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경찰 역사청산해야…이광희 의원 “경찰 역대 치안국장 친일이력 은폐”

역대 치안국장 다수 일제 순사‧고등경찰‧간도특설대 출신 경찰청 공식 기록, 친일 경력 생략 또는 은폐 정부와 경찰청, 친일 경찰 인사 행적 분명히 밝혀야

2025-09-18     김남균 기자

 

 

이광희(더불어민주당, 청주서원) 국회의원이 친일로 얼룩졌던 대한민국 경찰의 역사바로세우기를 촉구했다.

17일 이광희 국회의원은 미군정 초대 경무부장을 지낸 조병옥을 비롯, 경찰청 역대 치안국장의 친일경력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군정 산하 경찰국 경부부장을 지낸 조병옥은 친일 경찰을 대거 채용해 경찰 조직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서북청년단 등 극우단체를 동원해 제주 4·3 사건에서 민간인 학살을 지휘하는 등, 이후 친일 경력자들이 경찰 수뇌부에 포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태선, 이익흥, 홍순봉, 문봉제, 김종원 등 역대 치안국장 다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조선총독부 관보,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일제 경찰 경력이 확인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독립운동가 검거·고문, 일본군 지원, 독립군 토벌 등에 가담했으며, 일부는 일제로부터 훈장·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광희 의원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경찰의 최고위직을 지낸 인사들 중 상당수가 일제 순사·고등경찰·간도특설대·일본군 등 친일인사 출신으로 드러났다”며 “그러나 경찰청은 공식 누리집에서 이들의 재임 기간과 사진만 단순 나열하며 친일 행적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청은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마치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기관처럼 홍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대한민국 정부 경찰의 출발점”을 미군정청 경찰국에서 찾고 있는데, 이는 해방 직후 미군정이 친일 경찰들을 대거 등용해 권력기관을 유지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그러면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경찰 수뇌부가 친일 경찰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은 역사 왜곡"이라며, "공식 누리집에 재임 기간과 사진만 공개하는 것은 경찰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충북을 포함한 다수 지방경찰청에서도 친일 경찰 국장들이 확인됐으나, 이 역시 공식 기록에는 관련 설명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경찰청은 이제라도 친일 인사 행적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보고서를 발간하고, 경찰사의 출발점을 국민에게 정직하게 설명해야 한다”며, “역사 왜곡과 망각을 경계하고 경찰 조직 스스로가 과거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충북경찰청 초기 경찰국장 20명 중 11명도 일제순사 출신

충북지방경찰청 누리집에 소개된 초대 경찰국장(현 충북지방경찰청장에 해당) 20명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 ‘일제 순사’ 출신이 1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순사 출신은 아니지만 일본 육군 소위와 조선총독부 군수를 지낸 인물 2명도 경찰국장을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충북경찰청 누리집에 소개된 역대 국장을 조선총독부 직원록과 관보를 통해 확인한 결과 초대 경찰국장을 지낸 박노택은 조선총독부 제천 군수를 지낸 인물로, 일제로부터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제2대 경찰국장으로 소개된 한정석은 조선총독부 경찰계급 중 최고 직급인 ‘경시’까지 오른 인물이다. 일제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과 쇼와대례기념장,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제3대 경찰국장을 지낸 김영규는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뒤 세운 괴뢰국가 만주국의 경좌(현 총경에 해당)를 지낸 인물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김영규는 ‘만주국 건국기념장’을 받았다.

제4대 경찰국장을 지난 박재수도 조선총독부 경찰부 경시까지 오른 고위급 인물이다. 한국병합기념장과 쇼와대례기념장, 국세조사기념장, 시정25주년 기념장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전 ‘재조선 미군육군사령부 군정청’(이하 미 군정청)이 군청정 산하 경찰국 충북경찰국장으로 임명한 인물이다.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후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조선총독부 출신 일제 순사들이 최고위직인 경찰국장을 계속해 맡았다.

 

충북경찰청, 독립군 때려잡던 친일경찰도 버젓이 홈페이지에 공개

친일경찰 한정석

 

창씨명 오하라 데이샷쿠(大原定錫)인 한정석(충북경찰청 2대 경찰국장)은 조선총독부에서 1910년부터 1924년까지 경찰로 지냈다.

이보다 앞서 1908년 대한제국 경시청의 경부로 경찰생활을 시작했는데, 그가 첫 번째 한 일은 일본군과 맞서 싸운 의병을 수사하는 일이였다.

말만 대한제국 경시청이였지 당시 법원의 재판장도 일본인이였고, 한정석의 상관도 일본인이였다.

그가 수사한 인물은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은 의병 신창룡이다. 신창룡 선생은 1908년 8월 최문봉 선생이 이끄는 의병진에 가담해 그해 12월까지 서울 뚝섬 파출소와 일본인의 집을 습격해 총기 등을 탈취했다. 탈취한 총기등으로 일본인들을 처탈하고 의병자금을 거출하다 결국 체포됐다. 1909년 6월 5일 일본인 재판장 결성조양(結城朝陽)은 한정석이 작성한 조서를 바탕으로 신창룡 선생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열흘 뒤 1909년 6월 16일 교수형이 집행돼 신창룡 선생은 순국했다.

1919년에는 의친왕 이강을 상해로 탈출시켜 임시정부에 참여시키려 했던 ‘조선민족대동단’(이하 대동단)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대동단은 의친왕을 상해로 탈출시켜 조직의 수령으로 추대한 후 국내에서 3‧1운동과 같은 독립선언운동을 다시 일으킬 작정이었다. 그해 11월 9일 중국 안동현에서 검거됐고 대동단원은 10년부터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뤘다.

<경성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정석은 일본군인에게 위문금을 보내기 위해 부인을 시켜 떡까지 팔게했다.

1937년 9월 16일 <경성일보>는 “비상시국에 직면해 조선 부인이 거리로 나와 애국의 적성을 피력했다”고 보도했다.

주인공은 한정석을 비롯해 청주지역 대표 친일파인 민영은(閔泳殷), 이명구(李命求), 최동선(崔東善), 이희준(李熙俊)이다. 이들 인사들은 일제 전투기 ‘충북호’를 만들라며 거액의 헌금을 냈던 인물이다.

한정석을 비롯한 이들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부인에게 떡 300개를 거리에서 팔게했다. 그리고 이때 나온 수익금을 황군(일본군) 위문금으로 헌납했다.

한정석은 1937년부터 1941년까지 청주시 사주면장을 지내면서 전쟁물자를 공출하는데 앞장섰다.

1938년 한정석은 일제가 침략전쟁의 지원하는 후방기구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국민정신총동원 청주군연맹’ 이사를 맡았다.

한정석은 1938년 8월 24일 청주군연맹 결성식이 청주신사에서 열렸는데, 일본군 전몰장병에 대한 묵념을 하고, 일왕에 충성을 맹세하는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했다.

1938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를 맡았다.

1941년에는 황국신민으로 황도정신 선양과 사상통일, 전시체제하 근로보국 등의 강령을 내건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45년에는 조선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