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이야기꾼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

김주란
청주시립 서원도서관 사서

지난 봄부터 여름까지 도서관 서가에 꽂힐 새 없이 인기를 끌던 <미 비포 유(Me Before You)>라는 책을 발견했다. 앞 표지에 ‘그가 이별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사랑에 빠졌다’는 다소 신파적인 카피문구와 뒷 표지에 읽기 위해 티슈 한 상자가 필요하다는 경고에 실소를 머금으며, 베스트셀러에 대한 강한 경계심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어느새 무장해제 되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단숨에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실로 이런 강렬한 몰입은 아주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작가 조조 모예스는 상당량을 위트 넘치는 대화체 문장으로 구성하여 작품에 생생함을 불어넣고 있는데 물 흐르는 듯 유연한 필체는 그녀가 희대의 이야기꾼임을 증명했다.

오만하리만큼 잘났지만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환자가 된 젊은 사업가, 윌 트레이너. 그는 자살을 시도하고, 안락사를 꿈꾼다. 가족들은 그런 그를 감시하기 위해 간병인을 채용하는데 독특한 패션 감각을 지닌 엉뚱하고 순진한 여자, 루이자 클라크가 그 주인공이다.

끊임없이 까칠한 남자 윌에게 익숙해질 무렵 루이자는 6개월간의 시간만을 남기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되고 그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노력하면서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이성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소설이다. 하지만 뻔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책을 덮으면서 사랑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에 대한 상념에 필연적으로 젖어들게 된다.

사랑

▲ 제목: 한글로의 여행 지은이: 이바라기 노리코 옮긴이: 박선영 옮김출판사: 뜨인돌
사랑은 현대인에게 너무나 흔한 이야기지만 현대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이 이처럼 지상목표로 확대된 시대도 없었지만, 이처럼 평가절하 된적도 없지 않을까? 에리히 프롬이 지적하는 것처럼 현대사회는 시장의 교환원칙에 지배받고 있고 인간의 가치도 결국 경제적 교환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소설에서 남자주인공 윌 트레이너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루이자가 스스로의 내면적 가치를 발견하도록 그녀를 성장시키고, 세상으로 나 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수준 높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사랑은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한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는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작가는 <미 비포 유> 라는 제목의 의미를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 라고 설명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성숙하게 변모하는 루이자, 어둡고 우울한 삶의 마무리를 그녀로 인해 밝고 편안하게 마치는 윌, 두 사람의 변화를 이르는 제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루이자를 사랑하면서도 죽음을 선택하는 윌의 모습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본 듯하다. 성숙한 사랑은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역설이 그의 태도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죽음

이 소설은 안락사라는 매우 민감한 21세기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 안락사는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에 1년 넘게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김 모 할머니의 자녀가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처음으로 연명치료중단이라는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했던 판례가 있었고, 당시 큰 사회적인 이슈와 파장을 불러왔다.

윌은 루이자로 인해 삶의 방향이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그런 선택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들 각자의 삶은 어쩔 수 없이 개별적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타자의 삶에 근본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자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윌 트레이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은 그의 삶이 끝이 아니라 완성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담담한 태도는 그가 참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그 모습은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죽음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조조 모예스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린 <미 비포 유>의 인기는 아직도 뜨겁다. 현재 세계 34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각국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바꾸고 있으며 곧 영화로도 제작 될 것이라고 한다. 로맨스 특유의 재미와 가벼운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토록 감동적이고 울림을 주는 책은 만나보기 쉽지 않다.

이 책은 우리의 삶에 대해, 인간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준다. 사랑에 메말랐든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든, 평생 사랑과 죽음의 무게 따위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이들이라 하더라도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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