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세계화 분석한 경제이론서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이야기>

김미경
전 청주YWCA 여성종합상담실장·캐나다 거주

올 여름, 한국에서는 극심한 폭염에도 불구하고 전기절약 캠페인이 거세 여름나기가 더욱 어려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아했던 것이 캐나다인에 비하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전기를 아끼는 문화가 비교적 잘 정착되어 있는데도 너무 자책감에 시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물론 핵발전소를 짓는 것 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게 더 좋은 대안이라는 점을 부정할 여지는 없다. 다만 그 죄 값이 국민들의 몫인가 하는 점이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 캐나다인들의 에너지 소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일예로 이곳의 많은 아파트들은 건물 미관을 위해 베란다에 빨래를 내어 널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뜨거운 햇살이 작렬하는 여름 한낮에 집안에서 빨래건조기를 돌려대는 게 일상이다.

수영하는 사람도 몇 명 없어 보이는데 왠만한 아파트마다 실내수영장과 사우나실이 설치되어 있다. 식당 안에서 먹는 음식조차 일회용기에 담아주는 걸 당연히 여기는 걸 보면 쓰레기 발생량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듯하다. 떨어진 부품을 구하거나 고치는 값이 새것을 사는 값을 훨씬 넘는다.

얼마 전 내가 읽은 책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이야기 (The Story of Stuff)>에 의하면 선진국에서 소비하는 상품에는 제3세계 나라들의 자연과 인력을 엄청나게 착취한 결과가 녹아들어 있는 거니까 그 생산 유통에 들어간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량을 합하면 그들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소비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 제목: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이야기 지은이: 애니 레너드 옮긴이: 김승진 출판사: 김영사
사람마다 선호하는 책의 성향이 있을 것이다. 나의 독서 습관은 일찍부터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한국인 저자의 책에 그리고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것 보다는 사실적인 글들에 편향되어 있었다. 이런 취향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때부터였는데 난생 처음 흥미를 느낀 책이 <고향을 지키는 아이들>이란 창작동화와 어린이들이 직접 쓴 동시 문집이었다.

반면 집 한 켠에 놓여있던 100권짜리 외국동화책이나 청소년들이 다투어 읽던 세계문학엔 흥미가 없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한국문학이나 수기 평전 등에 더 눈을 돌리게 되고, 외국인이 쓴 이론서나 철학서 같은 것들은 잘 읽혀지지 않아서 고역이다. 돌이켜 보면 책을 통해 감명을 받은 경우도 대부분 현실이 구체적으로 잘 묘사된 사실적인 글들을 통해서였다.

물건의 생산·폐기과정 조근조근 설명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이야기 (The Story of Stuff)>는 내 성향에 꼭 맞는 책이다. 저자는 알루미늄캔, 금반지 등 물건 하나하나의 생산 유통 소비 폐기의 과정을 인간 환경 경제 차원에서 조근 조근 설명해 준다. 책을 읽다보면 내가 늘 사용하는 물건들 면 티셔츠 한 장, 컴퓨터 프린터기 하나도 새삼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자원 착취와 과소비에 의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현실을 잘 분석한 경제이론서다.

또 방대한 통계를 인용하되 알아듣기 쉽게 풀어 설명해 줌으로써 과학적이면서도 솔깃하다. 학자가 아니라 환경운동가로서 20여 년 동안 전 세계의 쓰레기를 따라다닌 저자의 이력이 곳곳에서 드러나 더 반갑다. 게다가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는 동영상을 봐도 되니 참 좋다.

이 책에서 한국에 대해 직접 언급한 대목은 거의 없지만 한국의 상황을 해석 할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준다. 올여름 한국 사람들은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 이란 수치를 통해 핵 발전과 탄소를 이용해 외국으로 수출할 물건을 만드는데 쓰인 에너지를 자신들이 소비한 것처럼 느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억눌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마음엔 미국식 과소비를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고 있으니 원인 모를 갑갑함이 더욱 가중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마침내 이 책은 사람마다 나라마다 환경운동의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영감을 준다. 미국과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지금 한국에서 주력하고 있는) 과소비를 줄이고 각 가정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생활문화운동이 절실히 필요하고, 한국과 중국 등 상품생산 수출국에서는 자원 착취적이고 원자력 및 탄소 에너지 집약적 산업 경제구조와의 관계, 노동착취나 유해물질 배출 등의 위험과 맞서 싸우는 운동의 비중이 더욱 높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내의 환경문제 뿐 아니라 기아와 자원 착취와 개발독재에 허덕이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인권문제를 내일처럼 여기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례적으로 미국인이 쓴 책을 통해 감명을 받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딘지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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