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자극적이고 아픈 소설 <롤리타>

이종수
흥덕문화의집 관장

소설이 좀 지루하면 어떠냐, 문학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요소는 ‘내용’이라는 무거운 짐, 즉 뭔가를 기록해야 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수전 손택은 말했다.

소설은 어떤 수준의 언어든, 어떤 구성이든, 어떤 생각이든, 어떤 정보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쩌면 속물주의에 심각하게 손상된 예술 형식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었다.

사랑 혹은 광기, 에로티시즘 혹은 포르노그래피, 환희와 절망이 빚어낸 숨막히는 언어유희! 란 광고문구 만큼이나 자극적이고 아픈 소설. 소설을 읽으며 울컥 눈물이 치밀어오른 것은 근래에 처음인 것 같다.

“진지한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이 발표한 책으로부터 끊임없이 위안을 받는다. 책은 마치 지하실 어딘가에 항상 켜두는 점화용 불씨와 같아서 작가의 가슴속에 있는 온도 조절기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즉시 작고 조용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친숙한 열기를 발산한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언제든지 마음속에 불러낼 수 있는 책의 존재감, 책의 빛은 작가에게 한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데, 작가가 예견했던 모양과 빛깔에 가깝게 완성된 책일수록 더욱더 풍요롭고 은은하게 빛난다.”(-작가의 말 중에서)

▲ 제목: 롤리타 지은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옮긴이: 권택영 출판사: 민음사
롤리타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 되는 소설이다. 성도착자의 생리적 충동에 대한 언급이 너무 많다는 것 또한 작가가 인정하고 있지만 감히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어린애도 아니고, 무식한 비행청소년도 아니고, 동성애를 즐기며 뜨거운 밤을 보내고 나서 불건전한 부분을 모두 삭제한 고전을 읽는 모순된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영국 사립학교 학생들도 아니다”라고.

작가에게 소설이란, 베스트셀러를 양산해내는 흐름에 있지 않고, 더욱이 빠른 주기에 자신의 양심마저 팔아버리는 것에 매여 있지 않는 독특한 장르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고 말하는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색안경을 끼고 도덕의 잣대를 들이댈 만한 가벼운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보코프는 시시한 졸작이나 관념소설을 뛰어넘는, 그래서 감각적 요소와 관능적 요소를 엄밀히 구분하는 일 따위에 얽매이지 말아야 롤리타가 제대로 보인다고 강조하고 있다.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열두 살 소녀를 향한 중년 남자의 사랑과 욕망의 대서사시다. 그만큼 출판과 동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선정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작가가 겹겹이 숨겨놓은 다양하게 해석되는 은유와 상징들이 빛나는 소설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나보코프는 혁명에 휩싸인 그의 조국 러시아를 떠나 유럽을 전전하며 떠돌 수밖에 없었던 망명자이자 고독한 작가의 전형이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로 시작하는 것만큼 에로티시즘에 감춘 근원적인 사랑에 대한 갈구와 잊혀진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개인적인 비극은(줄임) 내가 타고난 모국어, 즉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한없이 다루기 편한 러시아어를 포기하고 내게는 두 번째 언어에 불과한 영어로 갈아타야 했다는 사실이다.” 에서 볼 수 있듯이.

작품 안에서 주인공 - 험버트와 서술자 험버트는 구분되어 있다. 서술자-험버트의 목소리에 나보코프의 목소리가 교묘하게 겹쳐 있다. 주인공-험버트의 고백이 금지된 욕망을 다루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그 안에 시적인 에로티즘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롤리타에 빠져 의붓아버지가 되어서까지 롤리타를 탐하고 소유하는 험버트의 지옥과 천국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정에 솔직해지고 앞서 말했듯이 심미적 희열,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도록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소설 끝 대목은 이렇게 끝난다. 감히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각자 다른 롤리타, 각자 다른 험버트를 만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시샘한다. 그래서 그녀를 놓아주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불러본다. 나의 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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