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고 있는 책 <전태일 평전>

최숙주
마음수련원 총무부장

10월 마지막 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최종범 동지는 “저 최종범이 그동안 삼성서비스에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서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러지는 못해도 전 선택을 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서른셋, 청년가장인 그에게는 돌을 앞둔 딸과 부인이 있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기름 값, 통신비와 자재비를 빼면 최저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낮은 임금, 계절에 따라 건당 제각기인 수수료,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지난 7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러자 삼성은 조합원에 대한 표적 감사와 폭행, 폭언을 일삼았고, 노조탈퇴 압력과 협박 등으로 조합원들을 압박했다.

조합원으로 가입한 최종범 열사는 자신과 주위 동료들이 얼마나 부당하게 힘들고 위험하게 일해 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또 전태일 열사를 처음 접하면서 “그렇게 훌륭한 분이 계셨는지 몰랐다”며 “열심히 하면 세상이 바꿔지리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곧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삼성의 표적감사의 대상이 되어 일감이 줄어드는 등 집중적인 탄압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병든 어머니와 사랑하는 딸과 아내와의 단란한 삶을 위해 정말 사력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평법한 노동자가, 짧은 시간 잠깐 만났던 전태일 열사는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 제목: 전태일평전지은이: 조영래출판사: 돌베개
전태일 열사는 1948년 대구에서 출생해 어렸을 때부터 지독한 가난으로 남대문초등학교와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잠깐 다녔을 뿐 신문팔이, 구두닦이, 손수레 뒷밀이 등 밑바닥 생활을 하며 어렵게 보냈다.

그러다 1964년 봄 16세의 나이에 시다로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 첫발을 딛게 되었다. 이후 그는 미싱사와 재단사로 일하면서 평화시장 섬유노동자들이 놓인 참혹한 노동현실에 분노하고 때론 절망하면서 처참한 현실을 바꿔보고자 노력하였다.

1969년 평화시장 일대 3만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고 근로조건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하였으나 곧 해고당하고 바보회 또한 사실상 해체되었다. 그는 절망과 번민 속에서 다음해인 1970년 봄까지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비로소 그의 사상을 세우게 된다.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전태일 평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나의 직장, 나의 행위는 분명히 인간 본질을 해치는 하나의 비평화적 비인간적 행위이다. 하나의 인간이 하나의 인간을 비인간적 관계로 상대함을 말한다. 아무리 피고용인이지만 고용인과 같은, 가치적 동등한 인간임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치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문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1969년 12월 31일 일기에서. ‘전태일 평전’ P. 212~213)

전태일 열사는 오랜 시간 자신과의 싸움을 거쳐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거부당하고 단지 물질적 가치(자본의 이윤 생산에 필요한 기계)로 전락한 자신과 주변의 노동자를 위해, 그리고 근본적으로 그러한 관계를 강요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바꾸기 위해 자신을 바칠 것을 결단하고 아낌없이 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지금, 물질적 풍요는 넘쳐나지만 절대다수는 임금노동자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전태일 평전’은 여전히 묻고 있다.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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