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

김상수
가톨릭신부·충북재활원장

바쁘게 살다가 불현듯 돌아보면, 자신의 삶이 맹목적성을 띄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애초의 목적이 명확하였더라도 길의 중간에서 살펴보면 상황에 매몰되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초·중·고·대학을 다니는 동안 진정한 학문이 무엇이며, 진정한 지식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아니 필요성을 느낄 이유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하루하루의 과제들에 짓눌리고, 쏟아지는 지식들을 흡수하기에도 언제나 과부하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학력이 곧 지식이며, 그 지식이 모든 가치판단의 근거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학한 신학교에서의 학문들은 쌓아온 막연한 지식의 많은 부분을 폐기하도록 지각변동을 일으켰습니다.

‘앎’은 한 사람의 삶을 이끄는 나침반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에 따라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사회의 건강한 학문은 다양한 지식의 교류가 가능하고, 지적성찰과 사유를 근간에 놓습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학문은 지식의 통로가 일방향성으로 짜여있으며 사유와 성찰을 위험하거나, 비현실적이라 터부시합니다.

▲ 제목: 소유냐 존재냐 지은이: 에리히 프롬 옮긴이: 차경아 출판사: 까치글방
오늘날 우리의 공교육이 바로 사유와 성찰이 들어설 틈이 없도록 일방향의 지식만을 습득하게 하는 구조입니다. 미성년은 곧 미성숙을 상징한다고 여기며 이들이 스스로 사유하는 것은 위험하거나, 시간낭비라고 여깁니다. 이런 일방향의 교육을 통해 양산된 많은 사회구성원들은 성인이 되어도, 자신의 삶에 대해 주도성을 찾지 못합니다. 지배적 가치관에 휩쓸리거나, 맹목적성으로 이런 저런 신앙거리를 찾아 헤맵니다.

많은 사회문제들은 인간이 자신에 대한 주도성을 잃게 되어 생기는 문제가 많습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진정한 물음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자신과 동일시했던 것들을 잃게 되었을 때, 균열이 왔을 때, 길을 잃게 됩니다. 자신의 삶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서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경전들은 변함없는 참 진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경전 외에 우리에게 참 지식을 전해주는 인류의 교사들도 있습니다. 사회가 제시하는 길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삶에서 저에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도와준 또 하나의 귀한 책은 독일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입니다.

소유는 ‘앎’까지도 양으로 측정

오랜 기간 인류를 지배했던 절대권력의 자리를 대체한 것은, 민주주의의 물현(物現)이라고 착각한 거대한 자본주의적 가치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현대인에게 신적(物神) 지위이기도 합니다. 물신(物神)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느냐에 따라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를 내리게 합니다. 물론 그 소유의 대상은 자본이거나, 자본으로 변환될 수 있는 가치여야 합니다.

소유양식의 삶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앎’까지도 소유 그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합니다. ‘앎’이 자신의 존재를 더욱 확장시키고 삶의 본질에 접근하도록 돕는 것으로 기능하기보다 ‘얼마나 많은 양을 알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교육현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시험문제 역시 ‘앎’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때문에 사회 전체의 학력수준은 높지만 주도적 앎과 복합적인 사유와 통찰, 그에 따른 행위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양식의 사람들은 종교조차 존재양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교리와 도그마를 소유하는 행위에서 나아가지 못한다고 분석합니다. 종교는 인간과 사물 등 모든 대상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경계를 허물게 하는 최고의 도(道)와 덕(德)을 살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나 단지 특정일을 지키고, 의무로 주어진 종교규칙을 준수하는 등의 행위가 종교생활이라 여겨 안주합니다. 최고의 진리를 곁에 둔 채 오랜 신앙생활에도 진정한 성숙이 없는 이유가 소유양식의 삶에 기반 해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물질적 소유뿐만 아니라 종교나 학문과 같이 내적 성장에 필요한 것까지도 소유양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그 스스로 혼란과 소외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살고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이 책은 삶의 양식을 점검하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주도성을 회복하는 것 또한 우리 삶을 성장시키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성찰해볼 수 있는 안내서였습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