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의 숨겨진 역사 기록 <천당허고 지옥이 그 만큼 칭하가 날라나?>

김수정
성공회대 NGO 대학원 실천여성학과 재학

구술사를 통해 세 분 할머니의 생애사를 최현숙은 담담이 기워 조각보를 만들어냈다. 그 조각보에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교차하고 있다. 일제와 6·25, 산업화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낸 여성들의 역정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최현숙은 사회운동을 한 사람이면서 현재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할머니들을 방문하면서 관계 속에서 삶의 노정을 듣게 됐고, 그 심상치 않은 삶의 역정을 수다 수준을 넘어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라는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앞에 내놓았다.

15소녀 표류기라는 기획아래 ‘열다섯 웃는 여자들의 시시콜콜한 수다로 다시 읽는 한국 현대사’를 써내려가는 시리즈물의 첫 권에 해당하는 이 책은 김미숙(89), 김복례(87) 안완철(81) 할머니의 생애 구술사다. 그녀들이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빈곤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삶을 지탱해 낸 굳건한 생명력이 오롯이 살아 숨 쉬고 있어 책을 덮는 나를 느껍게 만든다.

여성주의 구술사는 “가부장제 탓에 왜곡되고 사소하다고 무시당해온 여성들의 젠더 경험의 주관적 실재를 언어화하는 기본적인 도구”이자, “실제적인 생애 경험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여성이 처한 사회적 관계의 맥락에서 젠더 주체로서 갖는 위치에 관한 여성주의적 해석”이다.

이 여성주의적 해석은 구술사라는 방법을 빌어 숨겨져서 드러나지 않은 여성들의 역사를 햇빛 아래 드러내 주는 기제다. “열구루마로도 안될” 그녀들의 이야기는 역사와 시대상황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현대사를 삶이라는 절대 절명의 과제로 헤쳐 낸 주체들의 삶을 녹여내고 있다.

▲ 제목: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지은이: 최현숙 출판사: 이매진
이 책의 주인공은 80대 여성 3인이다. 미군부대 근처 댄서로 일하다가 수없이 낙태한 김미숙씨, 일본군 강제위안부 징용을 피해 한 남자와 동거하다가 매독이 옮는 바람에 안면 장애를 얻은 김복례씨, 양반집 출신이지만 가정 폭력 등 온갖 시련을 겪은 안완철씨(지은이 최현숙의 어머니)의 이야기다.

김미숙 씨 “내가 왜 회개를 해야 돼?”

안완철은 하루아침에 뒤바뀌어버린 자신의 신세를 떠올리며 몇 번이고 회고했다. 그녀들은 한 번도 노동이라 불리지 못한 노동을 했고, 가부장제에서 가장으로 뼈 빠지게 살아왔다. 그녀들의 역사는 전통적으로 강요된 순응의 역사가 아니었다. 때로는 맞섰고, 때로는 협상하는 삶의 전략들을 세워야했다. 결코 우리의 역사는 여성들을 순종하며 살 수 없게 만들었음을 그녀들의 구술은 날 것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옥 속에서도 천당을 보는 그녀들의 생존력, 놀랍다.

아들내외가 목사인 김미숙 씨에게 아들은 귓속말로 “미군부대서 몸 함부로 굴린 거랑 낙태 많이 한 거 회개하라”고 속삭였다. 이에 맞선 할머니의 일갈.

“지랄을 하고 자빠졌어. 다른 회개라면 할 거 많아. 난 그 회개는 안 나와. 여자 혼자 벌어먹고 사느라 한 일인데 내가 도둑질을 했어, 살인을 했어? 그리고 그렇게 임신한 거 다 낳았어봐. 그걸 누가 책임지고 키울 거야? 어린것들이 손가락질 당해서 학교도 못 다니고 직장도 못 다니고. 나 하나로 끝나면 될 걸 왜 애까지 낳아서 그 설움을 또 만드냐고? 그걸 회개하라니 말이 돼? 그리고 저 목사 만든 돈이 어디서 나온 건데? 저 목사 된 게 내가 양키 물건 장사하고 미군이랑 살림해서 번 돈인데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그 돈으로 공부해서 목사 된 지가 할 소리냐? 회개를 하려면 에미가 뼈가 빠지게 고생한 돈 갖다 쓰기만 한 거를 회개를 하든가 해야지. 근데 왜 회개를 내가 해? 그 소리 듣기 싫어서 거기가 지옥이야. 지네들 하나님은 어떤가 몰라도 내 하나님은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있는 하느님이야. 창녀와 세리와 죄인들을 위해 오신 예수님.”

“우리 어머니에게 회개의 은혜를 내려주십사”하는 그 아들의 기도, 참 지랄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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