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군 주민 ‘화학물질 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당했다’
음성군, 연간 1톤이상 화학물질 사업장 37개…지역사회 고지는 고작 16곳 사고 당시 화학물질 511톤 보관한 진양에너지는 통계에도 안 잡혀 유해화학물질사고관리계획 지역사회 고지도 안돼 음성군 대응도 늑장, 사고 1시간 20분 지나서야 주민에게 사고 소식 전파
음성군 대소면 진양에너지(주) 화학물질 사고로 총 94명이 치료를 받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의 알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초 사고 발생 이후 1시간 20분 가량 지나서야, 재난안전문자가 주민에게 전파됐고, 해당 회사에 대한 화학물질 정보는 어떤 곳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21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충북 음성군 대소면 미곡리에 소재한 ㈜진양에너지 지하 저장탱크에서 비닐아세테이트(VAM. CAS NO 108-05-4) 약 400ℓ가 지상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번의 사고 모두 종합반응을 강하게 일으키는 비닐아세테이트가 지하 저장 탱크의 덮개를 뚫고 외부로 누출됐다.
누출된 비닐아세테이트는 고인화성 액체로 열이나 스파크, 화염에 의해 쉽게 점화된다. 증기는 공기와 결합해 폭발성 혼합물을 형성하기도 한다.
인체에 흡일될 경우 호흡기도를 자극하고, 호흡곤란을 유발한다. 구토와 설사를 동반한 위장 자극을 일으키고, 안구 화상을 일으킬 수 있다.
화학물질 누출사고는 소량의 유출만으로 대량 인명피해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2012년 5명이 사망하고, 마을주민 1만2000명이 검진을 받는 등 총300억원이 넘는 피해를 야기한 구미시 휴먼글로브 불산누출 사고가 단적인 사례다.
사고 전파나 대피지시는 없었고, 뭔가 이상함을 느낀 마을 이장에 의해 사고발생 2시간 가량이 지나서야 대피가 이뤄졌다. 늑장 전파가 피해를 키운셈이다.
진양에너지 화학물질 누출사고에 대한 음성군의 사고 전파 대응은 어땠을까?
기후환경부(이하 기후부)에 따르면 최초 사고 발생 시점은 10월 21일 23시 17분이다.
음성소방서에 따르면 사고가 접수된 시각은 23시 38분이다. 사고가 발생한지 21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신고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음성소방서 관계자는 “신고자가 파악 안된다. 공장 관계자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주민에게 사고를 전파하고, 대피지시와 같은 업무는 누가 해야할까?
이에 대해 음성소방서 관계자는 “문자를 보내거나 대피를 하는 것은 군청의 업무”라고 말했다.
음성군 재난안전 관계자에 따르면 지역 주민들에게 사고 발생을 전파하는 재난문자가 전송된 시가은 22일 0시 35분.
사고 발생 시점 1시간 17분, 사고가 신고된지 53분이 지나서 였다.
사라진 알 권리, 주민들은 알수가 없었다.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에 따르면, 유해화학물질을 규정 수량 이상 취급하는 사업장은 사용하는 물질의 유해정보와 비상대응 정보를 지역 주문에게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지역사회 고지제도’라고 하며, 화학물질안전원이 운영하는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 공개하고 있다.
업체는 사업장명칭과 담당자 연락처, 유해화학물질의 목록 및 유해성, 비상대응 활동계획, 대피경보 및 주민 대피 장소와 방법등을 기재해 주민에게 고지해야 한다.
또 화학물질안전원은 매년 각 업체가 사용하는 유해화학 물질명과 배출량, 이동량, 매립량을 조사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사실상 이 두 가지가 일반 시민이 거주하는 마을에 소재한 업체가 취급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수 있는 유이한 통로다.
현재까지 94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음성군 대소면 ‘진양에너지’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어 있을까?
화학물질안전원에 따르면 진양에너지는 ‘지역사회 고지’ 대상 사업장이다.
화학물질안전원이 운영하는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 ‘지역사회 고지’ 항목에서 진양에너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이에 따르면 음성군 소재 기업 중 지역사회 고지를 한 곳은 16개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화학물질 이동‧배출량 시스템에선 ‘진양에너지’에 대한 화학물질 정보기 공개되어 있을까?
화학물질안전원이 올해 공개한 이동배출량 시스템에는 음성군 소재 91곳의 화학물질 정보가 포함됐다.
하지만 진양에너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결국 주민들이 ‘진양에너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는 전혀 없었고, 사고에 무방비 일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캐나다 ‘켐트랙’
음성군 주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은 사실상 몇몇 기업 이외에는 유해화학물질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나라 상황은 어떨까?
캐나다 토론토 시는 2008년 ‘알 권리 조례’를 제정해 ‘켐트랙’(ChemTRAC)'을 운영하고 있다.
토론토 시는 2008년 ‘우선순위 유해물질 25종을 다루는 업체들은 매년 시에 보고하는 한편 사용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례를 제정했다. 토론토 시당국은 이 조례에 근거해 관내 모든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기업정보가 담긴 연간 보고서를 발행한다. 또 켐트랙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은 누구나 연간 보고서를 내려 받을 수 있고 실시간으로 관련 정보도 확인할 수도 있다.
켐트랙 홈페이지 유해화학물질 환경지도를 클릭하면 토론토시 전체지도가 표시되고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업체들이 지도위에 표시된다. 해당 업체를 클릭하면 사용하고 있는 우선순위 물질을 어느정도 배출하는 지 표시된다.
시민들은 이런 정보를 통해 기업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활용한다.
만약 현재의 상태가 불만족 스럽다면 기업에 대해 저감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쌍방향 소통을 통해 기업과 주민이 같은 지역에서 공존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켐트렉은 토론토 기업들과 중소 자영업체들로부터 방출 되는 유해 화학물질 사용을 줄여 토론토 지역의 공중보건과 친환경 지역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토론토 시정부는 켐트렉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세 가지의 전략을 취한다.
첫째, 주민의 알권리를 위한 조례에 의해 해당 지역 업체들은 해마다 지정된 25가지 화학물질의 사용과 방출량을 추적하고 보고해야 한다.
둘째, 해당 업체 뿐 만 아니라 기준에 미치지 않은 업체들에게도 자발적으로 세미나, 홍보교육 등을 통해 친환경 정책에 동참, 지지, 변화를 유도한다.
셋째, 지역주민들에게 업체들이 사용하고 방출하는 주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한다.
물론 그 전에도 연방정부 차원에서 대기업에 대한 유해물질에 대한 규제가 있어 왔으나 고용규모가 작은 중소 업체들은 이 대상에서 제외 돼왔다.
켐트렉은 세탁소, 자동차 정비소, 인쇄소 등 소규모 업체들까지 대상에 넣으므로 바로 이웃에 있는 가게에서 방출되는 소량의 화학물질까지 감시하고 인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유해화학물질 관리대상을 기업에 국한하는 우리의 현실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켐트렉이 화학물질 저감을 위한 유용한 프그로램이라면 ‘지역주민의 알권리 조례’는 강력한 강제수단이다.
이 조례를 위반하는 회사의 임원 또는 위반하는 모든 사람은 벌금에 처해진다. 첫 번째 위반일 경우 5000 캐나다 달러, 두 번째 위반일 경우 2만5000 캐나다 달러, 세 번째 또는 후속 위반일 경우 10만 캐나다 달러의 벌금이 매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