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제천서 '육삼정 의거' 85주년 기념식
일제강점기 중국 주재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암살 미수사건인 '육삼정(六三亭) 의거' 85주년 기념식이 17일 충북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 박달재 정상에서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제천 출신 독립운동가 이용태(1890~1966)·이용준(1907~1946) 선생과 충주 출신 류자명(1894~1985) 선생, 육삼정 의거 주역인 원심창(1906~1971·경기 평택)·백정기(1896~1934·전북 정읍)·이강훈(1903~2003·강원 철원) 선생, 연병호(1894~1963·증평) 선생의 후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리학효 민족문제연구소 제천지회장은 환영사에서 "85년 전 육삼정 의거가 모두에게 여전히 살아 있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했다.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축사에서 "의열투쟁은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지만, 우리의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을 세계 만방에 알렸고 해방으로 이어지게 했다"며 "독립운동의 법통을 계승한 우리는 독립운동과 의열투쟁에 나선 분들을 기억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장은 독립군사령관 지청천(1888~1957) 선생의 외손자다.
이어진 축사에서 이근규 제천시장은 "이번 85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육삼정 의거뿐만 아니라 제천지역, 우리나라의 많은 장엄했던 항일애국정신이 올곧게 세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1933년 3월17일 계획했던 육삼정 의거는 비록 일본의 한 밀정 때문에 실패했지만, 한국인과 중국인의 항일 의식에 영향을 줬다.
거사 실패 다음 날 중국의 신문들은 이 암살 계획을 대서특필했고, 중국 장제스(蔣介石·1887~1975) 주석과의 밀약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중국은 물론과 침체기의 국내 항일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잖았다.
일본 검찰은 육삼정 의거 주역인 원심창·백정기 선생과 이강훈 선생에게 각각 사형과 15년형을 구형했다.
정부는 1977년 이들 애국지사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육삼정 의거 현장에 직접 투입되지 않았지만, 이용준 선생은 정화암(1896~1981) 선생과 폭탄·권총을 입수했고, 류자명 선생 등과 함께 암살 계획을 준비했다.
이 육삼정 의거를 계획했던 인물들은 남화한인청년연맹(흑색공포단)의 아나키스트였다.
김미화 충북대 한국근현대사연구팀 사학연구원은 "육삼정 의거는 일제의 대륙침략 의도를 폭로해 한인들의 항일투쟁 의지를 고취했고 중국 민중의 항일의식에도 영향을 줘 항일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유도했다는 점에서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의미가 큰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류자명 선생이 결성한 한인 아나키스트 항일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육삼정 의거 주역과 함께 제천 출신 이용준 선생이 활동했다"며 육삼정 의거의 주역인 백정기·원심창·이강훈 선생의 고향이 아닌 제천에서 기념식이 열린 배경을 설명했다.
행사가 열린 박달재 정상에는 이용태·이용준 선생의 흉상과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