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거잖아요”
괴산 칠리단길 ‘스튜디오 느린손’ 김주영 대표 인터뷰
청년들이 온다⓵
청년들이 농촌으로 오고 있다. 극한의 경쟁시스템이 지배하는 도시를 버리고, 농촌에 둥지를 틀기 위해 과감히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극한의 경쟁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공동체를 꾸리기 위한 열정이 있다. 농촌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을 충북인뉴스가 만나 봤다.(편집자 주)
경기도 일산에서 촬영 및 영상 제작일을 했던 김주영 씨(43).
그는 2011년 괴산 칠성면으로 이사했다. 막 결혼을 했던 그는 당시 아내와 함께 도시농부 경험을 하며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자연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멀쩡한 직장 버리고 무슨 일이냐’며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했던 김 씨의 의지는 확고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괴산을 선택한 이유는 ‘유기농 1번지’라는 괴산군 명성도 한몫했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 이들의 활동도 활발했고, 무엇보다 자연환경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를 자연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마당도 있고 텃밭도 있고 그런 곳에서 키우고 싶었습니다. 아내도 적극적으로 원했고요.”
우선 농가주택, 특히 빈집을 눈여겨 보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기도 했지만, 옛 농가주택의 모습을 지니되 현대적 감각을 추가하고 싶었다. 리모델링을 하며 앞날을 꿈꾸었고, 아이와 함께 시작한 ‘괴산 살이’는 그야말로 행복했다. 어느 곳을 보아도 산이고 논이고 밭이었다. 온통 초록색인 칠성면이 너무 좋았다고. 아내와는 연애할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했다.
“새소리와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었고 층간소음 걱정 안해도 되고 아이들 정서와 감수성 면에서 굉장히 만족합니다.”
“어려움 있었지만, 어느새 적응했어요”
일을 찾던 중 김주영 씨만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곳을 만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느티나무 통신’이다.
김주영 씨는 괴산군 주민들이 직접 만든 풀뿌리 언론, ‘느티나무 통신’에서 영상 기자로 활동했다. 괴산 농민들의 소식을 알리고 유기농을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어 행복했고 보람도 있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아쉬운 점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모의 욕심인지도 몰라도 아이들에게 경험을 많이 시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시 후회한 적도 있어요.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교육적으로도 그렇고, 괴산의 부족한 점이 느껴지더라고요. 이래서 다들 농촌을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적응이 됐는지 만족하면서 살아요.(웃음)”
“지역에서 살아갑니다”
현재 김주영 씨는 칠성면 청년 사업자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른바 ‘칠리단길’이다. ‘경리단길’, ‘망리단길’, ‘송리단길’, ‘황리단길’, ‘운리단길’에 이은 것인데, 옛 칠성시장 인근에 청년들의 창업 열기가 활발하다. 협동조합으로 거듭난 ‘칠리단길’에서 김주영 씨는 감사이자 핵심 멤버다.
김 씨는 무려 50여 년이 된 ‘광명사진관’을 리모델링해 ‘스튜디오 느린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스튜디오 느린손’에는 옛 ‘광명사진관’에서 전시했던, 수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고, 잊고 있었던 필름 광고지도 볼 수 있다. 한 쪽엔 아담한 촬영장소도 마련해 놓았다. 김 씨는 가족사진, 증명사진, 영정사진, 영상 촬영 등에 자신 있다면서 많이 찾아달라고 활짝 웃는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내는 옆에 작은 서점 ‘모래잡이 북스’를 차리고 독서 프로그램, ‘책과 함께 하는 ‘칠리단길’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지속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그동안 여러 지자체에서 진행했던 청년 창업 지원과 그 뒤에 남겨진 씁쓸함을 안다. 지원금이 중단되는 순간, 여지없이 문을 닫고 마는 현실 말이다.
김주영 씨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최대 고민이다.
발길이 뜸한 ‘칠리단길’에 ‘어떻게 하면 사람이 오게 할 수 있을까?’, ‘지원금이 끊겨도 어떻게 하면 사진관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칠리단길’ 청년 창업자 9명과 함께 한 플리마켓은 그 일환이다. 김주영 씨는 지난달 26일 폐현수막으로 우산·가방 등을 만드는 공방 ‘선렛’, 도끼·칼·낫·호미 등과 커피를 함께 파는 카페 ‘로컬즈’, 테라리엄 공방 ‘소소리움’, 와인바 ‘뮈제뒤방’, 유리공방 ‘글래스유’ 대표와 함께 플리마켓을 운영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플리마켓을 지속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지난주에 처음으로 해봤는데 60명 정도 방문했어요. 아직은 미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도 의지가 굉장합니다.”
그는 ‘칠리단길’ 활동을 통해 공동체 형성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감도 붙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지역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지역에서 행사를 하면 지역 사람과 계약하게 되고, 협업을 합니다. 지역에도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당연히 지역경제에 선순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사는 거잖아요.”
‘스튜디오 느린손’ 상호처럼 비록 아직은 느리고 미약하지만, ‘칠리단길’과 함께하는 괴산 청년의 앞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