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태실지를 차지한 친일파 묘, 시민의 힘으로 환수합시다

경남 사천 단종태실지, 친일반민족행위자 최연국 후손이 소유 친일재산조사위 “중추원 참의 되기전 취득해 환수대상 아냐” 잘못 판단 대법원 “1904년 러일전쟁부터 해방 때 까지 취득한 재산은 환수대상” 법무부가 친일재산 환수업무 승계…법무가 환수소송 나서면 가능해

2024-10-16     김남균 기자

 

어떤 사람의 묘비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공(公)은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여 관로(官路: 관직)에는 뜻을 끊고.... 혹 (조선총독부의 관직을) 권하는 자가 있으면 세상이 예스럽지 못하니 나가면 의가 아니라고 하셨다.”

여기서 ‘공(公)’은 누구일까요?

창씨명 ‘아사히 쇼’(朝日 昇) 바로 최연국(崔演國, 1886~1951)이라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최연국은 ‘아사히 쇼’라는 이름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는지, 신문에 창씨개명을 했다고 광고까지 냈습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장남, 차남, 삼남의 이름까지도요.

일단 묘비에 나와 있는데로 최연국은 경술국치(1910년8월29일. 일본이 ‘한국병합조약’을 강제한 날)이후에 관직에 나가지 않았을까요?

웬걸요. 1920년 조선총독부가 임명하는 경상남도평의원에 선출됩니다. 그해 조선총독부경상남도는 최연국을 중추원참의 후보로 추천합니다. 1933년 드디어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에 오르더니 11년간 그 직을 유지했습니다.

어쩜 이리도 묘비에 뻔뻔하게 거짓말을 적어놓았을까요?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의 멘탈도 역시 ‘갑’입니다.

이들은 그것도 모자라 “국가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도, 자기 해를 잊고 남을 돌봐주는 것도, 재물을 흩어 이웃을 도와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며 “최연국은 이런 일들을 실천하신 분이니 두고두고 그 덕을 어찌 일컫지 않으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조선총독부를 위해 충성해 놓고도 “국가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하는 친일파의 후손들은 자기 조상의 친일행적은 하나도 기록해 놓지 않았습니다.

단종의 태실지를 훼손하고 조성된 최연국의 무덤

단종 태실지 가는 길.  단종 태실지는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편 은사리 438번지에 위치해 있다. 직선거리 500m 떨어진 곳에 세종대왕의 태실지가 있다. (사진=김남균 기자)
경남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에 위치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최연국의 무덤 입구 전경(사진=김남균 기자)

 

친일반민족 행위자 최연국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요?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큰태봉산에는 세종대왕 태실지가 있습니다. 세종대왕 태실지에서 직선거리로 500m 정도 떨어진 ‘작은태봉산’이 있습니다. 지번은 경남 사천시 곤명은 은사리 438번지입니다.

이곳에 최연국의 묘소가 있는데요. 우리 한번 친일파의 무덤 구경을 떠나 볼까요?

우선 묘소 입구에는 주차장이 있는데 5~6대는 충분히 주차가 가능합니다. 최연국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오솔길이 있는데요. 어!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뭐라고 적혀 있을까요? 친일반민족행위자 최연국의 행적을 알리는 단죄비 일까요?

아닙니다. 안내판에는 ‘사천 단종 태실지’라고 적혀있습니다. 또 경상남도 기념물이고 표시되어 있네요.

경상남도가 설치한 '사천 단종 태실지 '안내판 (사진=김남균 기자)

 

안내판에는 “사천 단종 태실지는 단종의 ‘태’를 봉안하는 태실 있던 곳”이라며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일본은 조선왕조의 정기를 끊으려고 모든 왕의 태실을 부수고 태실에 봉안된 ‘태’ 항아리를 경기도 양주로 옮기고 태실이 있던 땅을 개인에게 팔았다. 이때 단종 태실의 땅도 개인에게 팔렸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곳에 개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세상에나! 단종의 태실지가 파헤쳐진 자리에 친일파의 무덤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는 말인데요.

경남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438번지에 위치한 최연국 무덤 전경. 최연국의 후손들은 단종의 태실지가 있던 자리에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 아래로 단종 태실지 관련 석물들이  남아있다.
최연국 무덤 봉분 전경. 봉분을 둘러싼 둘레석은 단종 태실지 조성에 사용됐던 지배석이다. (사진=김남균 기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최연국 묘비(사진=김남균 기자)

 

무덤으로 올라가면 더 가관입니다. 정상부에는 최연국의 무덤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둥그렇게 조성된 친일파 무덤의 봉분은 단종의 태실을 둘러쌌던 돌(지배석)로 마감을 했습니다.

그 앞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최연국의 묘비가 자리잡았습니다.

그 아래로 단종의 태실지 흔적인 거북모양(귀부)의 태비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태실의 내력을 담은 태비신은 두 동강이 난 상태로 방치돼 있습니다.

최연국은 어떻게 이 땅을 차지했을까?

최연국 무덤 아래서 바라본 모습. 무덤과 함께  사람 키만한 최연국의 묘비가 설치돼 있다. (사진=김남균 기자)
최연국 무덤 아래에 놓여 있는 단통 태실지 귀부. 꼭 최연국 무덤의 부속물처럼 보인다.
조각난 단통 태실 태비석 (사진=김남균 기자)
두 동간 난 태비석 (사진=김남균 기자)

 

경상남도가 설치한 안내판에 나와 있는 것처럼 최연국은 1929년에 이 땅을 소유하게 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작성된 토지대장에 따르면 최연국 이전의 소유자는 ‘창덕궁’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덕궁이 조선왕가의 태실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35년 최연국은 자신이 사장으로 있던 ‘구암토지주식회사’로 명의를 바꿉니다. 시간이 흘러 1983년 최연국의 증손자이 최 모씨(서울 거주)로 바뀌었고 현재도 그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조선왕가의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조선왕가의 태실을 파헤칩니다. 이도 모자라 태실지롤 최연국과 같은 친일파에게 소유권을 넘깁니다.

친일파에게 넘겨진 땅은 다시 그 후손에게 증여돼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친일파의 후손들은 선대가 취득한 땅에 무덤을 만들었는데요. 도대체 친일파 조상 묘비에 ‘경술국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배짱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친일파가 가로 챈 단종태실지, 환수할 수 없나요?

최연국 무덤이 자리한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438번지 등기부등본. 2008년 정부는 소유권이전 등기 가처분 결정을 받았지만 2099년 8월 이를 해제했다. 

 

친일재산국가귀속법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친일을 대가로 취득한 재산은 환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최연국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까지 지낸 고위 친일파로, 그가 후손에게 물려준 재산은 당연히 환수대상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 땅을 환수하려고 시도는 했었습니다.

토지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2008년 1월 25일 해당 토지에 대해 국가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는 정부가 이 땅을 친일재산으로 간주하고 국가에 귀속하겠다는 절차가 시작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2009년 8월 11일 위 가처분이 해제됩니다.

이는 국가로 환수하는 것이 중단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국가귀속, 왜 중단됐나요?

친일반민족행위자 최연국 묘가 있는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438번지 전경 (사진=김남균 기자)

 

2006년 친일재산국가귀속법에 따라 만들어진 친일재산환수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최연국이 후손에게 증여한 재산을 환수대상이라 보고 조사에 착수합니다.

앞서 언급한 ‘가처분’ 결정도 조사위의 활동과정에서 나온 것이죠.

그런데 조사위는 최종적으로 최연국의 무덤이 있는 토지를 환수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왜냐구요?

조사위는 최연국이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것은 1933년인데, 재산취득시기는 1929으로 해당 토지가 친일활동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중추원참의를 표방한 관직이 과연 ‘친일의 시작점’ 일까요?

오랜 친일활동의 결과물로 조선총독부 눈에 띄어야 관직을 취득하는 것으로, 시작점이 아니라 ‘친일의 결과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또 최연국은 1920년에 이미 조선총독부 경상남도 평의원을 지냅니다. 그해 조선총독부의 경상남도는 최연국을 중추원 참의 후보로 총독부에 추천합니다.

1920년 조선총독부 경상남도 지사가 작성한 문서.  이들은 조선총독부에 최연국을 중추원 참의 후보자 7순위로 최연국을 추천했다.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이보다 5년 앞선 1915년 최연국은 ‘(조선총독부) 시정5년 기념 공진회 평의원’에 촉탁됩니다.

공진회의 정식명칭은 ‘시정5년 기념 조산물산공진회’로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경복궁 일대에서 열린 박람회를 말합니다. ‘시정 5년’이라는 용어에서 알수 있듯이 일본제국이 한일병합 5주년을 기념해 조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개최한 행사입니다.

일제는 공진회를 이유로 경복궁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훼손했습니다. 이를 보기 위해 일본인들이 본토에서 건너온 숫자만 30만명에 이릅니다.

법원 판결, 조사위 환수포기 사유 인정안해

조사위가 최연국이 중추원 참의라는 직책을 맡기 전에 취득한 것이여서 친일재산이 아니라고 했지만, 대한민국 법원의 판단은 전혀 다르게 판단합니다.

2013년 청주지방법원은 친일파 민영은의 후손들이 낸 소송(2012나6487)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이라 함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1904.2.8.)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도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고 판결합니다.

친일파 민영은의 후손들은 그가 중추원 참의에 오른 것은 1924이고 해당 토지는 그 이전에 취득한 것으로 친일재산이 아니라는 논리를 주장했는데요.

이에 대해 청주지방법원은 “민영은은 러일전쟁 발발일인 1904년부터 1945년 사이 토지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며 “(민영은이 후손에게 물려준) 이 사건 각 토지는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호가 정한 바에따라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친일재산”이라고 명토박았습니다.

2008년 친일파후손들은 “친일파가 (친일)지위에 있던 시기를 고려하지 않고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의 모든 재산 취득행위를 친일행위의 대라고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하여 국가에 귀속시킨다는 것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 재산권 보장,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2008구합33914)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특별법은 친일재산을 헌법상 보호하지 않겠다는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에 근거했다”며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해방 이전까지 사이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협력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제반 상황을 종합했을 때 헌법 제37조제2항에서 정한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였다고 볼수 없다”며 친일파 후손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대법원의 경우 “친일재산 귀속법 제2조 제2호에 의한 추정력을 번복하기 위해서는 재산의 취득시기가 러일전갱 개선시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라는 전제사실에 대하여 법원의 확신을 흔들리게 하는 반증을 제출하거나, 또는 (친일파의 후손은) 취득한 재산이 친일행위가 아니라는 추정사실에 반대되는 사실의 존재를 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2013.5.23. 선고 2011두31390)고 판결했습니다.

단종 태실지 환수, 친일파 무덤 파묘 모두 가능해

대법원과 법원의 판결을 종합하면 친일파가 1904년 러일전쟁 개시 때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취득한 재산은 원천적으로 친일행위의 대라고 취득한 재산으로 환수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친일파의 후손들이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 조사위가 최연국의 취득한 단종태실지가 중추원 참의에 오르기전에 취득한 재산이기 때문에 환수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사위는 2010년 해산됐습니다. 조사위가 해 오던 업무는 법무부로 이관됐습니다.

법무부가 나서면 됩니다. 법무부가 최연국 후손 소유로 돼 있는 단종태실지를 대상으로 환수소송에 나서면 됩니다.

그런데 법무부가 이 일을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법무부 스스로 친일파 재산을 파악해 환수에 나선 사례는 없습니다.

꿈쩍 않는 법무부가 환수에 나서도록 할 방법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법무부를 상대로 친일파 최연국이 후손에게 물려진 토지에 대해 ‘국가 귀속 신청’을 요청하면 됩니다.

국가귀속 신청서류만 접수하면 법무부가 환수에 나설까요? 천만에요. 지금까지 해오던 그 버릇 어디가겠습니까? 시민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친일청산재산환수 마적단’은 깨어있는 시민들과 함께 공동으로 ‘국가귀속신청’을 하려 합니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수록 법무부가 무시하지 못하겠지요.

아참! 잊은게 하나 있네요. 국가가 소유한 행정재산에는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최연국 무덤이 있는 토지가 국가에 귀속되면 파묘가 가능하다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