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걸려도 우리는 끝까지 간다

(기고) 보편적 가치를 무너뜨린 대통령

2025-01-08     장풍 활동가

민주주의 퇴행을 막는 광장의 목소리

12월 3일 비상계엄은 1987년 민주항쟁으로 이뤄낸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민주주의 파괴행위다. 비상계엄 발표만으로도 놀라운데 내란 실패 이후 검찰과 경찰이 쏟아내고 있는 윤석열의 발포 명령과 북풍 공작 등 조사 결과는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공수처의 소환조사를 계속 거부하며 탄핵의 시간을 늦추고 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관 임명을 지연시키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탄핵을 여야 정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내란의 지속이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한 달이 넘도록 일상을 멈추고 광장에서 주권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이에 충북시국회의는 12월 14일 충북도청 앞 도로를 가득 메웠던 도민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기획연재를 시작한다. [충북시국회의]

‘윤석열 퇴진! 민주·평화·평등 사회대전환! 충북비상시국회’(이하 충북비상시국회의)가 ‘민주주의 퇴행을 막는 광장의 목소리’란 제목으로 연속 기고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충북비상시국회의는 12‧3비상계엄 내란사태로 발생한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차별없는 평등한 사회로 나가기 위한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글 : 장풍 (청주여성의전화 활동가)

 

세상은 변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12월 3일, 그날 이전까지는 말이다.

“엄마, 무서워서 스카에서 일찍 왔어”

대한민국 청소년 무게만큼의 가방을 맨 아이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말했다. 자다 깬 필자는 여성들이 안전하지 못한 밤길이 먼저 머리를 스쳤다.

“무서운 사람이 따라왔어?”

“비상 계엄령이 선포됐어”

“가짜뉴스 보지 마!”

“진짜야”

“뭐? 이런 미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어퍼컷을 날리면서 등장한 윤석열은 그 밤 국민들의 평온했던 일상을 파괴했다.

어쩌면 윤석열이라는 정치 초보자에게 대한민국의 운전대를 맡겼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윤석열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정치적 신념이나 철학 없이 국민에게 잠시 위임받은 권력을 마치 제 것인 양 사용했고, 각 분야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윤석열의 잘못은 차고 넘치지만 그 중에서도 성차별을 심화시키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혐오와 차별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며 불평등을 개선하라는 여성의 목소리를 남성에게 도전하는 세력으로 둔갑시켰다.

사회 제도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다. 집권한 지 2년 반이 조금 넘는 동안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 성평등 추진체계 삭제와 축소, 여성폭력 관련한 예산 삭감, 민간고용평등상담실 전면 폐지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버거울 지경이다.

그 결과 보편적 국제기준이자 가치인 성평등과 인권은 퇴행했고 여성들은 불안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가정폭력, 딥페이크 성범죄, 교제폭력,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고 있음에도 윤석열은 피해자 지원 강화가 아닌 오히려 예산을 삭감하고 정치적으로는 안티페미니즘을 양산했다.

그리고 12월 3일, 핏값으로 얻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정질서까지 파괴했다. 이제 ‘계엄령’은 우리 생애에 생길 수도 있는 일이 되었고, 대한민국은 그런 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철저히 지키겠노라 선서한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라니 부끄러움과 참담함은 국민의 몫이 되었다.

내란 우두머리이자 혐오·차별정치 선봉자인 윤석열 파면!

 

추운 겨울,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은 다시 광장으로 모였다. 누워만 있고 싶은 사람,내향형인 사람,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 쉽게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목소리로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 연대하였다.

여성 운동이 ‘여성 우월사회’를 형성해 젊은 남성이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다는 왜곡된 인식도, 나이도, 종교도, 장애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 어렵다는 국민 대통합을 이뤘으니 윤석열이 하나는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광장을 지키는 사람은 사회적 약자였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늘 광장에 있었다. 여성들도 광장 한편에서 목소리를 내며 여성 할당제, 호주제 폐지, 미투 운동, 낙태죄 폐지, 디지털성폭력 의제화 등 성평등한 관점으로 민주주의의 외연을 확장하고 제도적 변화를 이끌었다.

그렇게 세상은 변했고,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믿었다.

무법자 윤석열이 국민의 목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쓸모없는 올곧음을 보였지만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했던 무지의 소치였다.

분노와 불안으로 계엄 불면증에 시달리던 국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광장에 모였다. 그 중 응원봉과 함께 2030 여성들이 유독 주목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에도 그곳에 있었다. 언제나 주체적 참여자였으나 정치 고관여층은 나이 든 남성이라는 성차별적 시선에 갇혀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구조적 성차별 속에서 자신의 안전한 일상을 원했던 2030 여성들이 2024년 12월, 가장 밝고 소중한 빛으로 광장에 모인 것이다.

그리고 성평등을 후퇴시킨 안티 페미니스트 윤석열의 파면을 외치고 있다.

안티 페니미스트,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이제 끝났다.

국민의 명령으로 ‘처단’될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만나게 될 것이다. 윤석열 같은 대통령이 다시 선출되지 않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사회적 관심과 주권자로서의 고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 고민 너머에는 일상의 인사가 미안하지 않고, 다름이 존중받고,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구조적 성차별은 있다고 말하는 진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세상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짓밟힌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값으로 국민의 고통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나아간다.

민주 공동체와 성평등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의 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