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절절한 요구, 259일의 고공농성

▲ 성세경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사무국장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이 하늘에서 투쟁을 펼치고 있다. 노동자들의 절절한 요구를 내걸며 하늘로 오른다. 저 멀리 일제 강점기인 1931년에 강주룡은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삭감을 반대하며 을밀대에 올랐다. 을밀대 고공농성은 고공농성의 ‘시초’였다.

그로부터 80여년이 흘렀다. 2014년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 OECD클럽에 가입한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지금도 하늘로, 하늘로 오른다.

2011년 1월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김진숙 조합원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크레인에 올라 노사간 합의를 이끌어냈다. 2012년 10월 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과 천의봉 조합원은 “현대자동차 모든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96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다.

같은 해 11월 쌍용자동차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조합원은 15만4천 볼트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 국정감사 실시”를 요구하며 171일간 고공농성을 전개했다. 어디 이 뿐인가? 기륭과 콜트콜텍, 재능도 고공농성을 전개했다. 1931년과 2014년 노동현실과 노동인권은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 있다.

2013년 10월 13일, 유성기업 영동지회 이정훈 지회장은 옥천 나들목 근처 광고탑에 올랐다. 이정훈 지회장은 22미터 광고탑에 올라 “유시영을 구속하라”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을까?
유성기업 노사는 2009년 심야노동을 철폐하는 주간연속2교대제(06시~16시 근무, 16시~02시 근무)를 2011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노사간 합의했다.

그러나 사측은 합의서를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지회는 준법투쟁을 벌였고, 유성기업 회사측은 이를 이유로 2011년 5월 18일 유성기업 아산공장 문을 걸어 잠궜다. 회사는 제일 먼저 인마살상용 가시철조망을 공장 울타리에 둘러쳤다. 정문 양 옆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했다.

▲ 유성기업 이정훈 지회장. 6월 28일 철탑에서 건강상 이유로 내려와 입원했다.

컨테이너 박스 주변과 위에는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용역경비를 수십 명을 배치했다. 용역경비는 쇠파이프와 소화기로 조합원의 두개골과 광대뼈를 함몰시켰고,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2012년 국회청문회에서 유성기업 노조파괴 문제가 사회적인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검찰은 지금까지 단 한명도 기소하지 않았다. 창조컨설팅 심종두, 김주목 노무사 자격은 박탈했지만 그를 선임한 유시영에 대해서는 털 끝 하나 건들지 않았다. 그러나 2011년 5월 경찰과 검찰은 유성기업 조합원 500여명을 입건하고, 100여명을 기소했고, 17명을 구속했다. 지금도 2명은 3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법과 정의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2013년 10월 유성기업 이정훈 지회장은 “유시영을 구속하라”며 고공농성에 돌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파렴치하게도 대전지검은 철탑농성중인 이정훈 지회장에게 보란 듯이 2013년 12월 30일 무혐의 처분했고, 가제는 게 편이라고 노조의 항고에 대해 대전고검은 2014년 5월 29일 원고청구를 기각했다. 4월 24일 법원이 “직장폐쇄가 위법하다”고 판결해도 검찰은 무시로 일관한다. 검찰은 노골적으로 자본의 ‘애견’임을 고백했다.

6월 28일 더 이상 올라갈 때가 없는 유성기업 영동지회 이정훈 지회장은 아픈 몸을 이끌고 땅으로 내려왔다. 하늘로 올라간 지 딱 259일만이다. 이정훈 지회장의 쾌유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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