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문화재단·충북청소년종합지원센터·청주북부도서관 등 지역+보통명사 다수
장영실과학관·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해오름 극장·달오름 극장 등 의미있어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과 사물은 모두 이름이 있다. 이름없는 꽃, 이름없는 풀은 사람들의 생각일 뿐 이 세상에 이름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이름을 잘 정해야 한다. 특히 기관·단체 등과 학교 이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기 때문에 성격에 맞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 그런데 개중에는 ‘빛깔과 향기’에 맞는 고유명사를 붙이지 않고 개성없는 보통명사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는 이런 이름들을 불편하지 않게 써 왔겠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통합청주시 출범에 맞춰 기관 명칭을 변경할 때도 기계적으로 ‘청원’을 ‘청주’로만 바꾸지 말고 내용에 맞는 명칭으로 교체하자.

▲ 충북교육과학연구원

충북문화재단·충북교육과학연구원·충북청소년종합지원센터·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등은 엄밀히 말해 충북·청주라는 지명과 보통명사가 합쳐진 이름이다. 고유명사가 없기 때문에 이름이 심심하고 개성이 없다. 공공기관명은 대부분이 그렇다. 지금은 이름을 정할 때 종종 공모를 하지만, 과거에는 관계 공무원들이 관행처럼 이런 식으로 해왔다.

청주시는 상당구 내덕동 옛 연초제조창 이름을 공모해 ‘청주 아크라(Arcra)’를 최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차유진 양은 Art(문화예술)+craft(공예)+utopia(이상향)의 합성어로 ‘청주 아크라’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불 꺼진 옛 담배공장을 재생하고 부활시켜 문화예술과 공예의 불을 켜고 새로운 100년의 꿈을 담는 공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2위로는 주부남 씨의 ‘레드 씨앗(Red seed)’과 이재학 씨의 ‘안터오름’이 선정됐다. ‘레드씨앗‘’은 불씨(Red See)가 문화예술의 씨앗((Seed Art)이 돼 문화적 발전과 융성의 꿈을 일군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 ‘안터오름’은 내덕동의 옛 이름 안터벌과 위로 오른다는 ‘오름’의 합성어. 3위로는 청주 아트팩토리, 청주 문화제조창, 청주 문화예술공장 등 3개가 뽑혔다.

청주시와 청주문화재단은 수상작으로 선정된 6점의 이름을 놓고 시민사회와 각계 전문가 의견을 들어 새 이름을 확정할 계획이다. 만일 이 곳에 이름을 주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계속해서 옛 연초제조창이라고 불러야 한다. 지금이라도 작명을 시도한 것은 다행이다. 다만 청주와 아크라, 청주와 아트팩토리 사이에 고유명사를 주지 않은 게 아쉽다. 영어가 너무 많아 불편하다는 의견들도 있다.

▲ 청주시립남부도서관

‘아트홀’이라는 이름 전국에 수두룩
또 청주시는 지난 1월 ‘청주아트홀’을 청주시민회관의 새 이름으로 정했다. 시는 시민 설문조사와 예술단체 의견, 명칭선정위원회 심사 등을 거쳐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이름 역시 시민들에게 와닿지 않는다는 여론이다. ‘아트홀’이라는 명칭은 전국적으로 널려 있고, 여기에 청주라는 명칭만 붙여 재미없고 밋밋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1979년 준공돼 30여년간 다목적 공연·행사장 역할을 해온 청주시민회관은 지난 2011년 안전정밀검사에서 D등급을 받고 보수에 들어갔다. 지금은 전면 새단장 하고 재개관 했다. 이를 계기로 이름을 공모했으나 예선에 올라온 것은 청주아트홀·청주시민아트홀·청주시민회관 등 3개. 청주문화예술체육회관은 70년대 사용하던 이름 대신 시대에 맞는 이름을 붙인다는 계획이었으나 후보 3개 모두 고리타분한 게 사실이다. 문화예술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과 부르기 좋으면서 청주시만이 붙일 수 있는 이름이 아니어서 불만이라는 게 시민들 의견이다.

공공기관명을 정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동서남북 등의 방위를 가리키는 단어와 동네 명이다. 청주 남부도서관·북부도서관, 청주 시민회관, 청주 금천중학교·석교초등학교 같은 식이다. 이는 청주뿐 아니라 전국적인 상황이다. 남부도서관이나 북부도서관은 이름이라고 할 수 없다. 남쪽, 북쪽에 있다는 의미 말고는 없는 셈이다. 또 금천중학교는 금천동, 석교초등학교는 석교동에 있다는 의미 외에 없다.

청주시 흥덕구와 상당구는 그래도 이름을 제대로 붙인 경우에 속한다. 흥덕구는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 상당구는 상당산성 이름에서 따왔다. 다른 지자체가 손쉽게 동구·서구·남구·북구 하는 식으로 방위를 가리키는 이름을 붙인데 반해 청주시 구 이름은 적합한 고유명사를 붙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합청주시에 새로 신설되는 서원구·청원구도 각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원구는 청주의 옛 이름인 서원경, 청원구는 청원군에서 따온 이름.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질 청원군의 이름을 살린 것도 잘 했다는 여론이다.

대구시에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아산시에는 장영실과학관이 있다. 한 번 들으면 오래 기억되는 이름이다. 대구시는 국채보상운동을 전국 처음으로 시작했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밝혔다.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 말기에 일어났던 주권회복운동이다. 일본에서 빌려온 돈 1300만원으로 국가가 존망의 위기를 맞았으니 담배를 끊어서라도 국민의 힘으로 국채를 갚고 국권과 국토를 보존하자는 외침으로 시작됐다.

▲ 충북청소년종합지원센터

정체성없는 청주, 이름도 무색 무취
또 아산 장영실과학관도 단순히 아산과학관이라고 하지 않고 조선 세종 때의 위대한 과학자 장영실 이름을 붙였다. 서울의 국립극장내에는 해오름·달오름·별오름 극장이 있다. 제1극장, 제2극장이라는 식으로 하지 않고 각각 이름이 있어 부르기가 좋다. 영유아지원기관 중에는 ‘시소와 그네 영유아통합지원센터’가 있다. 전국적인 조직이고 청주시 문화동에도 청주지원센터가 있다. 이 센터는 ‘시소와 그네’라는 이름을 붙여 특화시켰다. 청주영유아통합지원센터라고 했으면 다른 기관들처럼 죽은 이름이 됐을텐데 아이들과 관련있는 시소와 그네를 넣어 한결 친근감있게 다가온다.

김영학 청주대 지적학과 교수는 “청주시에는 청주를 대표할 수 있는 기관명이나 건물명이 없다. 건물명은 랜드마크로서 대외적으로 지역을 알릴 수 있는 장소마케팅 역할을 하는데 그런 곳이 없다. 사람·맛·멋으로 특화시켜 명소가 되는 건물이 있어야 한다. 서울의 63빌딩하면 누구나 알고 서울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듯이 청주에도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아쉽다. 청주 육거리시장은 육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일뿐 의미가 없고, 충북교육과학연구원은 전국적으로 비슷한 기관명이 많아 재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충북혁신도시, 청주산업단지도 그렇다. 혁신도시와 산업단지는 전국적으로 많다. 이런 이름만 들었을 때는 와닿는 느낌이 없다. 혁신도시이지만 거기 맞는 이름을 주고, 산업단지는 성격에 맞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현상은 청주시가 정체성이 모호하고 개성이 없으며 명물이 없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올 7월 통합청주시는 인구 83만명 도시가 되고 대전·천안과 함께 신수도권시대를 견인해갈 도시로 우뚝서게 된다. 그럼에도 정체성 측면에서는 모호한 면이 많다. 이 때문에 김미숙 청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21세기 지역사회의 갈 길’이라는 저서에서 청주학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김 교수는 “청주학은 공식 용어나 개념으로서 체계화 되었거나 진척된 바가 없다. 연구조직이나 물리적 연구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연구소에 설치된 적이 있으나 활동이 점차 감소되고 있다. 청주학이 지역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역사 전공자들의 개별 연구물을 생산·축적할 수 있는 관련 기구를 만들되 재정 및 인력배치, 자료수집 등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관명 한 개도 이런 토대위에서 나온다면 청주 이미지에 맞고 부르기 좋은 이름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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