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환씨, 고 육여사 사진과 박근혜 대통령 편지 일화

정중환씨(71)에게 대한민국의 영원한 국모(國母), 육영수 여사는 37세의 나이로 기억된다. 사진 속의 육 여사는 그 때도 예외없이 우아한 미소로 너그럽게 바라보고 있다.

매년 8·15 광복절만 되면 그는 잊지 않고 이젠 색이 바랜 사진 한장을 기억해 낸다. 거기엔 대학시절 동아리활동을 같이 했던 옛 동료들과 육영수 여사가 가지런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에는 51년전의 추억이 하나도 빠짐없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박근혜 대통령의 편지는 이렇듯 한 순간에 그를 젊은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제천부시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정중환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편지 인연은 1962년 10월 어느날로 거슬러 올라 간다. 20세의 팔팔한 나이로 당시 청주대 상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는 산악부 활동을 했고 짙어가는 가을, 대뜸 속리산 산행을 기획하게 된다. 그 때만 해도 보은 읍내까지만 버스가 다녔고, 거기서부터는 말의 굽에 동티가 날 정도라는 험한 말티재를 하루 꼬박 걸어 넘어야 속리산에 들 수 있었다.

드디어 산악부 일행이 청주를 출발, 보은읍을 거쳐 지금의 말티재 입구의 장재저수지에 닿는 순간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검은색 지프를 만나게 된다. 일행이 손을 들어 차를 세우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뒷좌석에 앉은 여인의 화사한 모습이었다. 간혹 TV와 신문에서 보던 육영수 여사였다. 당시 부군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직후 한시적으로 설치한 최고통치기관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맡을 때라서 얼굴이 익숙했던 것이다.

“언니라고 하는 분하고 둘이 앉아 있었는데 육영수 여사는 우리보고 자꾸 타라고 하셨지만 일행이 여럿이어서 그럴 수 없었다. 지프를 그냥 떠나 보내고 우리는 오후 내내 걸어 속리산에 도착, 다음날 문장대를 등반한 후 내려 오다가 복천암에 들렀더니 그 곳에 육영수 여사가 있는 게 아닌가. 그 때부터 법주사 경내를 같이 돌아 다니며 기념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육영수 여사에 대한 정중환씨의 기억은 이렇다. “아무래도 우리가 젊다보니 그저 천진난만하게 이것저것 물었는데 항상 웃음으로 대하셨다. 별로 말씀이 없이 그저 우리의 얘기를 들으며 물끄러미 바라보시기만 했다. 마치 어머니같은 푸근함을 느꼈고 참 고상한 분이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이때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그에게 1974년 8월 15일의 뉴스는 지금까지도 소름을 돋게 한다. 그날 국립중앙극장에서 광복절 기념행사 중 재일동포 문세광의 저격을 받아 육영수 여사가 운명한 것이다. 정부는 전국의 지자체에 빈소를 마련해 조문을 받게 했고 충북도 역시 예비비 1500만원을 집행해 도청 회의실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그 때 주무를 맡은 사람이 당시 서무과 주사보이던 정중환씨다.

영부인에 대한 국장이 끝나고 국민들의 슬픔이 어느 정도 진정되던 그 해 10월 쯤, 정씨는 12년전 육영수 여사와의 속리산 인연을 떠올리게 됐고 곧바로 영부인과 같이 찍은 사진 중에서 한두컷만 남겨두고 나머지 10여장을 편지에 동봉해 박근혜에게 보낸다. 그는 “다른 뜻은 없었고 갑작스런 어머니의 사망으로 슬픔에 젖어 있을 이 나라 영애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밤새 고민하다 편지와 사진을 보내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달 후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쓴 답장이 도착한 것이다. 내용은 A4 용지에 타자로 쓰여 있고 끝에 친필로 서명까지 했다. 내용 전체가 간결하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슬픔과 정중환씨에 대한 고마움을 빼놓지 않고 표현하고 있어 할 말만을 똑부러지게 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세이던 해이다.

프랑스 그르노블대학에서 유학중 어머니의 비보를 듣고 급거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급한 전화가 온 후 대사관 직원이 왔다. 공항에서 신문을 봤더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있었다. 수만볼트의 전기가 홅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이었다.”

정중환씨가 끝내 걱정했던 건 바로 박근혜의 이런 충격과 상실감이었고 이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자 편지와 사진을 보내 준 것인데, 되레 장차 대통령으로부터 소중한 서신까지 받게 된 인연이 됐다. 그는 “앞으로도 집안의 가보로 여기며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각각 51년전과 39년전의 얘기이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을 당시 검사이던 김기춘이 수사했고, 그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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