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일까 … 악어의 눈물일까

청주시, 쪼개기 없애고 업체당 수의계약 연간 5건 이내 제한
총리실 암행감찰 계기 전국 최초로 ‘수의계약상한제’ 시행

2015-07-14     김남균 기자

청주시가 탈 많은 수의계약 비위를 차단하기 위해 파격적인 카드를 꺼냈다. 카드의 핵심은 ‘수의계약 상한제’, 한 업체당 연간 계약건수를 5개 이하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청주시는 수의계약상한제와 더불어 ‘통합계약제도’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쪼깨기에 이은 수의계약 남발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수의계약상한제라는 제도 명칭 자체가 신조어다. 다른 지자체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는 곳이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그동안 청주시는 끊이지 않고 계속 터지는 공직비리에 속앓이가 심했다. 일단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파격의 세기 만큼 넘어야할 골도 깊다.

당장 옛 청원군 읍면 지역에 있는 업체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간 30~40건의 용역을 수의계약으로 차지했던 터줏대감 업체들도 불만이 많다.

수의계약상한제라는 제도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배경과 실태를 살펴본다.

▲ 지난 6월 청주시 간부 공무원이 수의계약을 집중 배정받은 업체관계자로부터 유흥주점에서 접대를 받다 국무총리실 암행감찰팀에 적발돼 물의를 빚었다.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계 없음)

“지갑에 항상 5만원권 지폐 30장을 넣고 다닌다.” 공공기관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K씨는 지갑에 현금이 있어야 마음이 안정된다. 그는 지인에게 “언제 약속이 잡힐지도 모르고 미리 약속이 없어도 호출하는 공무원들과 술자리를 대비해 이 정도 금액은 항상 가지고 다녀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K씨는 술자리를 가지면 공무원에게 ‘용돈’을 준다. 그렇다고 그가 무작정 용돈을 주지는 않는다. 그는 상대가 수의계약을 주는 규모에 따라 20만원, 30만원, 50만원으로 등급을 매겨 놓는다.

K씨의 사례가 다소 과장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현실을 놓고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지난 달 6일 국무총리실 암행감찰팀(이하 암행감찰팀)은 오송·오창·내수읍 등 청주시 3개 읍사무소를 방문해 주민숙원사업비 지출내역 등을 압수해 갔다.

암행감찰팀은 청주시가 현도면에 재배정한 공사사업과정에서 공무원이 부당하게 개입해 특정업체에 특혜를 주었다는 제보를 받고 청주로 내려왔다. 이들은 감찰과정에서 청주시 사무관급 간부가 공사업주로부터 유흥주점에서 접대를 받는 것을 현장에서 적발했다. 다른 사무관의 집기에서는 출처 불명의 양주가 적발됐다. 암행감찰팀은 간부공무원의 계좌에서 수상한 금전거래 내역도 발견했다.


읍‧면지역 100억원 수의계약

이에 연루된 업체는 공교롭게도 해당 읍면으로부터 수의계약을 통해 공사를 집중 배정받았다. 이에 따라 총리실 감찰팀은 해당 읍면을 방문해 관련서류를 압수해간 것이다.

암행감찰팀의 타겟이 된 것은 주민숙원사업비였다. 청주시는 마을안길포장이나 농‧배수로 설치, 소규모 농로 포장 공사등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각 읍‧면 마다 연간 3억원에서 5억원 사이에 주민숙원사업비 예산을 배정했다.

오송읍 등 청주시 관내 12개 읍‧면 사무소의 주민숙원사업비만 연간 50억원대에 이른다. 이외에도 청주시는 재배정사업을 통해 읍‧면 지역에서 공사를 발주하고 관리하게 한다. 이런 재배정 사업 규모도 연간 50억원이 된다. 두 사업만 해도 연간 100억원 정도로 모두 읍‧면 사무소를 통해 집행된다.

주민숙원사업과 재배정 사업은 입찰을 거치지 않고 수의계약을 통해 업체에 배분됐다. 12개 읍‧면이 발주한 305여개 공사 중 296건의 공사가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

읍‧면 사무소가 수의계약을 통해 집행한 공사는 특정 업체에 집중됐다. 옥산면은 수의계약한 21건의 공사 중 18건을 4개 업체에 몰아줬다. 낭성면은 28개 계약 중 5개 업체가 24건을 수주했다. 북이면도 4개업체가 14건의 공사 중 12건을 수주했다. 강내면에서는 41건 공사중 한 업체가 9건을 수주했다.

남일면에서는 29건의 수의계약 공사 중 10건을 한 업체가 맡았다. 이 업체는 올해 3월 3일에만 배수로 정비공사 2건과 마을 안길 포장 공사 3건을 수주했다. 공사금액은 2400여만원으로 금액만으론 수의계약을 할수 없다.

2000만원이 초과하면 1인 수의계약을 할수 없는 점을 노려 일부러 공사를 쪼갠 흔적도 나타났다.

낭성면에서는 3월 9일부터 10일 사이에 한 업체가 농로포장공사 3건, 4258만원의 공사를 수주했다. 강내면에서는 수의계약 공사를 가장 많이 수주한 한 업체는 2월 27일 하루에만 3건 합 2460만원의 공사를 수주했다.

가덕면에서는 3월 23일부터 30일 까지 일주일 사이에 한 업체가 3건 3800여만원의 공사를 수주했다. 특정 업체에 공사를 몰아주기 위해 일부러 2000만원 이하 공사 여러 건으로 분리한 것으로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청주시, 수의계약 몰아주기 근절책 발표

시민단체는 환영…옛 읍‧면 지역 업체는 반발

청주시가 계약과정에서 발생하는 부패를 차단하기 위해 ‘수의계약 상한제’와 ‘통합계약제도’를 시행한다. 관내 읍면에서 수의계약 몰아주기를 통해 향응을 제공받다 감찰기관에 적발되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청주시가 고육지책을 내놨다.

지난 10일 청주시는 “최근 중앙감찰기관 감찰 결과 특정 업체에 수의계약으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지적됨에 따라 논란이 되는 수의계약제도를 대폭 개선한다”고 밝혔다.

청주시는 우선 수의계약제도 세부절차를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시는 앞으로 공사‧용역 등 세출 예산서에 부기 명이 분리되어 있어도 공종이 유사하고 현장이 가까운 사업을 합쳐서 발주하는 ‘통합계약제도’를 운영해 공사 쪼개기도 막을 예정이다.

회계 관서별 업체당 1천만원 이상 수의계약을 연간 5건 이하로 제한하는 ‘수의계약 상한제’를 시행한다.

학술연구용역 계약심의 제안방법 개선, 공사용 자재 관내 업체 제품 우선 구매, 특허‧신기술공법 집행절차 개선, 관내 업체 생산품 구매촉진 장려, 여성기업 또는 장애인기업 우대 등 계약업무의 다양한 개선방안을 담겠다고 발표했다.

청주시가 추진하는 수의계약상한제에 대한 업계의 반발도 예상된다. 당장 수의계약을 통해 연간 10~30건의 공사를 수주했던 업체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읍면지역의 경우 3~4개 업체가 관에서 나오는 농로나 배수로, 마을안길 정비사업 만으로 사업을 운영한 곳도 있다. 모 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이 공사만으로 살아왔는데 경쟁입찰을 하면 청주 대형업체가 싹쓸이 할 것”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반면 시민단체는 일단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이선영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사후약방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시도 자체는 참신하다. 아직 시행효과가 나온 것이 아니지만 실행과정에서 효과가 나올수 있도록 제대로 신경을 써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