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전력공급의 식민지가 아니다

2025-09-17     황민호

 

글 : 황민호(<주간영동> 발행인)

9월 초순, 시위 대책회의에 참여한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 조용석 이장이 A4용지에 파란색 볼펜으로 꾹꾹 써내려갔다. 정확한 원인 관계를 밝힐 수는 없지만, 2025년 9월 9일 재작성이라는 선명한 글씨 밑에는 34만 5천 볼트의 송전탑 세워진 이후에 사슴목장이 다수 유산되었고, 심혈관, 심장마비로 7명이 사망했고, 뇌질환, 뇌출혈 등으로 4명이 사망했으며, 갑상선암, 대장암, 폐암, 간암, 후두암, 담도암 등이 발병해 있다고 분노에 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는 비단 괴목리 뿐만이 아니다. 상촌면 상도대리는 20여 년 인 2005년 조사에 따르면 13년 간 죽은 이마다 암 때문이었다는 당진환경운동연합의 보고서가 있다. 그 때부터 날만 흐리면 송전선이 우웅 곡성을 내고 푸른 빛으로 변해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87년 이후 사망한 이들 13명 중의 자연사는 없었고 모두 암으로 죽음을 맞았다고. 안전하다고 말한 송전탑 괴담은 이렇게 주민들에게 부지불식간에 현실로 맞닥뜨린다.

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이번 신장수-무주영동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호남일대부터 충청을 경유해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사업이고, 용인 반도체 산단으로 보내는 게 명문화되어 있다. 영동군에서는 신장수변전소-무주영동개폐소 및 송전선로 건설사업에 대한 ‘영동군 송전선로 반대대책위’가 꾸려졌다. 이들의 요구는 너무나 명확하고 간결하다. 수도권 전력 수요를 위해 더 이상 지역이 희생되서는 안 된다며 장거리 송전선로 백지화를 요구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지산지소, 전력을 각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역별에너지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는 결의문을 이미 낸 바 있다.

영동은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양강면 산막2리 마을이 송두리째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콕 집어 지정이 됐고 보상 문제 때문에 마을 공동체는 산산히 부서졌으며 공사 때문에 연일 소음을 겪어야 하며 그마저도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면 마을은 사실상 사라진다. 그들은 말한다. “지금도 양수발전소 때문에 고인 흙탕물이 썩은 채로 내려와 농업용수로 쓰지도 못해 난리인데, 송전탑까지 지나가면 산막리 주민들은 죽으라는 것인가”, “철탑 바로 아래 살고 있는데 안 아픈 주민이 없을 정도다. 오늘처럼 비내리는 날이면 윙 소리가 울려서 불편하다. 송전탑이 또 들어서면 우리 고장을 어떻게 물려줄 수 있겠냐”는 70대 촌로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지난 7월16일에는 세찬 장대비에도 불구하고, 양강면에서 출발한 차량 60여대가 양산면, 학산면, 용화면, 상촌면, 매곡면, 황간면을 거쳐 100km에 달하는 구간을 3시간 30분 동안 돌면서 영동군 전역에 송전탑 설치 반대의 목소리를 굳건히 했다. 대책위의 결의문은 비장하다.

‘모든 것은 집중형 발전과 장거리 송전이라는 비효율적이고 구시대적인 정책 탓이다. 장거리 송전은 이동 과정에서 상당한 전력손실이 발생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더 많은 발전소가 필요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이는 결국 국민부담으로 돌아온다. —우리 농촌은 수도권의 식민지가 아니다. 도시의 이익을 위해 농촌이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 구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지방은 단순한 전력 공급원이 아니라 주민들이 터를 잡고 있는 소중한 삶의 공간이다. —우리는 타 지역에서 진행된 송전선로 반대투쟁을 통해 배웠다. 무분별한 송전선 건설이 얼마나 많은 지역을 황폐화시켰는지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정책이 얼마나 큰 갈등을 초래했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도쿄전기를 위해 희생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를 잊었는가? 원전은 늘 힘없는 지역 농촌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지고 저항이 적은 곳에 만들어지며 서울과 수도권에 오는 그 전력들은 지역 농촌 곳곳에 커다란 송전탑을 꽂고 올라온다. 결국 안전과 부동산값 때문에 비효율을 감수하는 행태다. 그렇게 안전한 원전이라면 거리가 가까운 수도권 안쪽에 짓지, 그러면 송전탑도 곳곳에 꽂아낼 필요조차 없을 텐데, 그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낮고 약한 곳을 교묘하게 후벼판다.

11차 장기 송변전설비 계획을 살펴보면 이런 내용들이 담겨 있다. 사옥형 변전소 확대를 통한 주민인식 전환 추진, 공원 체육관 등 주민편의시설 구축, 독창적 외관 및 조형물이 설치된 아트컬처형 변전소 설치 및 지역 랜드마크화 추진, 그리고 중립적 전자파 이해증진 체계구축이란 제목으로 국립과학관 내 전자파 전시관 구축 및 찾아가는 전자파 과학관 운영, 보건, 의학분야 전문기관 협력으로 전자파 건강영향평가센터 설립, 전자파 인식 전환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대외 상생협력 강화 등이다.

그럴듯한 말로 주민 우롱하는 발상들 아니던가. 그렇게 아름답고 주민편의시설 구축하고, 랜드마크화되며 건강에 아무런 이상 없는 송전탑 전자파라면 제발 수도권에 설치하고 가져다 쓰라. 이렇게 머리 써서 구상하지 말고, 청와대와 국회 바로 옆에 원전을 설치하고 수도권에 송전탑을 설치한다면 이것에 대한 신뢰는 절로 만들어진다. 농촌은 그대들의 식민지가 아니다. 감언이설로 꼬여 큰 쇠말뚝을 곳곳에 박으려 하지 말고, 제발 우리들의 질문에 제대로 된 화답을 해달라.

현재 영동을 비롯해 전국을 뒤덮은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전력 수급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맞닿아 있다. 대규모 화력 중심의 집중형 발전 체제는 온실가스를 끊임없이 배출한다. 그렇게 생성된 전력은 지역의 환경을 짓밟으며 수도권으로 흘러가면 송전탑과 발전소로 희생을 강요받는 이들은 지역민들이다. 이는 에너지 불평등이자 명백한 기후 부정의다. 지역은 전기를 생산하면서도 전기요금 혜택은커녕 건강과 생명을 잃고, 도시는 값싼 전력에 안주한다.

다가오는 9월 27일 청주에서 열리는 927 충북 기후정의행진은 바로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한 발걸음이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놓인 지역 주민들이, 농촌과 도시가 함께 연대하여 “우리 삶을 희생시키는 체제를 전환하라”고 요구하는 자리다. 송전탑 투쟁 또한 기후위기 대응의 한 갈래이며, 지역의 생존권을 지키는 싸움이 곧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충북에서 울려 퍼질 그 목소리가 전국 곳곳으로 번져, 더 이상 농촌이 전력공급의 식민지로 취급되지 않는 새로운 전환의 길을 열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