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국 신부·옥천성당

서울 대한문에 한 번 가보세요. 희한한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 옆 인도 한 가운데 최근 난데없는 꽃동산이 출현했거든요. 지난 4월 4일 서울중구청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스물네 분의 죽음을 추모하던 분향소를 강제철거하고 그 자리에다 기상천외의 미화사업을 이룩한 겁니다.

봄이 왔으니 꽃구경도 해야겠지요. 그렇다고 사람을 뽑고 꽃을 심다니 그들의 행정이란 어떤 것인지 쉽사리 이해가 안 됩니다. 하기야 별 쓸모도 없는 주차장 하나 짓자고 경찰특공대를 보내서 중산층 가장 다섯을 불에 태워버린 2009년 1월의 용산참사를 정당한 공무집행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고 보면 그럴 만도 하겠군요.

진풍경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꼬박 경찰들이 해고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서 있는데 그들의 또 다른 주요종사임무는 바로 꽃밭 사수입니다. 꽃밭을 훼손하려는 그 어떤 불순한 도발도 즉각 응징하련다는 대비태세가 얼마나 엄중한지 웬만한 사람은 오금이 저려서 잠시도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후 여섯시 정각이 되면 시민 ‘스물네 명’이 ‘이십사 분’간 얼굴이나 가릴 정도의 작은 피켓을 들고 꽃밭에 들어가 침묵시위를 벌입니다. 서러운 삶을 자살로 마감한 노동자 24명을 기억하자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꽃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합니다만 어여쁜 생명들을 사정없이 뭉개버리는 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경찰들입니다. 점잖은 시위를 소멸시키느라 꽃밭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침만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꽃밭은 술집 색시마냥 말끔한 얼굴로 길손들을 맞이합니다. 부지런한 중구청에서 이른 새벽마다 새로운 꽃들을 긴급투입하고 있거든요. 2013년 대한민국의 진경산수라 부를 만합니다. 서울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경향각지 어디서나 우리는 이런 풍경을 만납니다. 언제까지 이 말도 안 되는 다툼으로 세월을 보내야 할까요.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라도 많으면 이런 요절복통은 끊이지 않겠지요.

그런데 분향소를 깨부순 분들에게 꼭 알려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 같으면 무서워서라도 하지 못할 일을 불쑥 해내신 겁니다. 허름한 천막이라서 우습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대한문 분향소는 엄연히 억울한 영혼들의 신주를 모신 곳이었습니다. 신주(神主)가 뭔지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사자의 이름을 적고 거기에 영혼을 모신 것이 신주입니다. 종이로 만든 신주는 지방이라 하고, 나무를 깎아 만들면 위패라고 합니다. 자고로 우리는 신주를 산 사람과 똑같이 여겨 “궁궐은 버려도 신주는 지켜야 한다”고 했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신주가 모셔진 곳에서는 몸가짐을 조심합니다. 임금들의 위패를 모신 종묘나, 유교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성균관에서만이 아니라 가난한 장롱 속의 감실(監室) 앞이라도 절대 경거망동하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까불다가는 사자들의 괴롭힘에 시달릴까봐 겁내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대한문 분향소 역시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에게는 아침저녁으로 향을 올리는 성스런 공간이었습니다. 거기서 벌어지는 추모의 노래와 기도는 그들 나름의 엄숙한 종묘제례나 다름없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저 끔찍한 짓을 벌였으니 부디 앞날에 탈이 없으시기를!

“꿩 먹고 알 먹으면 공멸이다”─지금은 분향소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지만 천막 위에 나부끼던 작은 글귀였습니다. 꿩 먹고 알 먹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냐고 하시겠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힘센 놈이 약한 놈 잡아먹고, 있는 놈이 없는 놈 놀려먹고, 높은 놈이 낮은 놈 부려먹으면 퍽 재미지고 짜릿할 것 같지만 그게 다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약자들의 읍소였습니다.

지난 4월 20일 중국 쓰촨성 대지진이 있기 사흘 전에 수백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나타나 며칠 후의 파국을 예고했다고 합니다. 두꺼비들의 거대한 외침에 감응한 인간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밤이 되면 쌍용차 노동자들은 꽃밭 앞에서 달랑 비닐 한 장을 덮고 비와 이슬을 피합니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그만 흩어질 법도 하건만 질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아무리 쇠심줄처럼 질긴 사람들이라도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못 본 체 외면해버리면 더욱 빨리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대재앙을 경고하던 두꺼비들이 그 날 이후로 인간들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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