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 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쉽게 풀어쓰면 “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을 일컬음이다. 청주시 청원군 통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실무지원단까지 구성, 맹활약(?)하고 있는 충북도에 던지고 싶은 말이다.
마침내 지난 29일 도청 통합실무지원단은 혁혁한 전과를 하나 올렸다. 통합 반대의‘본거지’라 할 수 있는 청원군의회에 실무지원단 직원이 찾아가 군의원들로부터 협조문을 받아냈다. 통합에 협조한다는 내용은 전혀 아니고 자신들의 통합반대 의견을 충북도만은 수렴해 잘 처리해 달라는 협조요청문이었다.
청원군의회의 반발은 이미 예견된 바 있지만, 2일전 군민 57%가 통합에 찬성한 여론조사 결과는 인정하지 않은 채 일부 의원들이 저급한 ‘패거리즘’적 반응을 고집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특히 이같은 패거리즘을 부추기는 장본인은 ‘절차와 법규’라는 양두(羊頭)를 내세워 ‘통합저지’라는 구육(狗肉)을 암거래하고 있는‘충북도’다.
▲ 청주·청원 하나되기 운동본부의 출범은 통합운동에 날개를 달았다. 사진은 5월 3일 발족식 장면. / 육성준 기자 충북도 행정부지사와 자치행정국장은 29일 직접 행정차지부를 방문해 통합 주민투표 건의시 지방의회 의견수렴이 ‘강제적 절차’에 준한다는 확인을 받았다. 아쉽게도(?) 도의회 의견수렴은 없어도 무방하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졌지만 충북도는 도의회내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비청주권 의원들을 상대로 반대여론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30일 청주청원하나되기운동본부는 ‘공무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의원들을 선동하는 작태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통합청주시를 최종 목적지로 정한 시군통합 열차는 이미 중간 기착지를 지나 힘차게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열차의 승객인 청주시민 90.4%, 청원군민 57.4%가 내년 지방선거전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충북도는 통합열차가 기착지의 휴식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며 운행하라고 다그치고 있다. 아울러 충북도가 계산한 기착지별 휴식시간을 합산한 결과 내년 지방선거전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못박고 나섰다.장자의 비유대로 '보라는 달은 안보고 가리키는 손가락 끝만 쳐다보며' 어깃장을 놓는 형국이다. 문제는 뭘 몰라서 손가락끝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본질을 외면하고 구실꺼리를 찾아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10년전 전국의 시군통합 과정에서 청주청원이 불발로 끝나자 지역의 여론주도층 인사들은 실망과 함께 우려감을 나타냈다. 예상대로 수년전부터 시군간 도시계획시설을 놓고 끊임없는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시군분쟁에서 과연 충북도가 조정중재 역할을 제대로한 성공사례가 있는지 묻고자 한다. 쓰레기매립장, 화장장, 소각장 등등 숱한 충돌사안 가운데 단언컨데 단 1건도 도가 성사시킨 사례는 없었다. 물론 충북도는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기초자치단체의 고유권한 사안에 대해 적극 개입하기 곤란하다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 오효진 청원군수(왼쪽)과 연영석 청주 부시장이 통합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육성준 기자
하지만 청주시장 청원군수가 예상을 뒤엎고 통합에 합의하고, 공신력있는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객관적인 찬반자료까지 확보된 시군통합에 대해서는 왜, 충북도가 개입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궁금하다. 사안의 중대성 때문인가? 10년전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위한 상위 조정기관의 역할을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겠다는 뜻인가? 행정자치부에 도 고위간부들이 직접 찾아가 담당직원들에게 법적책임 운운하며 '얼르고 추궁하는' 것이 조정역할인가?
지금 시군통합 열차는 확실한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마지노선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고, 빠듯한 시간표에 따라 달려가고 있다. 어디에 서고, 얼마나 머물러야 하는지를 따질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이는 누구보다도 충북도가 더 잘알고 있다. 만약 목적지가 잘못됐다면 지금이라도 열차를 멈추라고 제지할 수는 있다. 그렇지않다면 충북도는 시군과 함께 철로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 청주·청원 하나되기 운동본부의 통합 홍보전 모습. / 육성준 기자
상상하기 괴롭지만, 지금 가속페달을 밟고 질주하는 통합열차가 탈선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 책임은 기관사보다 열차를 향해 '손가락질만 한' 충북도가 뒤집어 쓸 공산이 크다. 그리고 그 열차는 우리 도민들의 힘으로 다시 일으켜세워 출발시키지 못할 것이다. 2010년 정부의 행정구조 개편이 성사된다면 다시금 중앙정부의 시나리오에 따라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정통 엘리트관료인 이원종 지사가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은 두가지 기억이 있다. 화재와 부실시공으로 무너진 청주 우암동 아파트와 서울 성수대교다. 청주시 청원군 통합이 이지사에게 3번째의 아픈 기억으로 남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