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박근혜는 충북의 구세주인가

오송분기역 당론에 이어 세종시 원안 고수에 지역 고무
미디어법 선례 볼 때 ‘MB도우미’ 아니면 ‘대권용’ 의혹

2009-10-28     이재표 기자

이명박 정부 충북을 버렸다/박근혜 세종시 발언, 두 가지 해석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 고수 발언에 지역은 고무됐다. 그러나 과거 미디어법 선례에 비춰볼 때 대권용이거나 충청권의 민심을 달래기 위한 고도의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차기 대권 최고의 블루칩이다.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 다른 잠룡들에게 압도적 우세를 보여 왔는데, 충청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단 충북은 고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옥천이라는 점에서 심정적인 지지기반이 깔려있다.

박 전 대표가 유력한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것은 2004년 3월 ‘차떼기 정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의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 시절을 이끌면서부터다. 이후 박 전 대표는 충북을 향해 ‘예쁜 짓’을 하면서 구애공세를 이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을 놓고 충남 공주역 대신 충북 오송역을 일관되게 두둔한 것이다. 당론이냐 아니냐를 놓고 말이 많았지만 한나라당은 2004년 9월 당내 문건에서 오송분기역을 확정했고 당시 박 대표는 2005년 6월30일 입지가 확정될 때까지 말을 바꾸지 않았다.  

최근 박 전 대표는 또 다시 충북의 환심을 샀다. 이번엔 대전·충남을 포함한 충청권 전체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환호했다.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앞서 ‘세종시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권 주류에서 제기되는 세종시법 수정론에 반대 입장을 거듭 강조하며 “세종시 문제는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라고 ‘작심 발언’을 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원안에다가 필요하다면 ‘플러스알파’가 돼야 한다. 정치는 신뢰다.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렇게 큰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무슨 약속을 하겠는가. 국민이 과연 한나라당을 믿어주겠나”라며 세종시 문제에 있어 과거 여야가 합의한 내용에서 물러서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박 전 대표는 ‘여권 내부에 수정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질문에도 “세종시와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선거 때 모르고 한 것이 아니다”라며 “여야 정치인들이 앞 다퉈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수없이 토의했고 선거 때마다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시 수정안, 심지어 백지화를 밀고 있는 여권 주류로서는 박 전 대표의 ‘말의 힘’을 고려할 때 ‘경천동지’할 발언이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양심상 세종시를 그대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에 정면으로 각을 세운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에 이를 정치적으로 의역(意譯)하는 해명들이 쏟아졌다.

친MB계인 공성진 최고위원이 26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박 전 대표가 수정이 안 된다고 한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원안에 플러스알파를 하자고 한 것이고 이는 지금처럼은 안 된다는 데 맥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충북 민주당까지도 ‘환영일색’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역의 반응은 한마디로 말해 ‘환영일색’이다. 오히려 한나라당 충북도당의 반응이 담담하게 느껴질 정도다. 송태영 한나라당 충북도당위원장은 “원안에 플러스알파라는 당론을 확인한 것일 뿐이다. 그대로 추진하면 된다. 오히려 이를 쟁점화하는 것은 수도권 의원들에게 수정론을 자꾸 거론할 빌미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독도는 분명 우리 땅인데 이를 쟁점화할수록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되는 것과 똑같은 논리”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행정도시·혁신도시 무산저지 충북비상대책위원회는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의 행정도시 원안 고수 입장표명을 환영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더 이상 국론분열을 부추기지 말고, 행정도시 원안추진 공언을 이행해 원칙과 신뢰에 바탕한 국정기조를 정립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홍재형(청주상당) 의원은 한술 더 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세종시 건설 원안 플러스알파론’을 적극 지지한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너무나 당연하고 시의적절한 표명으로 박 전 대표의 소신에 찬사를 보낸다”며 추켜세웠다. 이시종 도당위원장도 “세종시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되는 것은 여·야의 합의에 의해 국회가 결정한 것”이라며 “만일 수정추진 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 9단 박 전 대표 ‘다중포석’
이에 반해 박 전 대표의 세종시 발언을 고도의 정치적 전술로 바라보는 일부 시각도 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시선 가운데 가장 단순한 분석은 이를 대권용 포석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다소 위험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쉽게 말을 바꾸는 정치판에서 원칙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강화함으로써 ‘결단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그간의 평가를 오히려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이 수도권 표를 쉽게 손에 넣은 반면 차기 선거에서는 수도권 표 분할이 뻔한 상황에서 정치적 기반인 영남을 넘어서는 지지세력 확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충청권 지지기반을 확실하게 다지려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더 나가서 박 전 대표의 발언에 위기에 빠진 이명박 정부를 구하기 위한 계산이 담겨있는 분석도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지난 14일 미디어오늘이 전국언론노조와 함께 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33%까지 떨어졌다. 특히 충북은 국정지지도가 18.4%에 불과한 상황이다. 충남 19.3%, 대전 25.8% 등 충청권은 모조리 평균이하다.

MB와 ‘미리 각본 짰다’는 주장도
따라서 전통적 한나라당 강세인 영남권과 이 대통령이 공을 들이는 수도권은 그렇다 치고 정치적 열세가 분명한 충청권에서 ‘박근혜 카드’로 만회해보고자 하는 여권의 각본에 따른 발언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충청권 여론잠재우기를 위해 내세운 ‘정운찬 총리 카드’가 역효과만 불러온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특급소방수로 나섰을 것이라는 추론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이는 박 전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 등 영향력이 필요한 일정시점까지만 여권핵심의 수정론을 견제하다가 결국엔 당 주류의 결정을 따라가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미 지난 7월 미디어법 처리과정에서 이 같은 전략을 노출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6일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다녀온 박 전 대표가 청와대에서 40여분에 걸쳐 나눈 밀담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계인사는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깊은 대화를 나눴고, 오히려 친MB, 수도권세력에 맞대응함으로써 비수도권, 특히 충청권의 여론악화를 만회하려는 전술을 세웠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람을 등지고 오히려 산불을 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