한 공격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일명 ‘신상털기’를 넘어 일방적인 비난 아니냐는 것이다. 각계각층 인사 187명에게 전화설문 형식을 통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3%가 ‘즉각사퇴’를 주장했다는 기사는 그 대상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데다 어떻게 해서 93%의 찬성을 이끌어냈는지도 나와있지 않다.
그리고 ‘충북시민단체 제 허물엔 침묵’ 기사는 시민단체를 싸잡아 비난했다. 음주교통사고·성추행·허위학력 게재 등 도덕성 논란, 남의 흠 들추기에는 가혹할 만큼 비판을 퍼부으면서 왜 침묵을 지키느냐는 것인데 이는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여론이다. 또 ‘강태재 대표 직함만 4O여개’ 라는 C일보의 기사는 잘못된 부분이 많다. 여기에는 충북아트페어 조직위원장, 내륙문학회·충북문인협회·충북소설가회원·문화사랑모임 회장 등 이미 임기가 끝난 것까지 포함돼 있다.
강태재 대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일부 언론보도에는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퇴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언론재판’이라며 오보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일부언론들은 이번에 강 대표 신상에 관한 작은 부분까지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가족관계부터 문단에 등단한 것이 사실인지, 서원대에 어떻게 해서 출강하고 자격시비는 없는지 등등을 취재했다는 소문이다.
이사진 재구성 ‘명분없다’
문화계 인사들 “그만 흔들어라”
한나라당충북도당과 일부 언론들은 강태재 대표 사퇴외에도 충북문화재단 이사진 재구성을 줄곧 주장했다. 이사진 성향분석 파문 이후부터 나온 얘기다. 하지만 이사진 재구성은 명문이 없다는 게 지역여론이다. 처음부터 문제가 된 문화재단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판을 짜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나 이는 설득력이 없다.
한나라당도당은 이시종 지사의 코드인사를 지적했으나 이 또한 그렇지 않다. 공석 중인 대표를 빼고 전체 20명 중 순수민간인은 15명이다. 이중 예총·문화원 쪽 인사는 10명, 민예총 쪽은 5명이다. 예총계열 인사가 두 배나 많기 때문에 코드인사라고는 볼 수 없다. 진보진영에서는 오히려 이를 불평하고 있다. 충북도는 이사진을 구성하면서 성별·연령별·지역별·활동영역별·장르별 안배를 했다고 했으나 기계적 형평성을 맞추다보니 ‘비빔밥’ 수준이 됐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많다. 자칫하면 배가 산으로 가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사진을 새로 구성할 만큼 결격사유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이정렬 충북도 문화여성환경국장은 “예총·민예총·문화원·충북도의회 네 군데서 이사 추천을 받았다. 정당인사는 넣지 않았고, 추천도 받지 않았다. 우리는 최선의 인선을 했고 적법한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재구성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서 “문화예술이 정치의 부산물이어서는 안된다. 문화재단을 설립하는 것은 충북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것이지 다른 게 아니다. 일이 이렇게 돼서 너무 가슴아프다”고 말했다. 충북참여연대는 “이사진 구성이 근본적으로 잘못됐거나 재구성 해야 할 만큼 진보에 편향된 인사로 구성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민선5기에 걸맞지 않게 보수적인 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다. 이 지사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충북민예총도 더 이상 정치놀음의 소모적 논쟁은 시급히 종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관심가져야 할 부분은 문화재단이 내실을 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재단 직원은 대표까지 총 6명이다. 계약직 민간인 2명과 충북도 파견직원 2명에 사무처장 1명. 사무처장은 도 문화예술과장이 겸직한다. 대표도 무보수 명예직으로 선임할 예정이어서 공모하기 어려운 구조다. 예산도 타 지역에 비해 훨씬 적다. 그러나 민선4기 때 문화재단 설립 자문위원회에서 문화예술인들이 합의 본 사항은 전체직원 최소 5명, 사무국장은 문화행정가 전국 공모였다. 이 때 수렴된 의견에 비해 실제는 많이 축소됐다. 여기서 직원 5명은 순수 민간인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