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위 가진 지도교수 아래서 도제식 수련이 ‘전통’
욕하고 발로 차고 주먹 휘둘러도 ‘인권침해’ 인식 없어

충북대병원 수련의 근무지 이탈 사건
전공의,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수술 도중에 교수가 레지던트에게 욕을 하거나 하는 일이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발로 차는 경우도 있고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지만 인권을 침해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의사들의 행태를 가까이에서 본 한 간호사의 말이다.

▲ 수련 과정이라는 명목아래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의 의료인들이 가혹한 근무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이들은 시급 5885원을 받고 주당 100시간 넘게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대학교병원 수련의 자살 사건을 두고 개인적인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의료계의 권위적인 풍습과 연관된 것이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8일 충북대학교병원 레지던트 1년 과정의 이 모 씨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을 조사한 청주흥덕경찰서는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이 씨의 개인적인 선택으로 보고 사건을 마무리 했다. 흥덕경찰서는 이 씨가 유서를 남겼지만 개인적인 신병을 비관하는 내용일 뿐 다른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

숨진 이 씨의 지인들도 “사망 당일 까지도 웃으며 이야기 할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고인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족들도 고인의 죽음에 대해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아예 무시

반면 병원 직원들 사이에선 “이 씨가 숨지기 3일전 지도교수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모종의 연관성이 있지 않겠냐는 소문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충북대병원 모 교수는 “이 씨가 소속한 해당 과는 응급과 병동 근무 등이 없는 부서로 다른 과 수련의의 근무조건에 비해 현저히 좋다”며 “수련의 과정 때 겪는 과도한 근무나 근무조건과는 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흥덕경찰서의 조사 결과처럼 현재까지는 이 씨의 사망이 개인적인 선택일 뿐 다른 외부적 조건이 관련될 가능성을 적어 보인다. 하지만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전공의 수련과정의 가혹한 근무조건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201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주당 평균 100.3 시간을 근무한다. 주 5일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20시간 넘게 근무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더 가혹했다. 지역 한 수련의는 “주 5일 근무는 그림의 떡이다. 쉬는 날 없이 거의 병원에 붙어 산다”고 말했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인술을 가르킨다는 이름 아래 지도교수와 수련의 사이에 광범위한 폭력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도내 한 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지도 교수가 수련의에게 욕을 하는 것은 다반사다. 심할 경우 발로 차거나 주먹이 나오는 것도 생소한 일은 아니다”라며 목격담을 밝혔다.

그렇지만 이러한 폭력에 대해 의료계에선 폭력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행이라며 묵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격담을 밝힌 간호사도 “행위 하나 하나에 따라 사람 생명이 좌지우지 된다”며 “실수를 한 수련의에 대해 지도교수가 그 정도의 훈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직 때문에…” 투표권 행사도 못 해

24시간 병원에 매어 있는 전공의들은 국민의 기본권인 투표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전공의들의 선거권을 확보하기 위해 나섰다. 지난 5월 22일 전국 수련병원 교육수련부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4.6.4.) 전공의 선거 참여 독려 및 협조 요청의 건> 공문을 발송해 “전공의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 및 선거 참여 독려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지난 4월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실시한 2014 전공의 수련환경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700명 중 42.0%가 이번 지방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않을 것이라 응답했다. 그 중 73.2%가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지난 18대 대선에 대한 질문에서도 36.3%가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않은 것으로 나타났났다.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중 64.4%가 당직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장성인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지방선거 당시 일선 병원의 전공으로부터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병원에 협조를 부탁하는 민원이 들어왔다”며 “병원을 비롯해 모든 수련병원에 소속 전공의가 투표권을 행사 할 수 있게 협조를 부탁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실효성은 없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허울… 전공의 시급은 5885원
2013년 기준 내과 2년차 최저 2800만원, 최고 5600만원
충북대병원, 63개 대학중 43위 … 최고는 서울삼성병원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발표한 2012년 기준 전국 내과 2년차 연봉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저 연봉은 서울은평병원으로 약 2800만원, 최고는 삼성서울병원 약 5600만원으로 두 배의 차이를 보였다. 충북대학교 병원은 3779만원으로 63개 대학중 43위를 기록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최고와 최저연봉 차이가 여전히 두 배를 기록하며 양극화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며 “주 평균 근무시간 100.3시간으로 환산하면 시급이 5885원으로 최저임금을 겨우 넘어선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충북지역 병원중 청주하나병원이 4359만원으로 급여가 가장 높았고 건국대충주병원이 3702만원으로 가장 낮았다.

더 이상 못 참아… 전공의 근무조건 개선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전공의 근무환경건강실태 조사 진행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전공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 4일 시작된 해당 설문조사는 고려대 보건행정학과 김승섭 교수가 전공의 수련환경 문제를 환자 안전과 전공의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학술 연구의 일환으로, 지난 2013 11월부터 대전협 김새롬 정책이사를 중심으로 여러 이사진들과의 논의를 거쳐 시행되었다.

김새롬 정책이사는 “이미 외국에서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문제가 단순히 전공의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로 연결되는 가장 큰 문제라는 연구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두 가지를 연결 짓는 연구가 없었고, 대전협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들만으로는 학술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워 이번 설문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책임자를 맡은 김승섭 교수는 노동과 건강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온 학자로 비정규 노동자 건강, 여성 노동자, 근로조건과 우울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바 있다. 때문에 이번 설문 조사는 대전협에서 추진 중인 전공의 특별법 등 정책적으로도 유의미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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