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건축박물관 '무산'이 남긴 두가지 교훈
충북도, '안되면 되게 만드는’ 해결사 필요하다
정우택 충북지사가 얼마전 100일 잔치를 벌었다. ‘잘사는 충북 행복한 도민’을 슬로건을 내걸고 경제특별도 건설을 약속한 정우택 호가 출범 100일을 맞이한 것이다.
충북도는 이날 ‘경제특별도’라는 포장지에 담긴 그동안의 성과를 선물로 내놓았다. 5년, 1825일로 완성되는 임기의 첫 100일을 놓고 성과를 늘어놓는 것도 겸연쩍고, 초장부터 ‘잘했니 못했니’ 따지는 것도 경우가 아니지만 정책의 기조에 대한 과오는 짚고 넘어가야한다는 지적이다. 처음부터 각도가 빗나가기 시작하면 종국에는 그 간극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신응수 대목장이 사재 200억원을 들여 건립하려는 전통건축박물관의 부지가 결국 강원도 강릉으로 결정되는 과정을 통해서도 충북도가 경제특별도를 추진하는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교훈들이 도출됐다. 큰 갈래로 구분하면 경제특별도를 추진하는데 있어 기업유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수동적인 공무원식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박물관 유치를 추진했던 인사들의 조언과 기업유치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던 타 시도의 사례에 견주어 충북도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문화·관광은 굴뚝 없는 공장
충북도가 발표한 ‘100일 성과’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경제특별도를 시동하기 위해 3팀 10명으로 투자유치단을 구성해 8월25일 출범했으며, 9월13일에는 자본금 800억원 규모의 ‘영보화학’을 유치했다는 내용이다.
앞으로 5년 동안 767억원 투자해 13개 협력업체 동반 이전이 이뤄질 경우 3850억원에 이르는 생산유발, 2700여명에 이르는 고용유발 효과가 예상된다는 장밋빛 청사진도 함께 제시했다. 충북도는 이와 함께 지역건설업 활성화 조례제정을 추진해 도의회에 상정했다.
또 미국 아이다호주와 자매결연 20주년 행사에 참석해 농산물 2120만불의 수출계약을 체결한 것도 성과물로 내놓았다. 그러나 기업유치만이 능사라는 발상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비교적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는 기업유치나 투자유치에만 천착해서 이를 자치단체장의 치적으로 삼으려할 경우 ‘100년 대계’ 수준의 선굵은 행정은 실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신응수 대목장이 충북 청원 출신임에도 전통건축박물관의 입지를 강릉에 빼앗긴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물관의 청주 유치를 위해 노력해 온 장현석 청주문화원 부원장의 계획서에 따르면 전통건축박물관은 전시관 외에도 한옥체험관, 공예학교, 민속체험관, 문화재 재현물 등을 갖춘 대규모 민속마을 수준이다.
신응수 대목장이 지니고 있는 브랜드 가치 역시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
1991년 경복궁 강녕전을 시작으로, 일제가 훼손한 경복궁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15년째 복원공사를 벌이고 있으며, 수원성, 청와대 대통령 관저, 수많은 불교유적 등이 그의 손을 거쳐 복원됐다.
충북도의 밀레니엄 사업으로 추진된 천년대종 조성과 관련해 종각인 천년각도 신 대목장의 작품이다. 미래도시연구원 이욱 사무국장은 “상당산성 재정비나 흥덕사 복원 등 앞으로 있을 지역내 문화재 복원 등을 고려할 때도 이번에 전통건축박물관을 청주로 유치했어야 했다”며 “신응수라는 인물이 지닌 가치를 고려할 때 신 대목장이 노후를 고향에서 보낼 수 있도록 지역에서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무원 변하지 않으면 ‘경계’특별도
경제특별도가 헛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공무원의 마인드가 변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명제다. 기업하기 좋은 도를 만들기 위해 법령의 정비도 중요하지만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이 진취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허가를 해주는 입장이 아니라 허가에 필요한 조건을 조성한다는 해결사의 정신으로 바뀌지 않으면 경제특별도가 아니라 ‘경계특별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뼈있는 농담도 나돌고 있다. 도지사 이후를 생각하고 있는 정우택 지사가 모델로 삼고있는 것은 대권주자 가운데 한명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경기도.
규모는 작지만 투자유치 전담부서를 만들어 기업유치에 나선 것도 이때문이다.
경기도의 경우 평범한 사업체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첨단기업, 특히 외국의 첨단기업이나 연구개발센터를 대거 유치했다. 외국계 첨단기업들의 경기도 진출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취임한 2002년 7월 이후 크게 증가했다. 필립스나 3M, 델파이사, 스미토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기도에 이처럼 외국계 첨단기업들이 대거 입주한 것은 경제투자관리실을 첨병으로 내세워 적극적으로 외자유치에 나섰기 때문이다. 경제투자관리실에는 경제투자관리실장, 투자진흥관을 중심으로, 투자진흥과장 산하 7개 담당 및 사무소에 30여명의 직원이 포진돼 있다.
중요한 것은 어려운 문제를 도가 직접 나서서 풀어준다는 점이다. 실제로 필립스가 각각 50%의 지분으로 참여한 LG필립스사의 공장을 경기도 파주로 유치하는 과정에서는 문화재 시·발굴 조사, 묘지 이장, 폐수종말처리장, 진입도로 건설 등의 난제를 도가 앞장서 풀었으며, 심지어는 대체 군사시설물을 구축하는 조건으로 군사시설보호구역 안에 공장이 입주할 수 있도록 군(軍)과 협의를 마무리짓기도 했다.
이번에 전통건축박물관을 유치하려는 과정에서 도시계획 변경 등이 신 대목장에게 걸림돌로 인식된 것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정 지사 취임 이후 어차피 밀레니엄타운 전반에 대한 의견수렴이 이뤄지고 있고, 호텔 및 컨벤션센터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해당 부지의 경우 이미 백지화와 도시계획 변경이 결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진행과정을 지켜본 모 인사는 “도시계획 변경이나 이에따른 용역 발주 등은 어차피 도가 해야할 몫이었다. 그런데도 이를 전제조건으로 설명한 것은 유치 의사가 없었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인사는 또 “전통건축박물관이 밀레니엄타운이라는 대규모 지구 안에 들어설 경우 주차장이나 진입도로 등 공공시설이 제공되기 때문에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신 대목장이 이를 오히려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뭔가 우리의 응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신 대목장은 강릉을 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밀레니엄타운에 입주할 경우 단지 전체계획의 간섭을 받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 이재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