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은 윤봉길 의사 유해까지 조롱했고, 김형석은 유언을 조작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에디슨 같은 과학자가 되어라” 윤봉길 의사 유언 왜곡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김형석, 어떻게 유언까지 왜곡하나” 일본군, 윤 의사 총살 후 쓰레기 하차장에 암장, 행인들이 짓밝고 지나가게 해
<윤봉길 의사 유서 전문>
"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들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가 되기를 바라노라.
동서양 역사상, 동양에는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에는 프랑스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으며,
미국에는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난 8월 15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경축사에서 윤봉길 의사를 거론했다.
김 관장은 "1932년 4월 29일 24살의 청년 윤봉길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장절 및 전승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해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며 "그가 의거 직전에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에디슨 같은 발명가가 돼라'라고 적혀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윤봉길이 조국 독립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두 아들은 과학자가 되기를 소망했던 것처럼 역사의 이면에는 다양성이 존재한다"며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그 다름이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이제는 역사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김형석 관장의 말이 알려지면서 각계에서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역사왜곡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도 김형석 관장의 발언은 윤봉길 의사의 유언까지 왜곡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 관장은 지난 19일 충북 진천군(군수 송기섭, 더불어민주당)의 ‘친일재산 국가귀속을 위한 TF’ 출범식을 마친 뒤 “윤봉길 의사의 유언 첫 문장은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라는 문장”이라며 “에디슨과 같은 과학자가 되라고 언급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유언까지 거짓말로 왜곡하는 저의가 불순하다”며 “도저히 독립기념관 관장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쓰레기 하차장에 유해를 묻은 일본군, 유언까지 왜곡한 독립관장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윤봉길 의사의 유언을 조작 왜곡했다면, 일본군은 윤 의사의 유해까지 조롱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을 맞아 일본군이 중국 상하이(上海)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상하이 점령 기념식을 열자 일본군 수뇌부에게 폭탄을 던졌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같은 해 5월 일본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11월 18일 오사카(大阪) 육군 형무소에 수감됐다.
다시 일본군은 윤봉길 의사를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시에 소재한 육군 부대로 이감시켰다. 이 부대는 가나자와 성내에 주둔하고 있었다.
12월 19일 일본군은 가나자와 성내에 있는 일본 육군 공병작업장에서 윤봉길 의사를 총살했다.
일본군이 이곳에서 총살을 집행한 것은, 오사카의 경우 재일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가나자와 시의 경우 일본 극우의 상징도시로 평가받는다.
총살을 집행한 일본군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시 일본군은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가나자와 시내에서 20여분 정도 떨어진 일본 육군묘지로 이송했다.
그들은 윤 의사의 유해를 일본 육군을 추모하는 대형 추모비 아래에 있는 쓰레기 하차장으로 가는 길 바닥에 묻었다.
묘지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봉분도 없이, 그대로 통행로 길가에 묻었다. 일본 육군 추보비와 묘지에 가는 일본인들이 짓밟고 가게 하려는 의도였다.
현재 이곳에는 재일 조선인들이 윤봉길 의사가 암정된 곳이라는 ‘암장비’를 세워 추모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의 지시로 유해 발굴작업을 벌였고 국내로 봉환해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한 상태다.
지난 6월 취재진은 가나자와에 있는 윤봉길 의사의 암장지를 찾았다. 윤봉길 의사의 순국비와 암장비는 찾는 이 없어 쓸쓸했다.
다만 적지않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아 선생의 뜻을 기린 흔적이 방명록과 암장지와 순국비 앞에 놓인 조화를 통해 확인할수 있었다.
올해 초 이곳 가나자와 시내에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에서 기념관을 개장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극우들은 기념관 개장 예정 건물 주변에 차량 80대를 동원해 항의 시위를 진행했다.
지금까지도 윤봉길 의사에 대한 일본 극우들의 시각과 역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여전히 일본 극우세력은 자신들을 상징하는 검은색 차량에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과 욱일기, 일장기를 달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다만 일본 극우들은 한국의 우익 집단처럼 성조기는 들지 않는다.
일본 극우는 여전히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 조차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이, 이런 상태에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유언까지 왜곡했다.
과연 대한민국의 독립기념관장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