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시민운동 20년 위기냐 기회냐

89년 여성민우회·충북시민회 출범, 민주화운동에 ‘시민’ 등장
신흥권력 비판·MB정부 들어 위기 분석 불구 대안세력 입지

2009-05-27     김진오

시민단체나 시민운동이라는 용어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운동 환경이 바뀌면서 만들어졌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 캠퍼스 내에 정권 비판 현수막을 게시하거나 대자보를 붙이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유인물 배포도 학내에 상주하는 경찰의 눈을 피해 기습적으로 감행해야 했다.

▲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충북지역 시민운동은 참여와 견제, 지역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면서 지역사회의 당당한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사진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가 지난 22일 20주년을 맞아 마련한 ‘Home Coming Day’ 행사 장면.

경찰의 눈에 잘못 띄어 연행되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몽둥이 세례에 물고문 등 가혹행위에 시달려야 했다.

노동현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서슬퍼런 공안정국이 지속되면서 불법연행과 폭행, 심지어 구사대를 동원한 무지비한 폭력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던 것이 87년 6월항쟁을 전후해 적잖은 변화가 일었다. 대학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총학생회가 부활하면서 학생들의 직선투표로 회장을 선출하게 됐고 학내에 상주하던 경찰력도 철수해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 됐다.

유화국면이 펼쳐지면서 소위 목숨 걸고 투쟁해야만 했던 ‘전선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분화 되고 확대되기 시작했다.
민주화를 외치면 잡아가 가두던 시대에는 ‘시민’이 전면에 나설 수 없었지만 점차 민주화 내지 참여운동의 전면에 ‘시민’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사회에 당당한 목소리 내

1989년 여성민우회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의 전신인 충북시민회가 출범하면서 우리 지역에도 시민운동이 본격화 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역의 크고 작은 현안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일방적인 관 주도 행정에도 견제와 감시자의 역할을 자임했다.

도내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성장한 충북참여연대는 출범 이듬해 ‘고속전철역 충북권 유치를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며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정권을 비판하는데 치중했던 당시까지의 사회단체들과는 달리 지역현안을 전면에 내걸고 나선 것이다.

정상길 현 주성대 총장이 당시 참여연대 초대 회장이었다는 사실로도 20년 세월동안 시민단체들이 얼마나 지역에 안착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를 맞아 벌인 공명선거 실천운동을 통해서도 시민단체들의 존재감을 과시했으며 이는 16대 총선이 실시된 2000년에는 이른바 ‘바꿔 열풍’을 몰고 온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으로 승화된다.

시민운동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주민참여 운동의 깊이를 더 해 갔고 2004년 청주시 시민참여기본조례를 성사시키는 등 각종 조례 제정과 주민감사 청구 활동 등 지역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2007년과 2008년 청주시 공무원들의 시간외 근무수당 편법수령, 청주시 음식물쓰레기 비리 의혹 등과 관련해 주민감사를 청구해 문제점을 파헤치는 등 직접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민운동은 또 전문화 되기 시작해 환경운동연합,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행동하는복지연합 등 분화되기 시작했다.
송재봉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민운동이 전문화 되고 있는 것은 견제와 참여를 넘어 대안까지 제시할 정도로 성숙돼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MB 정부의 견제·압박, 조직력 결속 기회

충북참여연대가 지난해 이미 회원 1000명을 넘었고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도 ‘500플러스 운동’을 통해 회비를 납부하는 진성회원 1000명 시대를 열었다.

올해로 창립 15주년을 맞은 충북경실련도 지방분권 운동을 펼치며 800명의 회원을 확보하는 등 20년 세월 동안 성과 만큼이나 대중성 확보에도 성공적이었다.

오히려 시민단체가 권력화 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견제 심리가 작용할 정도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시민운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MB정부 출범 이후 촛불집회 참여단체에 대한 정부·지자체 지원 중단 등 견제와 압박이 강해지고 있으며 시민단체에서는 이를 탄압으로 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충북지역에서도 청주통일청년회 전현직 간부 3명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하면서 핵심 조직원이 시민사회단체에 침투해 친북활동을 했다는 등 정부와 공안당국의 시각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 내부 판단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서울 환경운동연합의 회계부정 사건이나 정부·지자체 사업에 참여하면서 사업비 형식의 보조금을 받아온 점 등도 근거로 들며 시민운동이 자생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염우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시민사회운동이 상층중심의 성과사업에 치중했다는 자체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서울 환경련 회계 비리 사건도 비대해진 단체 몸집에 비해 미숙한 실무력이나 내부 문제가 불러온 결과지만 이를 악용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흠집을 낼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시민운동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 극복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며 회원 500명 배가 운동에서도 드러나듯 결속력이 강화되는 쪽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에서도 스타 시민운동가 배출
송재봉·이두영·염우 씨 분야별 독보적 존재 공인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이두영 충북경실련, 염우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이들 세명의 현직 사무처장은 소속 단체의 출범부터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민단체 베테랑 실무자들이다.

▲ 좌로부터 송재봉 충북참여연대, 이두영 충북경실련, 염우 청주충북환경련 사무국장.

또한 이들은 시민운동이 지역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등장하면서 스타 시민운동가로도 통하고 있다.

충북시민회 시절부터 충북참여연대를 이끈 송 처장은 지방자치와 견제, 주민참여 등의 크고 작은 현안의 최일선에서 활동해 왔다.  최근에는 충청대 행정학과 겸임교수로 ‘시민운동’ 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있고 청주불교방송의 아침 뉴스프로그램인 ‘충북저녈 967’에서 앵커를 맡는 등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두영 충북경실련 사무처장은 ‘분권 운동가’로도 통한다.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 분야에 해박해 행정중심복합도시,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첨단복합산업단지 유치 등 지역 현안과 관련한 깊이 있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염우 충북환경련 사무처장은 달천댐 저지, 청주산남3지구 원흥이 생태공원 조성, 밀레니엄타운 골프장 반대 등 지역 환경문제에 발벗고 나서며 유명세를 타고 있는 활동가다.
특히 염 처장은 최근 ‘500플러스 운동’을 성공시켜 시민운동의 전환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등 지역 환경운동의 산 증인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스타 또는 시민운동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것에 대해 매우 부담스러워 한다.

송 처장은 “시민운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발적인 참여와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학계와 종교계, 법조계 등 지역 어른들의 힘이 컸다. 몇몇 실무자들에게 지나친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