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복지카드 ‘장애 투성이’

ATM 인출기능 없어 금융거래 불편
시각장애인용 점자카드 제작도 외면

2009-01-07     윤상훈 기자

▲ 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복지카드가 금융권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장애인들의 민원을 낳고 있다.
장애인들의 경제활동 지원을 위해 발급된 장애인복지카드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채 반 쪽짜리 카드로 전락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1년 신한카드(당시 LG카드)를 ‘장애인 LPG차량 지원사업 및 장애인 등록증 개선사업’ 사업자로 선정, ‘장애인복지카드’ 제도를 운영해왔다.

장애인복지카드는 장애인 등록증 기능과 함께 신용카드(체크카드) 기능을 겸할 수 있는 카드로 현재 60만 명의 장애인들이 사용 중에 있다. 가스 충전소에서 장애인 차량용 LPG를 결제할 경우 리터 당 200원이 보건복지부 보조금 형태로 지원되며, 현금서비스와 할부 수수료의 20%가 감면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이 카드의 독점적 사업권자였던 LG카드가 지난 2007년 10월 1일 신한카드에 흡수돼 모든 금융 서비스가 가능하게 됐음에도 통장 잔고의 인출입을 은행 객장이나 ATM 기기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반 카드 기능이 포함되지 않아 많은 장애인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지체장애 2급인 김모 씨(제천시 청전동)는 “장애인 복지카드는 장애인용 LPG가스를 신용카드로 후납 선결제할 수 있는 등 이용 시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그러나 여전히 LG카드 때와 마찬가지로 카드 전용서비스만 제공될 뿐 통장 잔고를 ATM 기기를 이용해 인출하는 등의 은행카드 기능이 배제돼 금융 거래에 불편이 따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최근 신한은행을 방문해 기존의 장애인복지카드를 결제 통장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도록 기능을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은행 측은 현 복지카드는 인출기능 자체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당초 장애인복지카드는 사업 주관사가 신용카드 전용사인 LG카드였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한 달 동안 사용한 카드 이용금액을 카드사 객장에 직접 납부하거나 우체국의 카드 사용료 전용 계좌를 통해 자동이체해 왔다. 은행 카드가 아니었으므로 할부, 현금서비스 등 신용카드 기능 이외에 결제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거나 통장에 돈을 입금하는 현금카드 기능은 포함될 수 없었다.

그러나 LG카드가 신한카드와 통합된 이후에는 장애인 복지카드를 일반 카드와 연동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여전히 순수 신용카드로서의 기능만 허용되고 있는 게 문제다. 이 때문에 장애인들은 복지카드와는 별도로 주거래은행 통장과 연계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생활함으로써 카드 관리와 이용의 비효율성에 따른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런가 하면 장애인복지카드와 주민등록증이 규격과 재질에 차이가 없어 시각장애인들이 큰 불편을 호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열차를 자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 박모 씨(제천시 모산동)는 장애인용 할인 차표 구매를 위해 복지카드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역무원에게 주민등록증을 제시해 제지당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반대로 은행 점포에서 장애인복지카드를 주민등록증인 줄 알고 잘못 제출했다 낭패를 본 일도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게 박 씨의 설명이다.

박 씨는 “신분증과 장애인복지카드가 모양이나 재질, 두께까지 똑같아 시각장애인들이 전혀 구분을 할 수가 없는 형편”이라며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지갑에 신분증과 복지카드를 각각 따로 보관해 들고 다녀야 하는 등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처럼 장애인복지카드가 시각장애인의 편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급돼 부작용이 속출하자 국가인권위는 지난 2008년 8월 20일 “다른 카드와 섞이거나 자신만의 표시가 없어졌을 때 중증 시각장애인이 장애인등록증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이 경우 자신의 개인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거나 범죄에 악용될 위협에 노출되기도 한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인권위는 “점자가 표기되지 않은 장애인등록증을 발급함으로써 중증 시각장애인들은 장애인등록증의 내용을 인식하고 행정절차 및 서비스에 참여하는 데 현저한 어려움이 있고 결과적으로 중증 시각장애인에게 불리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바 이는 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보건복지가족부가 장애인복지카드에 점자기능을 부여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장애인등록증의 물리적 공간 부족과 기술적 곤란을 감안할 때 시각장애인이 인식할 수 있도록 당장 기능을 개선하기는 어렵다”며 이를 중장기적 검토 과제로 미룬 상태다.

이에 대해 장애인 단체 등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배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애인복지카드가 장애인들에게 불편 요인이 되고 있다면 기술적 문제를 앞세우기보다는 조속히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며 정부와 금융권의 성의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