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민주주의가 일터와 삶터에서 실현될 때 광장의 목소리는 지워지지 않는다

퇴진너머평등으로 충북포럼 , 4월 5일 ‘여기서 우리가 바꾸면 돼’

2025-03-28     선지현 퇴진너머평등으로 충북포럼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
선지현 퇴진너머평등으로 충북포럼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

 

다시 소환된 민주주의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와 ‘민주주의’와 ‘탄핵’을 외치면서 국회의 탄핵소추가 가결된 지 100일이 넘었고, 헌법재판소가 변론 종결을 한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시민들의 우려와 불안이 날로 커지고 있다.

12월 3일 시민들은 대통령이 무력을 동원해 친위쿠데타를 벌이는 장면을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시민들이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목격한 증언자인 것이다.

그럼에도 헌정질서를 지키려고 만든 헌법재판소는 침묵하고 있고 법치를 강조하던 권력자들은 스스로 법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로 인해 내란 사태가 끝나지 않고 있다.

12월 3일 이후 분노한 시민들은 1987년 6월 거리에서 외쳤던 민주주의를 다시 소환했다. 전국 곳곳에서 광장이 열렸고 시민들은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력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2030여성들의 두드러진 참여가 새롭게 주목받았다. 퀴어들이 외치는 ‘윤석열과 혐오/차별도 몰아내자’는 구호는 시민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 탄압에 맞서 싸워왔던 노동자들이 ‘퇴진의 길을 열겠다’고 할 때 시민들은 환호했다. 농민들이 끌고 나온 트랙터가 경찰의 벽에 막혔을 때 광장의 시민들이 달려가 그 벽을 뚫었다. 시민들은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과 동시에 더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를 배우고 응원했던 것이다.

 

극우세력의 준동과 위협받고 있는 삶과 일터

하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옹호하는 극렬지지자들의 등장은 과거 태극기 부대와 확연히 달랐다. 기존의 질서를 ‘국민 저항권’이라는 이름으로 무너뜨렸다. 민중들의 언어인 ‘저항’이 권력자를 지키기 위해 사용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혐오와 극단적인 폭력이 난무했다. 가짜뉴스는 극우세력을 모으는 동력이 됐다. 규모 면에서도 엄청났다. 전국을 돌며 수 만 명을 모아 집회를 열었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싸움을 진영 대립으로 왜곡시켰다.

내란에 동조한 권력자들은 이를 극우세력의 마이크를 자처하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사회 곳곳에서 파시즘의 징조가 나타났다. 특히 이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던 이들이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란수괴 윤석열만이 아니라 곳곳에 윤석열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던 것이다. 이들에 의해 헌법이 품은 뜻은 지워지고 절차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짓밟는 말과 행동들이 퍼져 나갔다. 혼돈이다. 민주주의, 자유, 법치, 저항, 광장 모두가 혼란으로 뒤덮힌 듯 보인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뿜어냈던 에너지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내란 세력과 이를 동조하는 극우의 행태가 기막히기도 하지만 100일이 지나도록 내란 사태가 끝나지 않으니 지쳐가는 것이다. 일상도 무너지고 있다. 장사는 안되고 경제는 곤두박칠 친다. 함께 일상을 나누던 공동체도 모두 헝클어지고 있다. 그러니 정치 얘기는 그만하자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광장에서 외치는 윤석열 퇴진 구호만으로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걸 체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윤석열 퇴진을 넘어 혐오·차별과 극단적인 폭력으로 나아가는 우리 사회의 토양을 갈아엎을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민주주의가 만드는 다른 세계를 이야기할 공론장

우리는 내란 사태 이전부터 민주주의의 위기를 체감하고 있었다. 불평등의 심화는 민주주의의 생명을 갉아먹는다. 기후 위기 속에서 반복되는 재난은 삶터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 서로 다른 신념과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득세하면서 폭력은 일상과 사이버공간을 가리지 않고 벌어진다. 시민들이 경험하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는 제도의 정치가 아니라 오히려 삶 그 자체다. 그래서 ‘내란수괴 윤석열이 사라지면 우리의 삶과 일터는 나아질까’라는 질문에 머뭇거린다.

이제 우리는 윤석열 퇴진과 함께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의 토양을 바꾸는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건 나중에’로 미루면 우리가 삶터와 일터에서 체감하는 민주주의 위기는 지속된다. 그렇게 되면 일터와 삶터의 문제는 지워지고 소멸된다. 우리는 당연히 분노하겠지만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낼 서사가 없다면 그다음에 오는 건 무기력과 좌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민들에게 말 거기를 시작한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말이다.

지역에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양당 체제를 넘어서려는 진보정당 등 19개의 사회운동 단체들이 공동 기획해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공론장을 열기로 했다. 퇴진광장을 함께 열고 지켰던 지역활동가들이 직접 발표문을 준비하고 토론을 안내한다. 삶터와 일터에 가장 가까운 곳부터 변화를 상상하기 위해서다. 서로의 운동을 응원하고 지역민들과 함께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몰아내는 승리를 경험하면서 이야기를 펼쳐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퇴진의 목소리가 더 강하고 넓게 퍼져야 할 이때, 더 간절한 마음으로 광장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이웃들에게 퇴진 너머의 이야기를 건네보려 한다. 이 싸움이 미래가 되고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자신의 노동으로 존엄한 삶이 가능하기를 바라는 노동자들, 차이가 차별과 배제를 만드는 현실을 바꾸고 싶은 시민들, 위기와 재난에도 안전을 도모하고 공동체를 지키고 싶은 이들이 함께 하길 소망한다. 4월 5일! 광장의 목소리를 새로운 민주주의로 이어낼 이야기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