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그림: 옆꾸리


왕은 궁궐로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月城)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물 때는 비가 내리고, 장마 때는 비가 그치고,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졌으므로 국보로 삼아 일컬었다.
<삼국유사 기이 제2 만파식적 중에서>

대통령이 창조를 말하니 탄소 기타를 만들어 전주(全州)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전시했는데, 이 기타를 치면 여론이 잠잠하고, 평이 좋고, 선거 때는 표가 몰리고, 실정 때는 비난이 멎고, 반발이 그치고, 파장이 잠잠하리라 믿고 있으니 ‘이미지정치’라.

신라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피리가 있었단다. 왕이 불면 세상사 모든 파고를 잠재우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고 한다. 현대 정치판에는 ‘만파식척’이 있다. ‘만파식(萬波息)’은 같은 뜻이지만 ‘척’은 시늉을 뜻하는 의존명사다. 서민을 위하고, 경제를 걱정하고, 안보에 철저한 척한다는 표현에 쓰이는 그 척이다.

시장에 가면 안 먹던 떡볶이를 먹고, 평소에는 안 읽던 책을 읽고, 전방부대에선 군복을 입는 등 이미지정치로 자신을 포장한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24일 전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탄소소재로 만든 기타를 치는 척했고, 어색한 웃음과 포즈는 사진기사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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