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인이 본 한글·한국문화·한국인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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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인이 본 한글·한국문화·한국인은 어떨까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10.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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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여성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
박순원 시인
<딩아돌하> 편집위원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 2006)는 일본의 여성 시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폭넓은 사회의식과 건전한 비평정신을 보여준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통해 그녀를 알게 되었다. 공선옥이 자신의 소설 표제로 삼아 우리에게 제목으로나마 익숙한 시이다. 이 시는 전후 일본인들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시니컬한 문체로 펼쳐보이고 있다.

아쉽게도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집이 국내에 번역 출판되지 않아서 인터넷에 떠도는 번역을 통해 그녀의 시집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일본어과 학생(?)들이 숙제 때문에 다급하게 요청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올라온 글들이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외에 <자기 감수성 정도는> <기대지 말고> <눈> <유월> 등의 시편들을 그렇게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이바라기 노리코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번역해 올려주신 마음 따뜻한 역자들께 감사드린다.

나의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바라기 노리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그녀가 한글을 공부했으며, 그 결과 <한글로의 여행>을 출간하였고,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장 구입하였다. 물론 인터넷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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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한글로의 여행 지은이: 이바라기 노리코 옮긴이: 박선영 옮김출판사: 뜨인돌
한글로의 여행>은 그녀가 한글을 공부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서 출발한다. 영어나 불어를 공부하고 있다면 운전을 배우는 것처럼 당연시하지만,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그녀에게 다들 “왜 하필 한국말을……?”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동기를 궁금해 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하다. “이웃 나라 말이잖아요.” 그러나 이 무난한 대답에도 모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이웃 나라 말’ 그것은 남도 북도 모두 포한한 ‘한글’이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한글을 통해 접한 우리 문화와 풍속을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낸다. 모음에 달린 막대기가 하나인가 둘인가, 오른쪽을 보고 있는가 왼쪽을 보고 있는가, 위로 튀어나왔나 아래로 튀어나왔나, 그 작은 차이 하나로 발음도 의미도 완전히 달라지는 한글의 매력과 그렇게 때문에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은 저력에 감탄한다.

우리나라 재미있는 속담도 소개

한국어와 일본어를 비교하고 있는 대목도 무척 흥미롭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모국어의 특징을 확실히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치 그때까지 떨어지지 못하고 부모에게 딱 붙어 있던 자식이 어느 날,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오히려 <한글로의 여행>을 통해 우리말과 한글의 객관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바라기 노리코가 호들갑을 떨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두 언어의 차이점을 담담하게 드러낼 뿐이다. ‘일본어는 명사의 천국, 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천국’이라는 것을 자료를 통해서만 사실만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언어학, 문화인류학 등 또 다른 전문가의 몫이 될 터이다.

우리의 속담도 소개되고 있다. <속담사전>을 뒤적이다 보면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표현에 푹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어에는 ‘멋’이라는 말에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가 없다. 마그마같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멋’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고 싶지만, 한국어의 ‘멋’을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있는 게 바로 속담인 아닌가 싶다”고 말하면서, 일본 속담에 비해 표현력이 한결 탁월하다고 한다. 이외에도 그녀가 한국을 여행하면서 마주한 풍경과 인물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나타난다.

‘비운의 청년 시인, 윤동주’는 잘 아는 오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다사로움이 느껴진다. 「아우의 인상화」에 나타난 동주의 동생, 윤일주 교수를 만난 에피소드에서 시구절과 인물을 겹쳐놓는 부분은 너무나도 애틋하다. “어찌 되었든 윤동주, 일주 형제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최근 들어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다. 이것도 한글을 배워 가는 길, 그 도중의 일이다.” 시인답게, 살뜰하게 기쁨을 누린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후기에서 저작 과정이 “나 자신의 즐거움에서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고통으로 가득 찬 일이 되었다. 과거의 역사가 나를 무겁게 짓눌러 언어만으로 한정지으려 해도 그리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라고 고백한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쉽지 않은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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