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행진 연속기고 1. 기후 위기 노동자 생존의 문제다
지역에서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충북지역 시민과 노동자들이 <9.27 충북 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충북인뉴스>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역에서 존엄하고 평등한 삶과 일터를 만드는 기후정의의 바람이 더 많은 시민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기후정의로 광장을 잇자” 9·27 충북 기후정의행진】의 목소리를 연재합니다.(편집자주)
글 : 박옥주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장)
지난 7월 7일 베트남 청년 이주노동자가 건설 현장에서 앉은 채 사망했다. 당시 그의 체온은 40.2도 였다. 오후 1시에 퇴근한 한국인 노동자들과 달리 오후 4시까지 일해야 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온 청년 노동자가 건설 현장에서 쓰러진 사건은 기후 재난의 민낯을 무참하게 보여준다. 2025년 역대급 폭염으로 폭염 시 야외에서 일하지 말라는 경고가 매일 매일 문자로 전송되고 방송되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일찍 일을 마칠 수도 없었고 작업을 중지할 수도 없었다.
7월에 대한통운의 택배노동자 세 명이 연이어 사망했다. 이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과 숨쉬기 힘든 뜨거운 열기에도 분초를 다투며 뛰어다니며 물건을 배달해야 한다. 걸음을 멈추면 생계가 어려워지는 노동자들에게 폭염이라고 쉴 수 있는 권리는 없었고 끝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경우,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해야 하는 산업안전보건 규칙도 이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2025년 5월 1일부터 9월 6일까지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온열질환자는 4370명이었고 사망자는 29명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온열질환자는 2.4배 증가했고 사망자 중 야외노동을 한 노동자가 30%에 이른다. 해마다 경신되는 폭염과 폭우 기후재난에도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에게 기후 재난은 곧 생존의 문제다.
이러한 생존의 문제는 단지 건설, 택배, 라이더, 농업 노동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업전환의 과정도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한다.
지난 6월 3일 태안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한 노동자가 사망했다. 고 김용균 노동자 투쟁 이후 정부가 약속한 2인1조 작업 원칙이 지켜졌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말 폐쇄 예정이라는 이유로 필요 인력은 충원되지 않았고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홀로 일하다 끝내 죽임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발전소 폐쇄 이후 노동자 일자리 대책은 전무하다시피하다. 기후위기 대응 산업전환 과정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2025년 6월 엘지자본은 청주 엘지화학 수처리 사업부를 사모펀드인 글렌우드 PE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노동조합이 매각 소식을 접한 것은 경제 뉴스 기사를 통해서였다. 뉴스 보도 이후에도 회사는 매각 계획이 없다고 발뺌했다. 노동조합은 부랴부랴 매각 반대를 위해 싸움을 진행했지만 매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엘지 자본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 등을 위한 현금을 확보하려 매각을 계획, 실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에 알리고 노동자 대표의 참여를 보장하거나 의견을 묻는 과정은 일절 없었다. 모든 것이 결정되는 시점에 노동조합이 인지하게 되었을 뿐이다. 10여 년 동안 성실하게 일하며 1조 4000억의 알짜배기 사업부를 만들어온 노동자들의 존재는 산업전환 과정에서 삭제되었다.
이사회 결정 후 노동조합은 고용 승계, 단협 승계 등을 회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알짜배기 사업을 매수해 단물만 빨아먹고 되파는 사모펀드의 속성으로 볼 때 노동자들은 언제 구조조정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으로 내몰려 있다.
이렇듯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전환의 과정에서 온 힘을 다해 성실히 일해왔던 노동자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자본에게 그들은 사용하던 기계와 하등 다를 바가 없이 취급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환자 치료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공공의료 노동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청주의료원 노동자들은 지난 6월 약 11억의 임금체불을 당해야 했다. 코로나 환자로 인해 호흡기 외 진료가 중단되었고 당시 병원을 떠난 의사와 환자가 복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충북도가 약속했던 회복기 예산을 지원하지 않았고 결국 4억 흑자였던 운영이 엄청난 적자가 되었다. 헌신했던 노동자들에게 임금 체불과 불안한 일터만이 떠안겨졌다.
이재명 정부가 연일 AI 신산업 육성을 강조하며 반도체특별법을 통해 삼성과 SK에 묻지마 퍼주기 지원을 하려 한다. 삼성만 해도 하루 65만 톤의 물과 7기와트(GW)의 전기가 필요하다. 9개의 새로운 댐이 건설 예정이고 막대한 전기 공급을 위해 전라도에서부터 송전선을 새로 구축하고 있다. 그 경로에 충북 영동이 포함되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숲을 뭉개고 새로운 댐과 송전선을 만들어 물과 전기를 헐값에 대기업 자본에 공급한다. 숲도, 땅도, 물도, 전기도 국민 모두의 것이지만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천문학적인 자연생태계 파괴를 일삼는다.
그러나 AI 신산업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미래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고용주의 41%는 “AI로 인해 앞으로 5년 안에 인력감축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그동안 반도체 산업은 영업비밀이라며 유해 물질을 사용하고 수많은 노동자를 병들게 했지만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누구를 위한 AI 신산업인가? 오직 반도체 대기업의 이윤을 위한 것일 뿐이다.
이렇게 노동자는 기후재난의 현장에서 일하다 죽어가고 산업전환의 과정에서 구조 조정되며 그들이 낸 세금으로 구축한 AI 신산업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기후 위기로 인한 일터의 문제는 노동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특히 노동자성을 부정당한 가짜 사업자 택배노동자와 건설노동자, 수많은 이주노동자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등 탄소 배출은 대부분은 대기업 자본이 하는데 피해는 가장 낮은 곳으로 전가된다. 기후불평등이며 기후부정의이다.
매년 9월은 전세계 노동자와 시민들이 이런 기후불평등과 부정의를 깨고 기후 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행진을 진행한다. 충북에서도 927 충북 기후정의행진을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진행한다.
노동자들은 시민들과 함께 내란 수괴의 탄핵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불평등 사회를 전환하자고 외쳤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후위기 문제는 노동자를 배제하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결되어 있고 대기업자본의 이윤을 위해 모두의 것을 파괴하며 불평등과 부정의를 심화시킨다.
그래서 이번 행진은 민주주의와 차별없는 평등사회를 외쳤던 광장을 잇는 행진이다. 충북의 광장에서도 ‘민주․평화․평등’ 사회대전환을 기치로 불평등 없는 세상을 요구했다. 9.27 충북 기후정의행진으로 다시 광장을 열어가자.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을 짓밟으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 성장시스템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