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었지만 산재적용 NO…‘일하는밥퍼’에 스민 윤석열표 노동관
24일 78세 어르신 ‘일하는밥퍼’ 사업장서 일하다 사망 자원봉사자로 규정해 산업재해보험 적용 안돼
“가난한 사람, 부정식품이라도 선택할 수 있어야”
(2021년 7월 윤석열 언론 인터뷰 발언)
(최저시급제와 주 52시간제가 비현실적이라는 일부 중소기업인의 고충을 거론하며)
“차기 정부를 맡게 되면 비현실적 제도는 다 철폐해 나가겠다.”
“일하려는 많은 분들을 실제로 채용해서 일정한 소득이 가게 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무시한 제도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2021년 11월 충북 청주 소재 강소기업 방문 시 윤석열 발언)
내란 혐의 등으로 특검의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왜곡된 노동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발언이다.
그런데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2024년부터 노인 대상 생산적 복지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밥퍼” 사업(이하 ‘밥퍼 사업’)에서 윤석열의 ‘왜곡된 노동관’이 보인다.
민주노총 충북본부는 지난 해 10월 김영환 도지사의 야심작인 밥퍼 사업이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등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밥퍼 사업에 참여한 노인들을 ‘노동자’가 아닌 ‘자원봉사자’로 취급하여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사업장 등에서 일을 시키면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금액을 통화도 아닌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문제 등을 지적했다.
그런데 충청북도는 2025년 4월 <충청북도 일하는 밥퍼 사업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사업을 확대했다.
선거를 염두에 둔 선심성 사업이라는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를 벤치마킹하는 다른 지자체들도 나타나고 있다.
밥퍼 사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2004년 노인빈곤 완화 등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노인일자리 사업을 노동법의 ‘보호지대’에서 시행할 것인지 ‘사각지대’에서 시행할 것인지의 논란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노동법 보호지대에서 시행하려면 근거 법령과 사업 지침 등에 사업참여자(노인)의 법적 지위를 ‘노동자’로 명확히 규정하고, 노동법으로 보호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정부는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를 ‘(유급)자원봉사자’로 취급하고, 노동법 위반 문제를 회피하려고 ‘유급근로 자원봉사 결합 모델 연구’ 등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의 ‘자원봉사자’가 대표적 사례다.
충남 천안시의 한 주민자치센터가 운영하는 헬스장에서 자원봉사 도중 뇌출혈로 쓰러진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인 자원봉사자는 산재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관련 조례에서 ‘자원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산재법>의 보호(적용)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상급기관인 산재재심사위원회와 법원은 ‘노동자’로 판단했다. 천안노동부도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노동자’로 판단하고 천안시장을 사용자로 특정한 ‘체불금품확인원’을 2015년 1월 발급했다.
계약의 형식이나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실질에 있어 사용자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상당한’ 지휘감독 아래에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한 사람이라면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는 ‘노동자성에 관한 법리’에 따른 당연한 판단이 내려졌다.
이런 판단이 ‘법원’만이 아니라 ‘노동부’와 ‘산재재심사위원회’에서도 내려지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사업 시행 12년만인 2016년 비로소 방침을 정했다.
‘시장형’ 사업 참여자는 ‘노동자’, ‘공공형’ 사업 참여자는 ‘유급 자원봉사자’라고!
그러나 이후에도 ‘공공형 자원봉사자’를 노동자로 판단한 사례는 이어졌다.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판단도 나왔다. 한 주민자치센터로부터 재위촉을 거부당한 자원봉사자가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사건에서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자원봉사자를 자치단체장의 부당해고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운영안내’에서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2024. 11. 시행)을 근거로 사업 유형을 공공형ㆍ사회서비스형ㆍ민간형으로 구분했다.
공공형은 ‘봉사(사회활동)’, 사회서비스형과 민간형은 ‘근로’(단, 민간형 중 ‘공동체사업단’은 ‘근로’와 ‘도급’ 중 선택)로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형’과 ‘민간형(도급계약의 형식을 취한 ‘공동체사업단’)’도 노동자성에 관한 법리에 따라 실질에 있어 사용자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다면 ‘노동자’다.
복지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운영안내에도 “도급계약서의 체결만으로 도급관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므로 실제 도급관계 운영(참여자 운영관리)을 준수”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충청북도 일하는 밥퍼 사업 지원 조례, 법률근거는?
밥퍼 사업은 <충청북도 일하는 밥퍼 사업 지원 조례>에 근거 법률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사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해당 조례안에 대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는 밥퍼 사업을 “공공형(노인공익활동사업)”과 유사한 ‘사회활동’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밥퍼 사업의 홍보 영상ㆍ언론기사ㆍ조례, 복지부의 운영안내 등에 비추어 보면, “사회서비스형” 내지는 “민간형(특히, 공동체사업단)”에 훨씬 가깝다. 설령 “공공형”으로 보더라도 실질에 있어서는 사용자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상당한 지휘감독 아래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노동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밥퍼 사업 참여자들은 ‘정해진 작업장’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자치단체장(이 지정한 공무원 및 작업장 관리자 포함)의 상당한 지휘감독 아래 농산물 손질, 공산품 조립 등의 단순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 대가로 시간에 비례하여 정해진 금액을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받는다. 참여자들은 온누리상품권으로 생활용품이나 손주 선물 등을 구입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밝히고 있다.
조례안에 대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및 조례에는 밥퍼 사업이 ‘봉사’라기보다는 부족한 ‘노동’을 제공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법이 적용되는 다른 취약계층 일자리와 중복될 수도 있는 성격의 사업이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하는 횟수와 시간 및 점검 등 상당한 지휘감독을 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두고 있다.
<밥퍼 사업 조례안에 대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및 조례의 주요 내용>
“소일거리를 담당하는 인력”, “일정한 장소”, “생산적 자원봉사활동”, “생산인구는 점차 감소”, “일손 부족 문제”, “간단한 소일거리(농산물 다듬기, 간단한 공산품 작업 등을 봉사활동 개념으로 제공”, “농가, 소상공인, 기업에도 도움”, “일감 제공자”, “기타작업장”, “단체작업장”, “장애인 보호작업장 일거리와 중복으로 인한 민원 문제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1일 1회”, “단체작업장은 2시간 이상”, “기타작업장은 3시간 이상”, “활동 사항을 점검하고, 출석 및 이행 여부를 확인” 등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이 ‘공공형’ 사업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 100명에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급으로 자원봉사 하실 의향이 있냐는 물음에 모두 ‘안 한다.’고 답변했다. 사업 참여 동기가 생계목적이거나 최소한의 금액이 필요해서인지냐는 물임에도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지역사회를 위한 순수 공익활동사업에만 참여하는 공공형 자원봉사 어르신들도 이럴진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작업장에만 참여하는 밥퍼 자원봉사 어르신들의 대답은 다를까? ‘봉사’와 ‘근로’의 차이는 ‘대가’와 ‘자발성’ 여부다. ‘봉사’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자발적이지만, ‘근로’는 대가를 바라기 때문에 대가를 지급하는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한다.
업무상과실치사 ‘전과자’로 내몰린 자원봉사 어르신
노인 일자리 사업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2024년 5월 전북 장수에서 공공형 자원봉사로 잡초를 뽑던 70대 어르신이 5m 아래 도랑으로 떨어져 사망한 사건에서 경찰은 사망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자치단체장(이 지정한 공무원 포함. 이하 동일)이 아니라, 작업반장(월 3만원 추가 지급) 역할을 추가로 담당한 어르신에게 물었다.
자원봉사 어르신이 졸지에 업무상과실치사 ‘전과자’로 내몰린 것이다.
어르신들을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것도 모자라, 사업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명 및 안전사고에 대한 형사상 법적 책임까지도 어르신들에게 전가하는 노인 복지사업이 과연 노인을 위한 복지정책일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김영환 도지사가 폐지 줍는 노인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추진하게 되었다는 ‘밥퍼 사업’과 노인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공공형 사업’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말했던 “가난한 사람, 부정식품이라도 선택할” 기회를 주려는 사업이 아니라면, 어르신들을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안전한 ‘보호지대’로 모셔 오고, 업무상과실치사 전과자로 내모는 폐륜적인 노인 복지정책을 당장 뜯어 고쳐야 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정신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초고령화 사회(2024. 12. 기준 65세 이상 인구 1천만명(전체 인구 20%) 돌파)로 진입한 우리 사회가 20년 넘게 시행된 노인 복지정책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근본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
진정 노인을 위한 정책이라면, 헌법상 책무자로서, 노동법상 사용자로서 노동법의 보호지대에서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만 고집하는 노인 복지정책은 더 이상 노인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