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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충북민예총·베트남푸옌성 2025 문화예술교류 동행기
‘파도를 타고 구름을 넘어 20주년’. 이 문구는 지난 해 베트남 푸옌성 문화관광청이 문화교류를 위해 충북을 찾았을 때 발표된 공식 슬로건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했다고 하는데 20년 동안 변치 않고 진행됐으니, 교류의 깊이는 ‘종가집 묵은 된장 맛’처럼 깊다고 해야 할까?
충북민예총(이사장 김덕근)은 지난 2004년부터 베트남 푸엔성과 문화교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충북민예총은 민간예술단체인데 베트남 푸옌성은 정부조직이다.
올해도 충북민예총과 베트남 푸옌성의 문화예술교류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달 28일부터 4월 2일까지 25명으로 구성된 충북민예총 문화예술교류단이 베트남에 방문해 공연과 전시, 교류행사를 진행했다.
본보는 8박9일 동안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 동행해 ‘종갓집 깊은 된장 맛’처럼 우러나는 우정어린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고대하던 4월 1일, 그날이 왔다. 아침 해가 떴지만 햇살은 비추지 않았다. 여전히 바람은 몰아쳤고, 건기에도 불구하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떴다.
베트남 정부가 푸옌성 해방 5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에 오른다는 기대감으로 궂은 날씨를 마주하는 충북민예총 공연팀 예술가들도 날씨가 원망스럽다.
4월 1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연습장으로 향하려 하는 순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왔다.
싸오비엔 예술단 관계자가 전한 소식은 오늘 기념행사에 충북민예총 공연팀은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들려온 소식이지만, 공연을 취소한 배경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노병(베트남 사회에선 영웅이라 부른다)들의 심기를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해방전쟁 당시 적국으로 마주했던 한국의 국기가 무대에 올랐을 때, 이를 바라보는 노병들의 감정이 자극될까 우려했다는 것이다.
실망하기에는 뿌리 깊은 21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했다. 공연팀 예술가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결정이 번복 되지 않는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날 하루, 시간은 그렇게 무심하게 흘렀고 해방절 기념공연 시간이 됐다. 충북민예총 예술교류단원들은 출연자가 아닌 관람객 신분으로 행사장에 들어섰다.
어제까지 사전 연습을 했던 무대를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도 마냥 즐겁지 않다.
위로가 필요해 보였다. 이들을 위로해 줄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이철수(판화가, 호아빈의 리본 대표), 도종환(시인, 전 국회의원), 김승환(전 충북대학교 교수), 박종관(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연출가) 등 충북 출신 문화예술인들이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사실 이들은 충북민예총과 베트남 푸옌성의 문화예술교류의 물꼬를 튼 개척자다.
누구보다도 후배들의 마음을 잘 알기도 할 뿐더러, 문화예술교류의 가장 큰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마침 ‘호아빈의 리본’ 소속으로 장학금을 전달하기 위해 베트남을 방문했다.
‘호아빈’은 푸옌성에 있는 작은 마을의 이름이다. 한자로 ‘화평’(和平)으로 표기한다. ‘화평’이란 말을 거꾸로 읽으면 ‘평화’가 된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주민학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충북민예총은 이곳에 학교를 짓는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 전달하고 장학금과 컴퓨터를 지원했다. 충북민예총에서 시작했지만 ‘호아빈의 리본’이란 재단을 설립해 활동을 분리해 현재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위로 뒷풀이 자리에는 이들 외에도 싸오비엔 예술단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어깨를 쓰다듬었다. 싸오비엔 단원들은 충북민예총 단원들을 부둥켜 안았다.
서로 말하지 않지만, 가슴속의 응어리를 녹여내는 포옹이었다. 21년 동안 쌓인 우정은 그렇게 충북민예총 예술단원들의 상심을 위로했다.
참고로 이날 50여명이 모인 자리의 식대는 선배 예술가인 이철수 화백이 통 크게 부담했다.
더 감동적인 무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4월 2일 새날이 밝았다. 이날도 여전히 바람이 불고, 안개비가 내렸다.
이날은 충북민예총과 푸옌성 싸오비엔예술단의 합동 공연이 열리는 날이다. 공연은 푸옌성 뚜이화시의 상징과도 같은 응인퐁(Nghinh Phong) 광장에서 열렸다.
광장 한 켠에는 유명한 응인퐁 타워 (Nghinh Phong Tower)가 있다. 한쪽에는 푸른 바다가, 다른 한쪽에는 직선 도로가 펼쳐져 있다.
해방절 기념행사장 무대 만큼은 아니지만, 합동공연장의 무대는 규모가 상당했다.
한 예술가는 “한국에서 이런 규모의 무대를 설치하려면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고 귀띰”했다.
태평양의 기운을 받은 강풍이 비를 품고 몰아쳤다. 날씨가 참 괴팍스럽게 도와주지 않는다.
과연 올까? 날씨 탓에 사람들이 모일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기우였다. 순식간에 1000여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려왔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예상을 뒤엎었다. 싸오비엔 예술단 따로, 충북민예총 공연팀 따로 공연이 진행될 것으로 봤는데 합동공연 프로그램이 더 많다.
언제 이렇게 준비했을까?
서로 맞춰 볼 시간이 3일 밖에 없었는데도 그들은 오롯이 하나였다.
싸오비엔예술단 소속 작곡가가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를 개사해 만든 노래 ‘담쟁이’를 비롯해, ‘한‧베 우정축가’, ‘아리랑’, ‘호 아저씨 노래’가 울려퍼졌다.
충북민예총 공연팀으로 참가한 산오락회는 이상설 선생을 추모하며 만든 ‘우스리스크 편지’를 불렀다.
압권은 마지막 순서였던 ‘아리랑’과 ‘호 아저씨 노래’였다. 싸오비엔예술단과 예술공장 두레의 단원들은 베트남 국기와 태극기를 휘날렸다.
하루 전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태극기는 이날 베트남 국기와 함께 힘차게 펄럭였다.
아이돌급 인기를 확인했다. 누가?
4월 3일, 푸옌성 뚜이화 시내를 벗어나 시골 마을로 향했다.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시골인 ‘안미’ 마을로 갔다.
‘농촌 마을에 찾아가는 공연’ 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무대는 조촐했다. 베트남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농촌지역은 우리나라의 1970~80년대를 연상시킨다.
공연이 열리는 마을 광장에는 오후 5시경부터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공차기를 하다 해맑게 다가오는 아이들.
남자 아이들은 ‘손흥민’을 외치며 말을 걸어온다. 여자 아이들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 이름을 얘기하며 “아냐?”고 물어온다.
물론 모른다. 베트남 아이들이 한국의 아이돌 그룹을 더 잘 알고 있는 셈이다.
공연시간이 다가 오자 금새 마을광장이 꽉 찬다. 오토바이가 하나 둘 모여 들더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였다.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신기할 뿐이다.
참석자들 중에선 단연 청소년이 많았다. 공연에선 예술공장 두레의 공연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 예술공장 두레는 마당극 ‘착한 사람 김삼봉’에 나오는 장면 중 ‘삼봉아! 장가가자’, 접시돌리기, 강강술래를 공연했다. 공연 모두 관객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함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공연이 끝난 뒤, 인기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이 나왔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났는데도 가지 않고, 출연진에게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20여분간 이런 장면이 연출됐다.
예술공장 두레 소속 홍성안 춤꾼이 “아! 저좀 살려주세요”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이곳 청소년들에게 빙 둘러 쌓여 있었다. 청소년 들은 홍성안씨 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하거나 같이 사진을 찍었다.
어림잡아 1백명도 넘어 보인다. 길게 줄이 만들어졌다. 뒤에 있는 여학생은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오늘 만큼은 그는 최고의 인기스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