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했던 우리말사전 편찬작업을 집중 조명한 최경봉의 <우리말의 탄생>

박순원
시인·<딩아돌하> 편집위원

“이 책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선각자인 유길준, 박은식, 신채호 선생께 바친다. 언어를 바꾸는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그들은 한문을 통해 학문적 교양을 쌓았지만, 자신들의 언어적 기득권을 포기한 채 한글로 새로운 문학의 길을 열었다.” 김영민 선생님의 <한국근대소설사> 책머리에 있는 글이다. 이어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은 해외 유학생이 아니라, 전통적인 한학 교육을 받은 개화기의 선각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계몽적 민족주의자였다. 그들은 한문 수업을 통해 학문적 교양을 쌓았지만, 새로운 세계에서 중요한 문자는 한문이 아니라 한글이라는 사실을 남보다 먼저 깨달은 이들이기도 했다. 그들이 전통적 한학 교육을 통해 익혔던 글쓰기 방식을 근대적 문화 매체인 신문의 논설과 접합시키면서 한국 근대 문학은 싹트기 시작한다. 그들이 지닌 새로운 문자 의식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학을 탄생시키는 획기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대학원에서 한 학기 김영민 선생님 과목을 수강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공부한 부분이다.

한글맞춤법통일안은 1933년 즉 일제강점기에 완성되었다.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님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자기 민족의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고 맞춤법통일안을 완성한 사례는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또 뒤집어 생각하면 자기 민족의 맞춤법통일안을 완성할 정도의 문화적 역량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 왜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세계사의 미스터리하고 했다.

우리가 우리말과 우리글로 학문과 문학을 하고 생활을 영위하는 이 당연한 현실은 선각자들의 혜안과 고투가 바탕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고투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우리말사전 편찬 작업이었다. <우리말의 탄생>은 그 고투의 과정 즉, 우리말 사전이 만들어지기까지 50년 동안의 길고 험난했던 전 과정을 최초로 집중 조명한 책이다.

우리말사전 탄생과정 최초 조명

▲ 제목: 우리말의 탄생 지은이: 최경봉 출판사: 책과함께
저자는 책 제목 ‘우리말의 탄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규범화의 결정체인 사전의 탄생과 함께 근대적 개념의 우리말이 정립되었다는 관점에서 이 책에는 ‘우리말의 탄생’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이 붙었다. 이 파격은 사전의 의의에 대한 과도한 해석의 결과라기보다는 사전의 의의와 역할을 강조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현재적 혹은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파격은 ‘탄생’에 있지만, 궁극적 의도는 ‘우리말’에 있다. ‘우리말’은 근대 민족어의 특성을 드러내는 말이면서 동시에 ‘한국어’가 함의할 수 없는 우리 민족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이 책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 책은 우리말 사전의 탄생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사전을 편찬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독자들은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데 뛰어들었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우리말 사전의 탄생 과정을 지켜봤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말 사전의 탄생이 곧 우리말과 글의 탄생이었음을, 그리고 우리말 사전이 탄생했던 시기가 근대 민족 국가가 탄생하고 재건되던 시기였음을 증언할 것이다.”

일제는 우리말 연구를 탄압하기도 했고, 묵인하기도 했다. 우리 사전 편찬자들은 저항하기도 했고, 타협하기도 했다. 우리 사전 편찬자들은 지혜롭게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민족사적 과업을 수행해나갔다. 그들은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었고, 우리말과 한문은 물론 대부분 일본어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 분들은 사전 편찬이라는 험난한 외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어떤 고초도 겪지 않으면서도 이름을 얻고 다른 업적을 남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공기처럼 물처럼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우리말이 새삼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또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 지식인들은 그 분들보다 더 행복한가? 더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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