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교한 달빛 비치는 가을밤에는 이 시집을…
상태바
교교한 달빛 비치는 가을밤에는 이 시집을…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09.19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당나라의 시 삼백여수 모아놓은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
김승환 충북대 국어교육과 교수


천하제일 시인 이백(李白)은 이렇게 읊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君不見)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黃河之水天上來) 힘차게 흘러 바다에 닿은 후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을(奔流到海不復回).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君不見) 좋은 집 거울 앞에서 흰 머리 슬퍼하고(高堂明鏡悲白髮) 아침의 검푸른 머리 저녁에 눈같이 희어진 것을(朝如靑絲暮成雪).” 이 작품은 이백의 <장진주(將進酒)>라는 군악대 풍격의 권주가 중 한 부분이다.

인생의 무상을 비애로 처리하지 않고 힘찬 역동성을 낭만적으로 표현한 이백은 과연 시선(詩仙)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낭만적 풍격의 시와 달리 이백은 평생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았다.

과거에 낙방하여 출세의 욕망을 이루지 못했고, 안사(安史)의 난에 연루되어 고초와 풍상을 겪었다. 이백의 시는 <전당시(全唐詩)>등 여러 문헌을 통하여 전해오는데 그 중에서 가작을 선별하여 정리한 <당시삼백수>에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삼백수>의 이백 시는 다른 작품들 중에서 학처럼 빛나기 때문에 시를 읽는 맛이 특별하다. 가령 <이백시선(李白詩選)>의 <장진주>를 읽는 것과 <당시삼백수>의 <장진주>를 읽는 맛이 다른 것은, 시의 숲에서 비교하고 음미하면서 그 깊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송사삼백수(宋詞三百首)>와 비교되는<당시삼백수>는 중국역사상 찬란한 문명과 문화가 꽃피었고 예술과 학문이 발달했던 당(唐)의 시 삼백여 수를 모은 책이다. 전설적인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청(淸)의 손수(孫洙)가 1764년, 여러 책을 참고하여 삼백수의 당시를 모은 편찬저술이다. 삼백수를 엮은 유래는 공자에 근거한다.

▲ 제목:당시삼백수 정선 지은이: 손수 옮긴이: 조규백 출판사: 학고방
공자는 <시경>의 시를 편찬하면서 ‘시 삼백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사무사, 즉 사악한 생각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라고 했다.

손수는 당시(唐詩) 삼백수를 엮으면서 “당시 가운데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을 취하여 그 가운데 더욱 중요한 작품만을 모았다”고 말했고 “당시 삼백 수를 읽으면 시를 읊지 못해도 저절로 읊게 된다(讀唐詩三百首, 不會吟詩也會吟)”고 썼다.

깊고 고결한 즐거움 선사하는 시

<당시삼백수>는 일관된 창작의도로 집필된 책이 아니라 편찬자가 시삼백편사무사(詩三百篇思無邪)의 사상을 토대로 77명 시인의 294수(*분리하면 320수)를 엮은 책이다. 원래 시는 소설이나 희곡과 달리 순간적 지각으로 세상을 자아화하는 장르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고결하고 고상한 감정이 들고 인간 존재와 우주 자연을 통찰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특히 <당시삼백수>에 실린 가작을 한 수 한 수 읽다보면 지금으로부터 천삼백년 전의 인간과 사회가 떠오르고, 애환과 기쁨이 용솟음치며, 자기 성찰의 깊은 심연에 빠진다.

<당시삼백수>는 오언고시, 칠언고시,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절구, 칠언절구, 악부로 분류되어 있고 간단한 해석이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린 한 편 한 편이 독립된 시이기 때문에 전편을 관류하는 시적 격조 이외에도 각 작품 고유한 특성이 오롯이 살아 있다. 또한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가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형식이나 시인을 선별하여 읽을 수 있다.

특히 근체시의 경우, 마지막 글자를 두박자로 읽으면 여운을 느낄 수 있으며 평측(平仄)과 절주(節奏)에 따라서 선율이 살아나고 대우(對偶)와 대장을 음미하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이처럼 문학이면서 음악인 <당시삼백편>의 시들은 가볍고 표피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깊고도 고결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시(漢詩)는 예로부터 소설이나 희곡과 달리 경전(經典)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예술이면서 철학이고 또 역사인 특별한 양식이다. 그 한시 중에서도 빛나는 별과 같고 찬연한 주옥과 같은 시림(詩林) <당시삼백수>는 인류가 남긴 문화유산이면서 인간이 창조한 미학의 정수다.

그러므로 귀뚜라미 울고 교교한 달빛이 비치는 밤에 홀로 <당시삼백수>를 펴 놓고 앉아 있는 사람이나 상큼한 서기가 밀려드는 이른 새벽에 한 수를 암송하는 사람은 이미, 그 의경과 의상의 깊이로 인하여 우주적 운명을 깨우친 것과 같다. 그 독성(獨醒)의 즐거움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주 자연은 무엇인가?’라는 반성적 성찰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당시삼백수>와 같은 고전을 읽는 이유이고 교양과 품격이 저절로 쌓이는 까닭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