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각으로 신숙주를 재평가한 소설 <왕도와 신도>

박철완
청주시 녹색수도추진단장

여름휴가 때 김용상의 장편소설 <왕도와 신도>를 읽었다. ‘사육신’과 ‘숙주나물’을 연상케 하는 인물 신숙주,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신숙주 하면 ‘지조없는 변절자’로 받아 들인다. 그에게 변절자라는 낙인을 찍은 건 사림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훈구파와는 달리 성리학에 매몰된 채 충과 효, 명분과 의리 등을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들의 잣대를 들이댔고 이에 맞지 않는 사람을 사정없이 난도질하곤 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사육신’이니 ‘생육신’이니 하는 용어를 만들었고 그것을 빌미로 ‘신숙주’도 집중적으로 폄하했다. 그들은 신숙주가 무엇 때문에 성삼문 등과 다른 선택을 했으며 살아서 조선의 초석을 다지는데 기여한 공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같은 건 묻지도 따져보지도 않고 흉악한 배신자로만 몰아 붙였다. 작가는 이 책의 서두에서 “여러벗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황, 그로인해 겪어야 했던 마음 고생도 헤아리고 이제부터라도 신숙주를 바르게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 소설 속에서 신숙주가 그의 가장 친한 벗 성삼문과의 관계속에서 ‘충성’과 ‘우정’을 사이에 두고 얼마나 가슴 절절히 아파하고 고민하는 지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 사이가 서먹해지기 시작할 무렵 어느 날, 두 사람은 오랜만에 술 한사발씩을 맞들고 마주 앉았다. 성삼문이 먼저 말문을 연다.

▲ 제목: 왕도와 신도 지은이: 김용상 출판사: 나남출판
“범옹(신숙주의 호)! 지금 자네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가 잘 살펴보게. 길을 잘못 잡은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잘 살펴보란 말일세. 자네의 충성이라는 게 고작 수양대군의 편에서는 것이라니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네” 이에 대해 신숙주는 “근보(성삼문의 호)! 나는 지금 사직과 백성의 편에 서서 조선의 장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지, 수양대군을 위해 그의 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닐세” <중략> “죽음으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면 살아서 대의를 바로 세우고 민생안정과 부국강병을 위해 온힘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충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그가 왜 그 외롭고 힘든 길을 선택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말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청의동자

또 사육신에 대한 형이 집행되기 전날 신숙주는 옥에 갇혀있는 성삼문에게 편지 한 통을 쓴다. “어쩌다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해 이렇듯 마음고생을 하게 됐는지, 그저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네. 어쩌면 이글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못해 타들어 가는 듯 하네. 자네들을 보내고 내가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만 이를 악물고 참아보려 하네. <중략> 하지만 나의 선택을 스스로 존중하고 내 선택이 잘못된 게 아니었음을 자네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선택한 길에 온힘을 다할 것이네. 그래서 후세의 역사속에서는 기필코 긍정적인 평가를 받도록 내 몸과 마음을 쏟을 것이네”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에서 친구에 대한 애절함과 미안함을 표현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밝힌다. 그것이 가장 친한 친구를 먼저 보내는 신숙주의 최소한의 예의였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다가오는 부분은 청의동자의 존재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청의동자는 신숙주 내면의 또 하나의 신숙주이다. 우리들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과 갈등’의 순간들을 만나는가? 그때마다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도와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또 다른 나를 찾곤 한다.

하지만 현실속에서는 그런 존재는 없다. 벗들로부터 외면당한 신숙주 곁에 청의동자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신숙주는 외롭지 않았다. 어쩌면 신숙주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이 청의동자를 탄생시킨 것은 아닌지…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청의동자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신숙주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기회주의자나 변절자가 아니었다. 명분 못지않게 실리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불사이군(不事二君)에만 매달린 사육신 등과는 달리 좀더 멀리, 더 넓게 세상을 보고 결단했던 현실주의자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숙주가 마지막 편지에서 기대했던 ‘역사속에서의 긍정적 평가’가 좀더 빨리 오기 위해서라도 이 책이 보다 많이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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