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에 서로 존댓말을 쓰자

시내버스 속 세상/ 신중호 우진교통 운전기사

2015-06-04     충청리뷰

벚꽃나무가 하얀 꽃비를 뿌리고 개나리가 늘어진 가지위에 노란 꽃을 활짝 피우며 봄이 왔다고 어서들 나오라고 재촉하던 봄날. 꽃보다 예쁜 노부부를 보았다. 승강장에는 꽃구경 나온 승객들이 분주했다. 승객들 사이로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양복에 중절모까지 챙겨 쓰셨고 할머니는 울긋불긋 예쁜 꽃무늬 원피스에 화장기 어린 얼굴이었다. 아마도 나들이 나온다고 예쁘게 단장했나 보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서있는 모습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는 노부부 앞에 차를 세우고 앞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앞세우고 “조심해서 올라가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뒤를 돌아보며 “당신도 얼른와요” 이러는 것이 아닌가. 언뜻봐도 70대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저 연세에 서로 높임말을 사용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할머니는 노환도 있겠지만 몸이 불편해 보였다. “천천히 조심히 올라오세요.” 이번에도 내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뒤를 돌아보며 할아버지가 잘 오는지 관찰하듯 바라보셨다. 이 모습을 보고 맨 앞자리에 있던 학생이 자리를 양보해 할머니는 맨 앞자리에 무사히 자리를 잡으셨다.

“여보 밖에 나오니까 좋아요?” “네 좋네요...” “꽃이 참 예쁘죠?” “네 참 예쁘네요.” “어때요 나오길 잘 했죠?”하자 할머니는 미소로 답을 하신다. 서로 말을 높여 대화를 하는 것이 적응이 안돼서 운전을 하면서도 귀는 자꾸 옆으로 향했다. “모처럼 나왔으니까 맛난거 뭐 먹을까요? 고기 먹을까요?” “당신은 고기 잘 안 드시잖아요. 당신 좋아하는 거 먹어요. 난 아무거나 괜찮아요.” “매번 나 좋아하는 것만 먹으니까 오늘은 당신 먹고 싶은 걸로 해요”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이번에도 미소로 답을 한다. 연세가 많이 들었는데도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사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결혼하며 아니 연애시절부터 말이 편해야 빨리 친해진다고 아내에게 자연스레 말을 놓았고, 결혼 후엔 대부분 아내가 양보를 하며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나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렇게 살 것이다.

오히려 중년쯤 된 남녀가 손을 꼭 붙들고 다니며 서로 말을 높여 대화를 한다면 사람들은 “불륜일거야” 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너나 할 것 없이 편함을 추구하다보니 높임말 보다는 반말을, 상대방 보다는 내 생각에 치우치는 것은 이 사회가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한 장면.

얼마 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는 다큐영화가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두 내외분이 시골에서 살며 아기자기 연애하듯 물장난도 하고 눈싸움도 하며 사시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마지막 부분에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묘 앞에서 서럽게 우시던 할머니 모습도 아른 거린다.

핵가족시대를 추구하다보니 많지 않은 자식들이 출가해서 떨어지게 되면 자연스레 부부가 서로 의지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노부부를 보며 아직 생존해 계신 부모님 생각도 나고, 늘 나에게 양보하며 사는 아내 생각도 나고,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는 아이들도 생각난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부부간에 말다툼이 생기면 존댓말을 하세요. 그러면 싸움이 생기지 않아요.” TV상담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난다.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아내와 사소한 말다툼이 일어나면 양보도 하고 가끔 말도 높여봐야겠다. 많이 어색 하겠지? 말을 높이면 아내가 놀리느냐고 더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