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리셀 대표 15년형, 그러나 상처는 치유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 화성시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 쌓여 있는 리튬전지에서 시작된 폭발은 순식간에 거대한 화마가 되어 23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리고 1년 3개월을 꽉 채운 지난 9월 23일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그의 아들 박중언 아리셀 본부장이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이라는 점에서 유가족의 마음이 조금은 치유받을 수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런다고 세상을 떠난 가족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감히 그 고통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본보 최현주 부국장 또한 이 참사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기자가 자사에 기사가 아닌 기고문을 쓰는 게 흔한 일을 아니지만 기자이기 전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자, 다른 유가족들과 1년 3개월 동안 합당한 처벌과 재발방지를 외치며 장외투쟁을 이어온 유가족 대표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눈물을 참고 부들거리는 손으로 힘겹게 쓴 심경을 기고문으로 싣습니다. <편집자 주>
“사람의 생명은 인간의 존엄한 가치의 근원이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절대적으로 보호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결과는 그 어떠한 방법으로 회복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사망의 결과를 야기한 범죄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합니다. … 박순관 징역 15년, 박중언 징역 15년에 벌금 100만 원.”
이 말을 듣기까지 꼬박 1년 3개월이 걸렸습니다.
판사의 선고를 듣는 순간, 이미 1년 3개월 전에 떠나버린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남편이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무어라 말할까’
홀로 상상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3개월, 절망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난 1년 3개월. 그 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루에도 수 차례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을 느끼며, 서울, 화성, 용인, 청주 등을 오갔습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목이 터져라 외쳤고, 아리셀 본사 에스코넥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뜨거운 땡볕, 매서운 추위, 눈보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맨몸으로 맞으며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허공에 대고 소리소리 질렀고, 외면하는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눈물로 연대를 호소했습니다.
재판이 시작된 이후로는 남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아리셀 측 변호인들의 억측을 무방비 상태에서 들어야만 했습니다. 사과다운 사과는커녕 ‘손해배상 소송하겠다’, ‘합의하면 사과하겠다’는 황당무계한 말도 들어야만 했습니다. 겪지 말아야 할, 겪을 필요가 없는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남편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산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나의 투쟁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수십 번 수백 번 고민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 곁으로 가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습니다.
언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15년이면 ‘최고 형량’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검찰이 주장했던 혐의를 판사가 거의 대부분 인정해서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최고 형량도 맞고, 불법파견, 안전 교육 부실 등 대부분 혐의에 대해 판사는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각인시켜 주었고, 이후 중대재해 사건 판결에 있어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합의했던 유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처벌불원서’가 박순관·박중언 부자 양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8개월간 단 한 번의 표정 변화가 없던 박순관 대표도 휘청거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어찌된 일인지 저의 가슴속 상처와 구멍은 왠지 더욱 커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습니다.
그 무엇을 준다 해도, 어떠한 판결이 난다 해도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이제 일단락되었으니 앞으로 더욱 힘내’라고 말입니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도 조금씩 회복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러지 못할 것 같습니다. ‘힘내’라는 말도, ‘회복될 것’이라는 말도 먼 산속에서 들리는 메아리 같습니다.
1심 판결이라는 무겁고 어려운 과정이 다행히 잘 지나갔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성취감’보다는 ‘허무함’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저는 아직도 남편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