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연대로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충북지역 시민과 노동자들이 <9.27 충북 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릴레이 연재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역에서 존엄하고 평등한 삶과 일터를 만드는 기후정의의 목소리가 더 많은 시민에게 가 닿기를 바라며 기고글을 연재합니다.
글 : 김기훈 추풍령중학교 교사
예년보다 적은 학생들이 충북기후정의행진에 동행할 것 같습니다. 기후재난은 역대급 폭염과 폭우, 이상기후로 더욱 요란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지만,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역부족인 듯 합니다. 결국 오늘 수업을 닫으며 솔직한 마음을 학생들에게 전했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충북기후정의행진이 열리는 것은 알고 있지요? 이번 행진은 우리의 앎과 삶을 잇는 중요한 배움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참가자 규모가 적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참여하는 사람들을 힘껏 응원해주고 이번에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은 각자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고 행동합시다. 모두가 당사자며 모두의 문제이니까요. 미뤄두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작년 3만 명이나 되는 이들이 기후정의를 요구하며 행진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엔 기후불평등에 맞서는 데에 주저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쟁을 부추기고 각자도생이 최선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구조 때문이 아닐까요.
기후정의로운 세계가 비현실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경쟁과 차별, 기후재난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 모두가 성공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비현실적이지 않냐고 질문을 돌려주었습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질문을 계속해 보겠습니다.
이윤을 위해 존엄과 권리는 침해당해도 될까요?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당연한 것일까요?
경제성장을 해야만 우리 모두가 먹고살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은 사고 팔 수 있는 것일까요?
인간들의 편리와 욕망을 위해 비인간 존재들이 계속 이용당하는 것은 당연한 걸까요? 시민의 권리를 ‘괜찮은 엘리트들’에게 위임해도 되는 걸까요? 학교에서 학생들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게 가르치는 건 괜찮나요?
‘기후정의’는 위의 질문들에 ‘다른 답’을 내어놓습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 정의로운 세계가 만들어질 때 우리는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살 수 있다고요.
‘살아남기’가 아니라 ‘연대하기’가 더 중요하다고요. 지금 당장은 그 답들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합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더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답,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것이 될 답이 아닐까요.
지난 겨울에서 봄까지, 뜨겁고 생생했던 ‘광장’을 떠올려봅니다. 민주적이고 평화로우며 (종)차별과 배제 없는 평등한 세계를 함께 상상할 수 있어서 기뻤고 가슴 벅찼습니다.
서로 얽히며 모두의 해방을 상상하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삶을 상상할 힘이 있었고, 힘찬 첫걸음을 함께 내딛었으며, 상상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과정 중에 이미 존재합니다.
그러니 조금씩만 더 용기를 내어 함께 광장을 이어 나간다면 불가능하고 무모한 것으로 보였던 것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폭우로 피해를 입은 축사에서 살아남은 소를 돌보는 청년의 마음을 떠올려 봅니다.
기후재난으로 고통 받는 뭇 생명에게 안부를 묻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폭염에 생명이 꺼진 노동자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마음을, 산업 전환으로 일자리를 잃고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는 마음을, 정의로운 공공재생에너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혼자 남겨질까봐 두려운 마음을, 아무도 남겨두지 않으려고 연대하는 마음을, 선풍기로는 몰아낼 수 없는 무더운 밤에 괴로워할 이웃을 떠올리는 마음을, 용기를 내어 용기를 내는, 지구와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기후재난과 이상기후에 바짝 타버린 농작물에 마음도 바짝 타버린 농민의 마음을, 그래도 농사를 내려놓지 못하고 생명을 돌보는 마음을, 다른 존재를 살리고 싶은 마음을, 나도 살고 싶은 마음을 생각합니다. 연민의 마음, 연대의 마음, 연결되는 마음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너무 많은 죽음이 찾아온 여름들을, 기후위기를 이대로 둘 것입니까.
선하고도 강하고 또 약하기도 한 마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외로이 바스러지지 않게 927 충북기후정의행진에서 함께 걷고 싶습니다.
여성,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농민, 그리고 비인간까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손을 맞잡고 힘을 모아요. 서로에게 응답하고 연결될 때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요구하며 신나게 떠들어요. 행진을 멈추지 말아요. 어떤 존재도 남겨두지 않고 함께 나아가요. 우리의 불만과 불안, 생각과 저항들이 켜켜이 쌓여 우리 모두를 구할 수 있게 되기를. 주저하는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기를.
모두가 해방되지않으면 아무도 해방될 수 없다
우리의 해방과 지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에게 응답하고 연결될 때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
927 충북기후정의행진에서 반갑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