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얘기로 중국현대사를 조명한 위화의 <인생>

김주란
청주시립서원도서관 사서

위화를 처음 만난 것은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서였다. 삶의 고통이라는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농담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글을 잘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위화의 <인생>에서 그의 글은 더욱 유연해졌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더욱 깊어졌음을 느낀다.

▲ 제목: 인생지은이: 위화옮긴이: 백원담 출판사: 푸른숲
<인생>은 ‘살아간다는 것’(1997)이라는 제목으로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던 책의 개정판이다. 또한 이 소설은 장예모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 여러 차례 국제영화제 수상이라는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소설에서 작가는 사회상황과 역사적 사건을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고, 푸구이로 대표되는 개인의 심리적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독자는 중국이 중원의 강국이라는 지위를 잃고 겪는 질곡의 역사를 ‘복이 많고, 귀하신 몸’이라는 뜻의 주인공 푸구이가 부를 상실하고 가난과 불운을 겪는 개인사를 통해 투영하고 있다는 것을 읽지 않을 수는 없다. 소설적 상황으로 재현된 중국현대사를 중국민의 삶의 입지에서 이처럼 투명하게 표현한 작품 또한 드물 것이다.

주인공 푸구이는 스스로 ‘집안을 말아먹은 놈’이라 말하듯 도박과 여자를 즐겨 모든 재산을 탕진해버리는데 과거 자신 땅의 소작농이 되어 먹고 살아가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또 국공내전 속에서 어이없게 군대에 끌려가 헛된 시절을 보내고, 돌아오지만 그도 잠시 대약진 운동으로 토지개혁 때 받은 작은 땅을 다시 인민공사에 몰수당하고 계속된 자연재해로 살인적인 식량난을 겪으며 모질고 척박한 삶을 살아간다. 그 와중에 자식 둘이 안타깝게 죽고 병약한 아내와 손자, 사위까지 가족 모두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고 결국 홀로 남게 된다.

작가는 이 모든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고구마 한 개 때문에 동네사람과 낫까지 들고 싸우는 장면, 아내 자전이 친정집에서 얻어온 쌀로 석 달 만에 쑨 죽을 몰래 먹는 장면, 구르병에 걸린 아내가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 외손자 쿠건이 오랫동안 굶주리다 갑작스레 먹은 콩에 체해 죽는 장면 등을 그대로 보여줄 뿐 구절구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행간에서 슬프다고 말하지 않는 슬픔의 전달이 얼마나 진한 아픔인지 느끼게 된다.

작가는 서문에서 “나의 모든 노력은 더욱 더 진실에 다가가려는 것이다, 예술가는 마땅히 사람들로 하여금 허위 속의 진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처럼 작가는 커다란 대의명분이 아닌 개인의 현실적인 이야기와 담담한 객관적 서술로 독자가 스스로 어떤 진실에 닿을 수 있도록 독자의 몫을 남기고 있다.

운명과의 우정

푸구이는 삶의 과정에 겪는 모든 상실들을 거부하지 않고 전적으로 수용하고 나아가 긍정한다. 자기 손으로 먼저 가족들을 다 땅에 파고 묻어주었으니 이제 비로소 발을 뻗고 누워도 아무 걱정이 없어 다행스럽다고 말하기도 하고, 남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도살 직전에 놓였던 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소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그것은 푸구이가 자기 삶의 깊은 상처와 상실의 아픔을 통해서 넒은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것은 작가 위화가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우정이라고 했던 ‘운명과의 우정’을 그려내려는 것이기도 하다. ‘운명과의 우정’ 그것이 소설 <인생>이 보여주는 가장 큰 경지일 것이다. 작가 위화는 말한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노인과 소는 천천히 멀어져간다. 나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노인의 거칠게 쉰 목소리가 멀리서 전해져 오는 것을 듣는다. 그의 노래는 광활한 저녁 무렵 바람처럼 나부낀다. 밥 짓는 연기가 농가의 굴뚝 위로 아물아물 피어올라 노을 빛 가득한 하늘로 흩어져 버린다. 여인이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고, 한 남자가 똥통을 메고 줄곧 멜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앞으로 지나간다. 천천히 들판은 고요속에 잠기고, 사방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노을빛도 사라져갔다. 나는 이제 곧 황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검은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걸 안다. 그리고 광활한 대지가 튼실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은 부름의 자세다. 여인이 자기 아들딸을 부르듯이 대지가 어두운 밤을 부르듯이’

푸구이가 소를 끌고 사라져가는 이 마지막 대목에서 인간과 자연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열린 공간, 생명의 근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 한 평생 고난을 겪고 가족들이 모두 먼저 떠나가 버렸지만 여전히 세상을 우호적으로 대하고 한마디 원망의 말도 하지 않는 담담한 모습. 작가 위화는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미국 민요 ‘올드 블랙 조우’ 속의 노인을 절묘하게 살려내고 있다.

물론 평범한 주인공의 삶을 너무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운명과의 조우라는 덕목이 너무 개인적인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깊은 연민의 정이라는 화두로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모든 것은 너무나 개별적인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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