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없는데도 조합장 투표했다고?…봉양농협 ‘무자격조합원’ 의혹

구곡 2리 노인들, “땅 없고 농사 안 짓는데 난 조합원” “다른 지역 사는 사람도 조합원 권리 행사”…증언 나와 이장 2인, ‘가짜조합원’ 인정…“선거 때만 와서 투표” 조합원 관리책임은 지역농협 이사회 및 조합장에 있어

2023-04-19     최현주 기자

제천 봉양농협이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 차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무려 36년 동안 조합장을 지낸 홍성주 조합장의 갑질 등 수십 년 간 곪을대로 곪았던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다. 봉양농협 노동자들은 현재 파업과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아본다.(편집자 주)

 

“아이구~ 농사가 다 뭐유. 내 나이가 90이야. 나 이제 아무것도 못 해유. 밥도 못해 먹는데 뭘. 땅도 아들이 다 팔아가고 이제는 읍어유. 텃밭 쬐끔 있는데 농사 안지은지는 한 3년도 넘었지. 그래도 조합원은 그전에 있던 대로 그냥 있는 거지 뭐.”(봉양읍 구곡2리·여·90)

“예전에는 농사 많이 지었는데 지금은 땅 다 팔아 먹고 없어. 텃밭 쪼금 있는데 300평은 안 돼. 그래도 뭐 그냥 농협 조합원이지. 이 동네에서 조합원이면서 농사 안 짓는 사람 아마 10명도 넘을 걸?”(봉양읍 구곡2리·여·83)

“뭐라고? 안 들려. 농사? 난 몰라. 조합원? 응, 나 봉양 조합원이야.(봉양읍 구곡2리·여·86)”

 

지난 13일 오후 1시. 제천시 봉양읍 구곡2리 경로당에서 만난 노인들 이야기다. 한창 농번기지만 그들은 경로당에서 한가롭게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제천시 봉양읍 구곡2리 경로당./최현주 기자.

 

봉양농협 ‘무자격조합원’ 논란

제천시 봉양농협 조합원 중 무자격조합원이 상당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농사를 짓지 않고, 땅도 소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농협 조합원으로 수년째 가입돼 있다는 것.

농업협동조합법 시행령 제4조에 따르면 지역농업협동조합 조합원 자격은 △1000㎡ 이상의 농지를 경영 또는 경작하는 자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 △농지에서 330㎡이상의 시설을 설치하고 원예작물을 재배하는 자 △660㎡ 이상의 농지에서 채소·과수 또는 화훼를 재배하는 자이다.

농업인의 주체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이익을 배분하는 것이 농협 설립의 기본 취지이자 목적인만큼 당연히 조합원 자격은 해당지역에 거주하거나 사업장을 둔 (농사를 짓는)농업인이어야 한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구곡2리 경로당에서 기자가 만난 노인 3명은 ‘농사를 짓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제는 농사를 지을 힘도, 땅도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당당히(?) 봉양농협 조합원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 90세인 모 씨는 3년 전부터는 혼자 식사를 챙기는 것도 힘에 부치고 아예 일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86세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도 거동이 힘들어 보였다.

이에 대해 구곡2리 이장 A씨는 “○○○할머니는 시동생하고 같이 살면서 일을 하고 있다. 밥도 혼자 다 해먹는다.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한다”면서도 “(조합원 자격이 되는지)확인을 해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장·주민이 말했다…“봉양엔 농사 안 짓는 조합원 있다”

봉양농협의 ‘무자격조합원’ 이야기는 경로당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봉양에 살지 않지만 조합원 신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

 

“나이 먹고 농사 그만둔 사람, 외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조합원 신분이)아까우니까 그냥 조합원인 사람들이 몇 명 있어요. 탈퇴하라고 강제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스스로 탈퇴의사를 밝혀야 하는지 글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네.”(봉양읍 ○○리 이장 B씨)

 

“땅만 사놓고 봉양에 한 번도 안 오는 사람들이 몇 명 있지요. 있지만 이장은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죠. 법적으로 조사를 하면 밝혀지겠지만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다른)이장들도 다 알고 있지만 저는 관여하고 싶지도 않아요.”(봉양읍 ○○리 이장 C씨)

 

봉양읍 구곡리에 거주하는 김남홍 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20여 년 전에 봉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이가 여전히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봉양을 떠난 지 20년도 더 된 사람이 있는데 봉양농협 조합원이에요.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은 탈퇴시켜야 하는데 봉양농협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봉양읍 주민 김남홍 씨는 봉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이가 조합장 선거에서 투표를 했다고 전했다./최현주 기자.

 

김남홍 씨는 “해당 지역에서 농사를 안 지으면 자동으로 조합원 자격상실이다. 농협에서 매년 조사를 해서 탈퇴처리를 해야 하는데 정리를 안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농협은 농업인 스스로 출자를 해서 설립한 것이고, 농사 지은 물건을 팔아 그 이익을 돌려받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농사를 짓지 않고 이익만 받아가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러한 무자격조합원이 조합장 선거에도 참여, 영향을 미쳤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장 C씨는 “땅만 사놓고 한번 오지도 않고 농사를 짓지도 않은 사람들이 선거 때만 되면 와서 선거를 해요. 뭐라고 할 수는 없죠”라고 말했다.

김남홍 씨도 “현 조합장과 인과관계가 있는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도 계속 조합원으로 있었어요. 선거 때만 와서 투표를 했죠”라고 전했다.

 

조합원 관리 주체는 해당 농협 이사회·조합장

그렇다면 조합원의 가입과 탈퇴를 관리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또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어떠한 ‘처벌’이 있는 것일까?

지역농업협동조합정관례(이하 농협정관례)에 따르면 지역농협 조합원 관리 주체는 해당 지역농협 이사회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농협정관례 제 11조 5항에 따르면 ‘조합의 이사회는 조합원의 전부 또는 일부를 대상으로 제2항(조합원 탈퇴 조건)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볍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또 농협정관례 49조 1호에는 이사회 의결사항은 ‘조합원의 자격심사 및 가입승낙’이라고 되어 있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이사회 총 책임자는 농협정관례 제48조 2항(이사회는 조합장을 포함한 이사로 구성하며, 조합장이 소집하고, 그 의장이 된다)에 따라 해당지역 농협 조합장이 된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또한 이사회가 그 책임(조합원 가입·탈퇴 관리)을 다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농업협동조합법 제164조(위법행위에 대한 행정처분)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해당농협에 대해 시정명령, 임직원에게 주의·경고 등 징계조치를 할 수 있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봉양농협측, “매년 마을 다니며 직접 관리”

무자격조합원과 관련, 봉양농협 측은 일 년에 한 번씩 조합원을 정리하고 있다며 서류가 갖춰지지 않으면 자격을 유지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또 “농협직원들이 매년 직접 마을을 다니면서 조사를 하고 있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관련 서류를 공개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봉양농협 감사 D씨도 “자격이 안 되는 조합원은 아마 없을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러면서도 “몇 십 년 째 조합원인 사람은 강제로 못 뺀다. 농사를 안지어도 강제로 뺄 수는 없다. 조합원 심사는 신규 회원들을 대상으로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사회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홍성주 조합장은 "매년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올해 말 실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홍 조합장은 "주민들이 (무자격조합원) 이야기하는 것은 남의 가정사, 등기상 토지보유 및 정보를 모르는 경우"라고 말했다. 

한편 김남홍 씨는 “봉양에 거주하지도 않는 이가 선거 때만 되면 일부러 와서 선거를 했다. 명백히 불법선거다. 현 홍성주 조합장이 30년 넘게 조합장을 할 수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는 지난 13일 제천시 봉양농협 앞에서 노조원 12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집회를 열고 홍성주 조합장을 규탄하며 퇴진을 요구했다./최현주 기자.
최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