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곳의 정의
김기연 민주노총 충북본부 부장
2011-01-13 충청타임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에 하버드에 근무하는 빈곤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수위, 청소부, 시설관리일을 하는 그들은 권리의 대가로 지불될 임금삭감과 해고위협 앞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하버드 대학교수인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정의'는 금기시된 불온한 용어에 불과했다.
경제적 불평등의 그늘에 움추렸던 그들에게 정의의 볕이 들기 시작했다. '1등인 천재보다 사회에 봉사하는 수재를 원한다'는 하버드 대학에 재학 중인 공부벌레들이 나선 것이다. 학생들은 200억 달러가 넘는 거대한 기부금을 보유한 부자대학 하버드가 10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최저생계비조차도 지불하지 않는 경제적 불평등을 용인할 순 없었다. 학생들은 저임금·비정규 노동자들에 기초한 '안전하고, 깨끗하고, 안락한 대학'을 향유하는 자신들이 부끄러웠다.
학생들은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총장실을 점거했다. 노동자들이 해고의 상황에 내몰린 것도, 임금이 삭감된 상황도 아니었지만, '빈곤과 인간의 존엄성의 결여가 하버드 대학의 경제적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음으로 적정한 '생활임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갔다. 그 기간에 교수들은 특별수업을 진행했다.
3주간의 농성 끝에 학교 측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임금을 인상했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1년의 일이다. 그 뒤에도 하버드의 '행동하는 지성'은 노동자들의 권리와 정의를 위해 나섰다. 2007년에도 경비노동자들을 위해 30명의 학생들이 9일간 곡기를 끊으며 투쟁에 동참한 바 있다.
'유령'. 일상이 시작되기 전 일을 마치고 어디론가 사라져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그들이 비운 공간을 학생과 직원들이 메울 무렵 노동자들은 계단 아래, 창고, 배관실, 보일러실을 전전하며 숨어야 했다. 옆칸 화장실에서 누군가 대소변을 볼 때 숨을 죽이고 김치쪽을 씹어야 했다. 다리를 편히 뻗을 곳도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쪽잠으로 피로를 풀어야 하는 노동자들. '소장님'은 그런 그들에게 '말'이 돼라 했다. "당신들은 말이니까, 앉지도 말고, 잠도 서서 자라."며 늙어서 까먹을 테니 매일 아침 그와 같은 '훈시'를 잊지 않았다. 대한민국 임금노동자 중 네 번째로 많은 40만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이다. 40만 명 중 99%가 비정규직인 노동자들. 대학 도서관, 기숙사, 식당, 학생회관, 대학 곳곳에 그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들은 한국사회에선 여전히 '유령'에 불과한 존재다.
그런 그들이 보이지 않는 '유령'에서 살아 있는 '인간'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을 만들고서야 '실체'를 인정받은 그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홍익대에선 140여 명이, 한국교원대에선 15명이 '실물화'의 대가로 '집단해고 통지'를 받았다. 영원히 유령일 것을 강요받는 그들에게 하버드 학생들이 보여준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줄 '지성'의 손길이 절실하다. 그들을 지지하고 학교당국에 해결을 촉구하는 트위터의 짧은 한 줄에서부터 '행동하는 지성'을 보여주자. 인터넷 대통령 본좌 허경영의 신곡 제목처럼 한국에도 지성이 함께함을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