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불운했던 학운위원의 추억

권혁상 대표이사

2010-12-09     충북인뉴스

"참여하지 않는 자는 비판할 자격도 없다"는 누군가의 격한 '사회 참여론'에 고무돼 2년간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청주 Q초등학교 다닐 때니까, 7~8년전 일이다. 첫번째 회의의 주요안건은 공동경비 분담 건이었다. 학운위원 식대나 학교 행사 찬조금 등으로 지출하겠다고 하니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학교 예산에 공식적으로 '학교운영위원회 운영비'가 책정돼 있으니 그걸 활용하고 부족하면 더 걷자"고 반대의견을 냈다.

하지만 "학교 예산도 빠듯한데 학운위가 운영비까지 쓰는 건 그렇지 않느냐? 우리가 쓰는 돈은 스스로 내놓자"는 통큰 발언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때 통큰 발언을 한 학운위원장은 건설업을 하는 젊은 사업가였는데 이후 지방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첫 출발부터 어깃장을 부린 신임 학운위원은 걸핏하면 수정안이나 반대의견을 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안 설명을 한 학교장과 화기애매한(?) 설전을 벌이고 나면 사회를 맡은 학운위원장이 절묘한 중재에 나선다. "권위원님 말씀도 십분 타당한데 지금까지 관행을 고려해 내년부터 그런 방식으로 개선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른 학운위원들의 침묵속에 대부분 원안가결로 결론났다.

한번은 졸업생 앨범 제작 안건이 올랐는데 장시간 논의끝에 앨범소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기획안을 받아 경쟁입찰을 시켜 업체를 선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안색이 언짢아진 교장이 '이런 식으로 결정하면 난 책임지지 못한다. 학부모 위원들이 알아서 하라'며 벌떡 일어났다.

학운위원장이 뒤쫓아 나갔고 얼마뒤 돌아와 교장의 말을 전했는데 "기존 앨범업체에서 매년 학교발전기금을 3백만원씩 냈고 학교의 자료 사진도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에 신규 업체가 들어오면 혼란이 크다" 는 것이었다.

교장의 돌발적인 몽니(?)로 안건은 다시 난상토론에 부쳐졌고 최종 결론은 '내년부터 새로운 방법으로 업체를 선정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사건건 변화와 개혁을 ‘내년’으로 넘겼으나 정작 학운위원장이 바뀌고나니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상황이 거듭됐다. 불가항력으로 사퇴하려고도 했지만 아이를 학교에 맡겨둔 입장에서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2년 임기를 채우고 말았다.

필자가 불운했던 학운위원의 추억(?)을 되살리는 이유는 최근 청주시학교운영위원회협의회와 이광희 도의원간의 갈등 때문이다. 이 의원은 도의회 교육사회위원회 소속으로 공교육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신랄하게 지적해온 선량이다.

학교 식판의 위생상태를 점검을 위해 사전예고없이(?) 식판을 수거했다가 한국교총에 호된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청주시 학교운영위가 회의 안건의 96%를 원안가결 처리한 자료를 제시하며 '거수기'라고 비유했다가 학운위협과 교총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학운위원회나 도의회 교육사회위원회나 공교육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런데 같은 우군끼리 소모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설사 이 의원의 비유가 불쾌하다 해도 본래의 뜻이 학운위를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운영위원으로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뭔가 개선점을 찾아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2년동안 1308건의 안건중에 고작 3.8%의 안건만을 수정의결 또는 보류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대로 방치해선 안될 일 아닌가? 서로의 진정성을 오해하고 있다면 차라리 도의회와 학운위협이 공동의 교육 토론회를 마련해 각자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펼쳐주길 기대한다. 지역 교육계의 우군끼리 벌이는 골육상쟁, 더 이상 보기가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