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딸의 마지막 호소 알려 달라” 유족 요청 거부했다
30대 청년 인턴의 죽음, 괴롭힘 가해자는 견책 식약처, 고인 마지막 증언 ‘상담일지’ 공개 거부
“저희 딸 아이는 지난해 9월 12일 식약처 출근 카드를 찍고 난 후 현재까지도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소 딸이 좋아하는 반찬이 있으면 목이 메어 먹지 못하고 길을 가다가도 ‘아빠’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봅니다.”
“저희의 소망은 아이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진실만 알고 싶습니다.”
지난해 9월 식약처 건물에서 30대 청년(인턴 직원) A씨가 투신했다. 계약 종료를 10일 앞둔 날 저녁이었다.
유족은 식약처에 딸의 죽음에 관한 자료를 공개해달라 수 차례 요구했으나 아무런 자료도 제공받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의 아버지는 딸의 마지막 증언과 일터에서 죽음에 내몰리게 된 상황을 유족에게 공개하지 않는 처사가 “과연 상식적이냐”고 되물었다.
식약처의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 유족 측이 제시한 괴롭힘 정황 20개 중 단 2개의 행위만이 괴롭힘으로 인정됐다. 그 결과 가해자인 B씨에게는 가장 가벼운 징계인 ‘견책’이 내려지면서 행정 종결됐다.
유족은 “가해자는 딸에게 욕설과 폭언을 하고, 무시하고 따돌렸으며 아무 이유 없이 부서 이동을 시켰다. 문서열람 권한을 빼앗고 아무 업무도 주지 않은 채 방치하고 청소 조차 못하게 했다”고 폭로했다.
또 "고인이 생전 피해 사실을 호소했으나 인정된 것은 ‘또라이야’, ‘미쳤니’라는 녹취된 발언 2건뿐"이라고 공개했다.
고인의 ‘마지막 이야기’ 담긴 상담일지 “괴롭힘 주요 정황 있을 것”
A씨 아버지가 눈물로 호소하며 식약처에 공개를 요청한 자료는 A씨가 지난 5월부터 6월 한달간 식약처 내 상담센터에서 5차례에 걸쳐 받은 ‘상담일지’다.
A씨의 산재 대리인을 맡은 노무법인 청춘 김은지 노무사는 “직장 내 따돌림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반된 주장이 발생할 경우 인정받기 어렵다”며 “그렇기 때문에 따돌림을 당한 시기에 상담을 받았던 생생한 기록이 직장 내 괴롭힘의 중요한 증거자료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식약처는 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 조사 자료는 물론 고인의 상담일지를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유족들의 정보공개 청구에도 모두 거부 처분을 내렸고 이의 신청마저 기각했다. ‘판결문 없이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며 자료가 필요하면 소송을 하라는 것인데, 국가기관인 식약처가 유족에게 가혹한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고 규탄했다.
김은지 노무사는 “식약처와 협약을 맺은 심리상담 센터는 협의만 되면 상담 일지 열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식약처가 압력을 가해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리상담센터와 한국상담심리학회 윤리위의 해석에 따르면, 내담자가 사망한 경우 법정상속인인 유족의 요청에 따라 기록물 열람이 가능하다.
그러나 식약처는 유족에게 “상담 기록에 제 3자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며, 상담 기관과의 비공개 약정이 체결되어 있다”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시민사회 “사건 은폐 시도 중단하라” 규탄
식약처의 정보 비공개 행태에 관해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13일 청주노동인권센터는 식약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식약처는 2차 가해를 중단하고 유족들에게 고인의 직장 상담 기록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식약처는 유가족들한테도 공개되지 못하는 상담 기록에 제 3자 정보가 포함되어 있음을 어떻게 안 것이냐”고 따져 물으며 “상담일지 공개를 막는 행태는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시도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식약처는 인턴 노동자를 괴롭혀 자살로 내몬 것도 모자라 유족에 대한 2차 가해를 자행하고 있다”며 유족 면담을 통한 사과와 자료 공개를 촉구했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김태종 대표는 “더 살아갈 수 있던 청년이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며 “식약처가 진실되고 떳떳하다면 문을 걸어 잠글 것이 아니라 나와서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규탄했다.
한편, 지난해 9월 유족은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을 접수했다.
식약처가 A씨 근무 부서의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사 B씨의 언행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단, 조직적 따돌림, 부당한 부서 이동, 업무배제 등의 혐의는 근거 부족으로 불인정됐다.
본보는 식약처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