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독식 사회의 그늘

조광복 호죽인권법률센터 노무사

2008-02-28     충북인뉴스
내가 외국인 노동자를 노동상담일과 관련하여 처음 만난 것이 대략 8년 쯤 전이다. 그 때는 노무사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될 때였다. 사장이 한 외국인노동자를 데리고 왔는데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대뜸 사장이 하는 얘기가 “저 놈” 산재처리 좀 맡아서 해달라는 것이었다. 정확히 “저 놈”이라고 하였다. 앞뒤 사정을 들어보니 손가락 몇 개가 절단되었는데 치료비와 위로금 약간만 주고 끝내려고 하다가 어느 단체에서 전화가 와서 산재처리를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일을 처리해 주기로 하고 돌려보냈는데 그 때까지도 그 외국인노동자는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 후로 업무 때문에 외국인노동자들을 만날 일이 늘었다. 한 외국인노동자가 퇴직금을 받지 못해서 찾아왔다. 그래서 회사에 전화를 하였는데 관리자가 하는 얘기, “다른 공장에서는 때리면서 일 시킨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도 않는다. 그런데 무슨 퇴직금까지 달라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또 어떤 외국인노동자는 세 번을 만난 적이 있다. 체류기간을 넘긴 불안정한 신분에서 근무 중인 회사가 문을 닫아 우여곡절 끝에 임금과 퇴직금을 청산받았는데 또 다른 사업장에서 임금을 떼어먹히고, 그 다음에 옮긴 사업장에서도 임금을 떼어먹힌 것이다. 이쯤 되면 그 노동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진절머리가 날 것이다.

그런데 한 번은 퇴직금을 안 주기 위해서 사업주가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여성인 외국인노동자가 2년을 일하고 퇴직금을 못 받았다며 찾아왔다. 진정을 넣기 전에 회사에 전화를 하였다. 그러자 회사는 퇴직금을 제하고도 회사가 오히려 받아야 할 금액이 있다며 근로계약서 한 장을 팩스로 보내왔다.

읽어보니 “기숙사 사용료 1000원, 조식·토,일요일 식대비 각 1500원”이라고 적고, 끝에는“퇴직 시 정산함”이라고 써 놓은 것이었다. 결론은 전체 근무기간에 해당하는 기숙사 사용료와 식대비를 계산하면 퇴직금보다 더 나오니까 퇴직금을 제하고 나면 오히려 자기가 받아야 할 금액이 있으므로 그것을 탕감해 준 것만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받아내긴 했지만 나는 식대비와 기숙사비를 퇴직할 때 정산하겠다는(사실은 퇴직금과 맞바꾸겠다는) 새로운 발상에 할 말을 잃었다. 참고로 식사와 기숙사는 저렴하게 힘든 일을 할 외국인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상식이다.

나는 이러한 일을 겪을 때마다 우리 사회 깊은 곳에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함부로 대하려는 혹은 그렇게 대해도 된다는 뒤틀린 심성이 있지 않나 생각해볼 때가 있다. 혹시 산업화시대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구조적으로 다져진 승자독식(이긴 자, 강한 자가 모든 것을 누리는)사회가 출세주의, 경쟁주의를 부추기고 약자를 경시하도록 우리의 심성을 척박하게 만들었는지 자문해 보게 된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우리 사회 일부로부터 받는 수모와 반인권적인 현실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 수 있다. 이들이 자신의 잘못도 아닌 오로지 사회적으로 약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함부로 대접받는 것이 큰 이슈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여성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장애인노동자 등 놓여 있는 처지만으로도 그들의 노동인권이 경시되고 함부로 대접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여성이니까 남성보다 혹은 비정규직이니까 정규직보다 적게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생각 같은 것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첫 칼럼을 쓰는데 왜 외국인노동자가 생각났을까? 그야말로 승자독식의 철학으로 부와 권력을 축적한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외국인노동자, 여성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장애인노동자들이 보이기는 할까? 그러니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미덕인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을 자신이 거울을 보듯 대할 일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외국인노동자들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 이명박 정부에서 승자독식의 논리로 당연시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