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도 역사왜곡한 충북도…차라리 침묵하라

1937년 조선총독부, 일본인과 친일파가 낸 돈으로 도청 본관 건물 준공 충북도와 김영환 지사 연일 “도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지어졌다”고 호도

2025-08-17     김남균 기자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충북도(도지사 김영환, 국민의힘)는 ‘문화광장 815’ 개장식을 진행했다.

 

충북지역 친일인사들이 일제에 비행기 ‘충북호’ 대금을 헌납한 것도 “충북도민의 자발적인 성금”이라고 해도 할 말이 있을까?

1937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인과 친일파로부터 거둔 돈을 보태 지은 충북도청 본관 건물에 대한 역사왜곡이 도를 넘고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충북도(도지사 김영환, 국민의힘)는 ‘문화광장 815’ 개장식을 진행했다.

‘문화광장 815’는 충북도청 본관(1937년 준공)과 신관사이에 있던 주차장과 오래된 수목을 제거한뒤 조성한 잔디광장이다.

이 자리에서 김영환 지사는 “이번 광장은 일제 강점기 도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지어진 도청을 도민들에게 돌려드리는 의미와 함께 도민이 언제든 찾아와 머물 수 있는 정원을 만든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충북도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거둬 조선총독부 충북도청을 지었다고?

김영환 지사와 충북도는 지난 해부터 계속해 1937년에 지어진 충북도청 본관 건물에 대해 “도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지어졌다”고 홍보해왔다.

논거는 조선총독부 충북도청 건축과정에 관한 당시 언론보도다. 충북도는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충북도와 충남도를 ‘합도’ 하려했고, 이에 따라 충북도청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청주번영회’와 지역 유지등이 나서 자발적인 성금을 거둬 도청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선총독부 충북도청 건립기금 21만원 중 15만원을 충북도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조선총독부 충북도청 설립기금을 낸 인물들을 확인해 봤다.

□ 川嶋由三郞 : 1만원

□ 上田滋次郞 : 1만원

□ 袴田 靜 : 2000원,

□ 長村 ステ : 1000원

□ 藤井廣告 : 3000원

□ 伊藤只平 : 3000원

□ 高見辨藏 : 6000원

1937년 8월 18일(제3178호)과 8월25일(제3184호) 조선총독부 관보에 실린 ‘조선(총독부) 충청청북도 청사 신축비’를 낸 일본인 명단이다.

조선총독부는 이들에게 ‘감수포장’을 하사했다며 조선총독부 관보에 이같이 공개했다.

이들이 낸 금액은 모두 3만5000원이다.

조선총독부는 충북도청사에 대해서도 ‘조선(총독부) 충청북도청사’라는 명칭을 명확하게 사용했다.

‘조선총독부 충청북도청사’ 신축비를 낸 일본인들은 충북도민 일까?

1937년 8월 18일 조선총독부 관보에 실린 '조선충청북도청사 신축비' 기금 납부자 명단

 

조선총독부 관보에 ’충청북도청사 신축비‘를 냈다는 이유로 '감사포장'을 받은 것으로 취재진이 현재까지 확인한 인물은 총 7명이다. 1000원 이상을 낸 인물들에게 감사포장이 하사된 것을 보면 실제로는 돈을 낸 일본인들은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일부눈 ’조선총독부 충북도회위원‘과 같은 총독부 공직까지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충북산업지’에 따르면 일본인 ‘田滋次郞(1882~?.’은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제 9여단‘ 소속으로 참전해 일본정부로부터 ’훈8등‘ 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1907년 조선으로 건너왔고, 1910년 충북 청주로 이전해 요리점 월중옥(越中屋)을 운영했다.

1917년 조선총독부 장관인 스즈키 기요시( 鈴木穆)는 월중옥에 대해 ’충북제일‘ 이란 뜻으로 ’북일‘이라 명명했다.

월중옥의 규모는 대지만 1200여평에 건축면적이 200평에 달했다. 당시 연 수입이 5만원에서 10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충청북도 청사‘ 신축비로 1만원을 낸 일본인 ’川嶋由三郞 (1876~)‘은 1914년 조선으로 건너왔고, 처음에는 건물임대업을 했다. 1918년 청주전기회사 전무이사를 맡았고, 청주와 대천, 경기도 이천 등에서 여러 기업을 운영했다.

1935년 청주금융조합장을 맡았고 청주읍의 상담역과 충북도회의원을 지내는 등 조선총독부의 공직을 맡았다. 또 청주에 일본식 사원을 만들기도 했다.

6000원을 낸 高見辨藏(1884~ ?)는 청주에서 정미업과 양조장(청주주조)을 운영했다. 청주금융조합과 청주읍회 회원과 같은 조선총독부 공직을 맡았다.

과연 일본제국주의 군인출신으로 한반도에 들어와 조선총독부의 공직을 맡은 일본인들을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자랑스런 충북도민이라고 지칭 할 수 있을까?

조선총독부 충청북도청사‘ 신축비를 낸 조선인들은 누굴까?

1937년 8월 25일 조선총독부관보에 실린 '조선충청북도청사 신축비' 납부자 명단

 

일본인들은 제켜두고 조선총독부 충청북도청사 신축비를 낸  '자랑스런 충북도민'들은 과연 누굴까?

조선총독부 관보 제3176호와 3184호에 나와있는 인물은 총 9명으로 6만원을 총독부에 헌납했다.

그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민영은(閔泳殷. 1870.~1944) 1만6000원 :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 침략전쟁 전투기 '충북호' 기금 1만원 헌납.

□ 손재하(孫在厦, 1888~1952) 5000원 :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 침략전쟁 전투기 '충북호' 기금 1000원 헌납

□ 김원근(金元根, 1886~1965) 1만5000원 :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 침략전쟁 전투기 '충북호' 기금 헌납.

□ 이희준 ( 李熙俊. 1987~ ) 1만원 : 일제 침략전쟁 전투기 '충북호' 기금 1500원 헌납.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청주주조(淸州酒造) 사장

□ 민영필 (閔泳弼) 6000원 :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은의 동생

□ 정수홍(鄭壽弘) 4000원

□ 이석영(李錫永) 1000원

□ 이명수(李命洙) 2000원 : 일제 침략전쟁 전투기 '충북호' 기금 1000원 헌납

□ 민영택(閔泳澤) 1000원 : 일제 침략전쟁 전투기 '충북호' 기금 2000원 헌납

조선총독부 충청북도청사 신축비를 낸 대가로 총독부로부터 ’감사포장‘을 받은 조선인은 이들 총 9명이다.

이들 중 민영은과 손재하, 김원근은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인물이다. 민영필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되지 않았지만 친일파 민영은의 동생이기도 하다.

민영은의 경우 충북 청주를 대표하는 친일파다. 대한제국 청주군수를 지냈지만 조선총독부가 들어서자마자 바로 친일로 돌아섰다. 1911년 조선총독부 충청북도참사를 참여하더니 1919년에는 3‧1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청주자제회‘ 회장을 맡았다. 1924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에 올랐고, 일제의 침략전쟁에 사용될 각종 무기를 구입하는데 엄청난 돈을 냈다.

충북 영동출신의 부자 손재하 (孫在厦, 1888~1952)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거물친일파다.

민영은과 김원근, 손재하 등 친일파 들은 일본인보다 조선총독부 충북도청사를 내는데 더 많은 돈을 냈다.

민영은‧김원근‧손재하가 일제에 헌납한 ’국방헌금‘도 충북도민의 자랑스런 성금일까?

민영은과 김원근, 손재하 등 친일파 들은 일본인보다 조선총독부 충북도청사를 내는데 더 많은 돈을 냈다.

이들은 김영환 충북지사와 충청북도가 표현대로 라면 ‘자발적으로 성금을 낸 충북도민’이 된다.

1937년 충북도청 준공당시 이들의 행적은 어땠을까?

손재하는 이 시기 일제의 침략전쟁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직한 ‘충북군사후원연맹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손재하는 조선총독부 충청북도가 일제에게 바칠 전투기 ‘충북호’ 기금으로 1000원을 헌납했다.

민영은의 경우 더 일제에 큰 돈을 바쳤다.

민영은은 1937년 당시 충청북도군사후원연맹 부회장을 맡았다. 일제에 바칠 전투기 ‘충북호’ 기금으로 1만원을 냈고, 일본 육군성에 1000원을 별도로 헌납했다.

또 민영은은 일본 육군성을 방문해 충북에서 걷은 ‘충북호’ 헌납기금 8만2000원을 ‘충북도민’을 대표해서 갖다 바쳤다.

김원근도 마찬가지로 ’충북호‘ 기금으로 1만원을 헌납했다.

충북도의 논리대로 라면 이들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조선총독부에 전투기 제작비용으로 갖다 바친 이 돈도 ’충북도민의 자발적인 성금‘이 된다.

역사는 묻는다. 충북도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만들어진 자랑스런 충북도청 처럼, 이들이 낸 돈으로 만들어진 일제 침략전쟁에 사용된 전투기도 충북도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만들어진 자랑스런 충북호라고 해야 할 까?

충북도청 본관, 있는 그대로 보자

김영환 충북지사는 취임 후 도청을 도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복으로 엉청난 세금을 지출했다.

도청 본관 옥상에 정원을 만들고, 오래된 수목으로 가득찼던 본관 앞 정원은 나무를 베어내고 잔디광장을 조성했다. 또 최근에는 본관과 신관 사이에 있던 주차장과 수목을 베어 낸 뒤 광장을 조성했다.

이 사업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이 늘 공존해 왔다.

충청북도는 이러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충북도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조성된 충북도청을 도민께 돌려드린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충북도가 진행한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충북도청에 대한 ’서사‘를 동원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다.

조선총독부 산하기관인 충청북도와 이해관계로 점철된 일본인과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냈던 더러운 돈 을, 도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이라고 미화 할 근거는 없다.

역사적 사실은 충북도청 본관은 조선총독부가 짓고, 현재 대한민국 충청북도가 도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쓸데없이 근거없는 ‘서사’를 붙일 이유는 없다.

 

<참고 :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은과 손재하의 이력>

□ 민영은(閔泳殷. 1870.8.3.~1944.1.20.)

본적 : 충북 청주시 청주면 서정 65번지

1905~1908 청주군수. 1911 청주군 지방위원. 청주금융조합장. 1911 충청북도 도참사. 1913 충북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위원. 1915 대정대례기념장. 1916 명치신궁봉찬회 조선지부 충청북도위원. 1919 청주자제회 발기인 및 회장. 1920 충북도평의회원. 1923 청주명륜회 회장. 1924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 1932 친일파 박중양을 위한 조직에 참여. 1933 충북도 도회의원. 부의장. 1933 조선신궁봉찬회 발기인. 1934 조선총독부 명륜학원 평의원. 충청북도회 회의에서 일 왕자의 생일을 축하하고, 중국침략에 앞장 선 일본 관동군사령관과 일본군에게 감사하는 축천을 긴급동의로 제의. 1936 충청북도청사이전 신축 후원회 부회장. 청주시산 건축자금으로 2500원 기부. 1937 충청북도군사후원연맹 부회장. 비행기 ‘충북호’ 헌납자금 1만원 기부. 1937. 충북도청사 신축비 1만6000원을 기부. 일본정부로부터 상훈. 충북도민 대표해 조선군사령부 방문해 비행기 자금 8만200원 헌납. 국방병기구입비로 일본 육군성에 1만원을 기부. 국방헌금으로 일본 육군성에 1000원 기부. 1939 매인신보에 중일전쟁 승리 기원 광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 1940 매일신보에 일본군 무운장구 기원 광고. 1941 청주번영회 고문. 충북도회 회의에서 징병령 시행을 건의.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 손재하 (孫在厦, 1888~1952)

본적 :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면 계산리 664번지

1921 영동군 영동면 평의원 1922 영동금융조합 감사. 1924 영동군 구세군지부사에 100평 대지기보. 1930 영동소방조합 고문. 삼림조합 평의원. 1931 재항군인영동분회 명예고문. 영동상회 사장. 1933 국방의회 영동지회 명예고문. 1933 충청북도 도회의원. 1935 만주국 시찰. 1935 조선총독부 은사금. 1937 영동주조 사장. 1937 충북군사후원연맹회 평의원. 1937 애국기 충북호에 1000원 헌납. 1937 충청복도 영동방호단 고문. 1938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충북도연맹 참여. 1938 매일신보 충청북도 영동지국장. 1939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1941 비행기기금 1만원 헌납. 1941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